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rei aber Einsam
Mar 13. 2020
다양한 피고인들을 만나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때가 많다.
작년 한 해 정말 그런 피고인들을 집약적으로 많이 만날 수가 있었다. 희한하게도 피고인이 상식밖의 사람이라면 그의 가족들도 대체로 그러했고, 피고인이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싶으면(사람이 살다가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가족도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걸까, 아니면 이것이 그 가족의 평균적 교양정도 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피고인은 보이스 피싱, 형법상으로는 사기로 구속된 자였다.
초반부터 그의 외숙모, 엄마가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해왔다. 물어보는 모든 말에 대답을 해드렸고, 탄원서를 좀 써서 보내달라고 얘기했으나 그 가족들은 탄원서를 써 보내지 않으셨다.
상황을 보아하니 외삼촌이 피해자들과 합의를 봐주는데 도움을 주고, 형량을 줄이고자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는 무척 중요한 것이므로 좋은 생각이라고 말씀드렸다.
피해자 중의 한 분은 이 일로 자살을 하셨던 분이었다. 피고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일로 자살을 한 건 아니래요. 경찰 말씀으로는 사업이 망해서 자살한 거라고, 죄책감 갖지 말라고 하셨어요. 우리애 때문 아니라고."
"하지만 이 일이 없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지 않았을까요? 사업이 망한 와중에 돈을 빌려준다고 해서 이렇게 3천 만원이나 보이스피싱을 당하니까, 그 직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거 아닌가요?"
나도 참 못됫다.
그런 말도 안되는 자기합리화라도 가만히 들어주면 될텐데, 그걸 또 이렇게 반박을 하고야만다.
예전에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둔 어머니가 우리 사무실에 와서 우리 아들은 착한애라고 하셨다고 해서, 다들 전해 듣고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그 분 못지 않았다.
피고인의 외숙모란 분이 특히 이상행동을 많이 하셨는데,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전화를 계속 하셨던 두 분이 함께 우리 사무실로 와서 이런 저런 질문을 1시간 이상 하시고는 나에게 느닷없이,
"결혼 안 하셧죠? 까칠하셔서 싱글일거 같아."
"아뇨. 결혼 했습니다."
"어머 이외네요. 근데 피부가 참 좋으시네"
본인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재판 직전 법정에서 대기하고 있는 나를 밖으로 불러내서 내가 쓴 서면을 보여달라해서 황당해하며 드렸더니
" 머 잘쓰셧네. 근데 이러이러한 내용을 꼭 주장하세요."라고 지시같은 것을 한 적도 있고
" 우리 고모는 주부여서 잘 모르니까, 앞으로 나한테 말씀하세요." 라고 해서
" 외숙모님은 직업이 실례지만..."
" 주부에요"
이와 같은 대화가 오고 간 사실이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을 아래로 보는 태도로 나를 대했으니 나도 말을 곱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꾸만 나에게 합의를 보라며, 나를 사선으로 선임하겠다고 선임료가 얼마냐고 물으셨다. 난 국선이어도 할 일은 다 해드린다고, 변호사 선임할 돈으로 합의를 보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여러번 말씀드렸고 그 과정에서 기분도 무척 상했었다. 하지만 피고인의 가족들이 피해자 가족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합의를 직접 봐 드릴테니, 합의금이 준비되면 알려달라고 했으나 연락을 안 주셨다.
그 가족들은 내가 최후변론을 모두 마치고 사건이 종결되고 선고만 남은 상황에서 사선 변호인을 다시 선임하였다. 판결문을 발급받으려다가 그 사실을 알고 너무 기분이 나빴다. 그 이후 서면을 제출하는 곳에서 그 어머니를 우연히 마주쳤다. 그제서야 탄원서를 제출하러 온 것이다. 합의는 결국 못 보았다고 알려왔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라고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자신의 아들이 한 행동으로 한 가족이 가장을 잃고 슬픔에 잠겼다는, 그 인식부터 시작되어야 합의가 될 것인데 본인 아들의 행동으로 그 피해자가 자살한 것이 아닌데 피해자 가족들이 우리한테 그 화를 다 푼다는 마음가짐으로 합의를 보려고 하니 합의도 안되었을 것이다. 정말 나의 소중한 시간을 쓸데없이 그 피고인의 가족들과 말씨름을 하느라 법정밖에서, 내 사무실에서, 전화로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큰소리로 말한다.
"아우~~~ 화내지말자, 못생겨지니까."
아직 마음의 수양이 한~참 부족한 나는 피고인이나 그 가족, 의뢰인들의 몰상식한 태도에는 화가 많이 난다.
이런 나만의 주문이라도 없었다면, 이미 세계 최고의 못난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직 간발의 차로 세계 최고의 못난이는 면하고 있으니 참으로 몹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