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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i aber Einsam Mar 25. 2020

난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야

형사사건을 진행하다보면 정신이 온전치 않은 분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특히 국선사건에서 그런 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어느날 국선을 진행하던 변호사들끼리 모여 점심을 먹다가 들은 얘기였다.


그 변호사에 따르면, 피고인을 처음 만난 것은 영장실질심사때였다고 한다.

영장실질을 하게 되면 먼저 피의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지를 묻는 절차가 있다. 그 피의자는 본인의 주소지를 대는데...청와대의 주소를 대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변호사를 보고,

"난 대한민국 국가원수인데, 내 대리인으로 왜 니가 와있어? 넌 해임이야. 법무부장관 오라고해."

그 한마디를 듣고, 그 변호사는 '아, 정상아니구나.' 느낌이 와서

"아, 오늘만 제가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달래서 영장실질을 들어갔다고 한다.


피의자는 영장실질판사에게  "판사, 당신 월급은 내가 주고 있는거 알지? 똑바로해." 라고 해서, 연세가 많으신 부장판사님께서 황당한 낯빛으로 변호인 빨리 의견 진술하라고 하시더란다. 그 피의자는 결국 구속 되었다.


피고인이 된 후, 첫 공판기일에 출석한 피고인은 검사가 범죄사실이 적혀있는 공소장을 읽어내려가는 와중에,

"검사, 넌 공소장 그렇게 밖에 못 읽나? 제대로 못해?" 라며 호통을 쳐서 법정을 소란스럽게 하고 검사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

"변호사, 넌 여기 왜왔어? 내가 지난번에 해임이라고 했지. 법무부장관은 왜 안오는거야."라고 하더란다.

결국, 재판장이 당장 정신감정신청을 받아주셨다고 한다.


피고인은 공무원 시험준비를 오래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건에 대해 본인이 할 말을 꼼꼼하게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그 이쁜 글씨로 정성껏 써서 재판부와 변호사에게 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오랜기간 시험준비를 하였으나 계속 낙방만 하던 중에 정신이 이상해진것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스스로가 공무원 임명권을 가진 국가원수가 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측하였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소견을 가지고,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을 주장하여 책임을 면하거나 감경해달라고 하기위해 정신감정 신청을 한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만나서 잠깐 얘기해보면 이상한 사람도 꽤 많다.


내가 진행한 사건 중에도, 정신이상으로 인해 본인의 가족에게 상해를 입히고 구속된 피고인들이 있었다. 본인이 정신이상인 것이 본인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구타하는 자들이 있는데, 얘기를 해보면 본인이 한 행동을 축소,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스스로는 정신이 멀쩡한데, 주위에서 정신이상자로 몬다고 생각하는 경우였다.

내가 맡은 피고인 중에서도,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을 위해 정신감정신청을 했는데 법정에서,

"저 변호사는 저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미치지 않았고 정상인데 정신감정신청이라니요." 라고 부르짖어서, 황당했었다.

결국 검사가 정신감정신청을 했고, 재판장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신감정을 받아들여주지 않다가, 피고인의 어머니가 증인으로 나와서 "아들은 미쳤습니다"를 거의 오열하다시피 말하고 나서야 정신감정신청을 받아들여주었다. 이 사건은 반드시 치료감호를 받기를 원했던 사건인데 결국 구속기간만료라는 절차적인 이유로 재판부가 검사의 치료감호 구형자체를 막아서, 황당무계했던 경험이 있다.


그 피고인은 곧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것이다.

"어머니를 찌르려던 것이 아니었으면, 칼을 왜 챙겼나요."라는 질문에

"나가서 걸리적 거리는 사람있으면 쓰려고 챙겼습니다."라던 피고인의 말이 생각난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분개해하며 "나를 음해하는 변호인"이라고 난리쳤는데, 난 갑옷을 한 벌 사서 입고 다녀야하는 것인가, 문득 생각하다가도 다른 국선변호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방화범이 있었는데, 저한테 엄청 적개심을 드러냈어요. 그 사람 곧 석방될 텐데 나한테 불지르러 오면 어쩌지 너무 걱정했는데, 누가그러더라구요. 걱정마라. 타겟 1순위는 그 판결을 한 판사거나 그를 기소한 검사 또는 경찰이야. 넌 후순위라 그 전에 범행하다 잡힐꺼야. "


나, 안도해도 되는거 맞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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