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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오늘은 이쯤에서 헤어지자고. 다음에 또 봅시다. 데스크는 국민의 종과 악수하더니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차 문을 반쯤 열고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국민의 종도 나를 향해 머리를 가볍게 까닥거리곤 뒤돌아 자신의 차에 탔다. 주차장의 불빛은 흐렸다. 그들이 떠나고, 한바탕 칼부림 소동이 일어난 객주를 가까스로 빠져나온 걸인 무사처럼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데이트가 아니죠? 우연히 만나서, 우연히 밥을 먹은 거죠?”
깻잎머리는 밝게 웃었다. 나는 여전히 모니터를 보며, 가타부타 말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야겠어. 조금이라도 곁을 내어주면 파고들 것 같아.
*
차량 부서에서 기사를 채용하는데, 전략기획팀에서 참견할 여지는 없었다. 계장이 불독 말고도 두 명이 면접 명단에 있다며 귀띔했을 때, 난감했다. 총무팀에서 공고를 냈더니, 열댓 명이 이력서를 제출했으며, 그중에서 계장이 불독과 두 명을 추렸다는 것이다. 계장은 총무팀 눈치도 봐야 해서, 단수 추천을 할 수 없었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총무팀장을 만나서, 면접관으로 참여해야죠. 그 방법뿐이네요.”
계장은 내 부탁을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총무팀에서 구인 공고를 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보통은 계장이 단수 추천하면, 총무팀장은 대충 이력서를 훑어보고, 특이사항이 없으면, 동의하는 편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총무팀장과 원만한 관계이고, 팀장급 인사이동과 승진은 전략기획실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총무팀장은 짐작하고 있었다.
총무팀 사무실로 들어가자, 팀장은 책상에 이력서를 펼쳐놓고 살피고 있었다.
“장 팀장이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총무팀장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둘러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 면접이 있다면서요?”
“차량 부서에서 일한 사람을 뽑는 면접이 있긴 했죠. 왜요?”
총무팀장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계장하고 팀장님이 면접 보겠네요?”
“그렇죠.”
“면접관이 짝수면, 의견이 어긋나 결정하기 어렵지 않나요?”
“나야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보는 거라, 계장 의견을 존중해야죠. 차량 부서에서 일할 사람이니까요.”
“그러지 말고, 나도 면접관 합시다.”
“네?”
“홀수면 쉽게 결정이 나지 않겠어요? 깔끔하잖아요? 계장 의견을 존중한다고 해도, 나중에 뒷말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그렇긴 하네요. 계장 빽으로 들어왔다는 말이 돌면, 내가 난처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널널한 모양인가 봐요? 면접관을 하신다니?”
“한가한 게 아니라, 유능한 거죠.”
“하긴, 전략기획팀에서 잔뼈가 굵으셨으니. 소회의실에서 할 예정인데, 한 시간 뒤에 그쪽으로 오시죠? 그리고, 이건 이력서인데, 미리 검토해 보시고.”
“그러죠.”
이력서를 살펴보았다. 불독을 빼고, 두 사람은 경력자였다. 당연히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총무팀장이 계장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당연히 경력자를 채용하여야 한다며 밀어붙이면, 계장은 딱히 손쓸 방법이 없었다. 총무팀장에게 전략기획실 장 팀장이 추천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첫 면접자가 소회의실로 들어왔다. 총무팀장은 이력서를 다시금 꼼꼼히 보고 나서, 면접자의 얼굴을 살폈다.
“25년 경력이라 도로 사정은 모조리 꿰뚫고 있겠네요?”
총무팀장은 입가에 엶은 웃음을 지었다.
“목적지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집니다.”
첫 면접자는 당당했다.
“택시가 아니라서 도로망을 다 알 필요는 없어요.”
계장이 딴지를 걸었다. 총무팀장은 뻘쭘해져서, 그런가?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정비 정도는 가능하지요?”
계장이 질문했다.
“물론입니다.”
“사고는 없었습니까?”
“25년 무사곱니다.”
“법원 사이트에서 면허증 번호로 조회하면 다 나온다는 것쯤은 아시죠?”
“실은…, 추돌사고가…, 인명사고는 아니었습니다.”
