디스크 병원을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도저히 낫지는 않고 도수치료를 하며 약을 8알씩 먹고 있었다. 아는 의사가 제발 대학병원가서 주사를 맞던 조치를 취하라고 해서, 결국 대학병원을 방문했다.
나는 시골 촌 할매처럼 대학병원만 가면 긴장되는 이상한 병이 있다.
대학병원을 가는 날, 그날 시술을 받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하루종일 모든 일정을 비우고 오전에 병원 방문을 했다. 아는 의사는 그 대학병원에 일하고 있는데 "누가 대학병원에서 당일 뭘 해주냐고" 비웃었다. 검사할까봐 밥 굶고 안 간것이 어디냐(먹고 가도 되냐고 간호사에게 물은 것은 비밀이다).
대학병원 의사슨상님께서는 MRI가 제대로 안보이니 그 병원은 안 다니는게 좋겠다고(역시 병원도 장비빨인것인가) 하시고, 처방전을 보여드렸더니 약을 너무 화끈하게 처방해줫다면서, 아침저녁 두알씩만 처방해주셨다. 먹어보고 안 나으면 다시 MRI를 찍고 주사든 뭐든 할 거 같은데, 생각만해도 무서워서 거의 나은 기분이다. 대학병원을 다녀오고 약도 줄고 증세도 줄어든 기분이다.
디스크 외에 지난 건강검진때 '혹이 발견됫으나 암은 아닌것 같지만 추적 검사하라'는 결과를 들어서 갑상선 초음파를 다시 봤다가 느닷없이 조직검사를 하고 수상하다며 대학병원을 가라고 해서, 쌩쑈를 하고 대학병원을 갔었는데, 1센치이하는 조직검사를 안하는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암으로 보이지도 않는 것을 왜 조직검사를 했냐며 "토끼간 처럼 나에게 갑상선을 맡기고 간다고 생각하고 마음편히 가십시오."라는 대학병원 의사 슨상님의 말씀을 듣고 어찌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모른다. 평소 "내 배를 토끼간처럼 맑은 물에 담가놓고 홀쭉한 배로 밖을 나가고 싶어."라고 말하는 나로서는, 토끼간처럼 갑상선을 맡기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마음이 통하는 기분이 들고 ㅎㅎ 배도 토끼간처럼 좀 맡기면 안되겠냐는 농담이 갑상선 근처까지 치밀었으나 참았다.
최근 이렇게 병원 순회를 하면서, 암이면 수술을 할테고 흉터가 남을테니 가을에 하자고 하면 어떨까 부터 시작해서 혼자 모락모락 오만가지 생각을 하느라 아무것도 즐겁지가 않았다. 디스크도 심난한데 갑상선에...가슴초음파를 했더니 혹이 10개가 있다고 유제품을 줄이고 빵도 버터들어가지 않은 바게트를 먹으라는데 바게트가 빵인가 돌댕이 아니었나 싶고. 다 부질없이 느껴지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다가 토끼간처럼 갑상선을 종합병원 의사슨상님께 맡기고 왔더니, 이제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일을 하다보면, 의뢰인들이 상담을 와서 내가 해드리는 별 것 아닌 말을 듣고도 마음이 편해져서 잠을 잘 잔다는 분들이 계시다. 본인의 문제들을 털어놓고 해결책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이쪽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자주 전화와 문자로 여러가지 문제를 아무때나 상담하시는 의뢰인들이 있다. 이혼상담 한 번 하고가서 토요일 아침 5시에 톡으로 오만거 다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생각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변호사가 소송을 하고 자문을 하는 것도 일이지만 변호사와 상담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효용이 있고, 글을 쓰는 것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대부분의 업무지만 말만으로도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의사슨상님은 예약하고 가서 만나고 오면 우리가 전화로 시시때때로 뭘 물을 수는 없는데, 왜 나는 아무때나 이런 문의 문자와 전화에 시달리는 것인가.
변호사가 줄 수 있는 심리적인 효용가치를 이해는 한다. 하지만 부디 급박한 일이 아니라면, 변호사도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쉬는 직업인임을 이해하고 개인변호사처럼 아무때나 문의를 해오는 것은 부디 삼가해줬으면 하는 몹시 작은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