첫 면접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직감적으로 탈락의 기운을 느낀 모양이었다.
“운전을 25년이나 하면서 사고가 전혀 없을 순 없죠. 이해합니다.”
계장은 얄미울 정도로 능글맞게 위로했다.
“몸이 좀 무겁지 않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첫 면접자는 비만에 가까웠다.
“수고하셨습니다. 채용된다면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첫 면접자는 떨떠름한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도 없이 나갔다. 두 번째 면접자가 들어왔다. 첫 면접자와 달리 마른 편이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보니까, 이상하네요?”
계장은 어떡해서든 흠집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맞습니다. 아직, 혼잡니다.”
“결혼은 왜 하지 않으셨나요? 실례되는 질문이긴 하지만요.”
“살다 보니까, 어쩌다 지금까지….”
“사생활이긴 하지만, 마흔 줄에 아직이면 뭔가 신체적으로 문제가…?”
총무팀장은 말끝을 흐렸다.
“신체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책임감의 무게는 확실히 차이가 나겠죠?”
계장은 총무팀장의 동의를 구하는 투로 말했다. 두 번째 면접자는 불길한 기운을 느꼈는지, 가벼운 분노와 실망이 뒤섞인 감정을 얼굴에서 숨기지 못했다. 아무리 면접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인 생활을 걸고넘어져, 왈가왈부하는 게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결혼 여부가 직무에 대한 책임감과 무슨 상관이 있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편견이죠.”
두 번째 면접자는 자존심이 매우 상한 목소리였다.
“욱하는 성질도 있네요.”
나는 살짝 비아냥거리는 투로 내뱉었다. 계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총무팀장은 빙그레 입웃음을 지었다.
“편견이라기보다는 통념이죠.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하늘과 땅 차이죠. 결혼은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쯤은 아실 나이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총무팀장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거친 숨을 몰아쉬는 두 번째 면접자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결혼 유무가 채용 여부에 영향을 미칩니까?”
두 번째 면접자는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당황한 쪽은 총무팀장이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까? 나는 면접을 보러 온 것이지, 비참하게 보이려고 온 게 아닙니다.”
두 번째 면접자는 당당했다. 불현듯 도일이가 내 깊은 상처를 건드렸던 일이 떠올랐다. 미루어 보면, 두 번째 면접자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가치관이 이미 곳곳에 뿌리내리지 않았나.
“책임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지, 결혼 유무에 관해서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
계장이 뒷수습할 요량으로 말했다.
“지금 사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말장난입니까? 막말로 면접 때 이렇게 갑질이면 근무할 때는 오죽할까요? 내 참, 더러워서….”
두 번째 면접자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계장을 비롯해 면접관을 쏘아보듯 째려봤다. 순간이지만 눈빛은 강렬했다. 면접자는 서슴없이 소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나를 비롯해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너무 심했나?”
총무팀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태도가 글러 먹었어요. 면접을 보러와서 제 성질도 못 이겨서….”
계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독이 들어왔다.
“운전 경력은 어떻게 되시죠?”
총무팀장이 물었다.
“택시 3년 했습니다. 1종 대형면허도 있고요.”
“몰라서 묻는 건데, 대형면허로 뭘 운전할 수 있죠?”
“화물차나 덤프트럭, 긴급자동차 같은 걸 운전할 수 있습니다.”
“계장님은 궁금한 거, 없나요?”
총무팀장이 계장을 바라보았다.
“결혼했습니까?”
불독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계장을 바라보았다.
“네. 했습니다.”
“사고는 없었습니까?”
“네. 무사고입니다.”
불독은 총무팀장을 경계하는 눈빛이었으나, 계장을 한 번 봤다고 넙죽넙죽 대답했다. 오랜 시간 동안 길거리 생활에서 얻은, 상대를 파악하려는 동물적인 습성 탓이었다. 만만한 상대인가? 힘으로 제압하면 굴복할 상대인가? 본능적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능력은 쉽게 버릴 수 없었다. 봄이를 만나,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당장은 아니겠지만, 임원 기사를 하려면 입이 무거워야 하는데, 어떻습니까?”
나는 이력서만 뒤적거리기에 충무팀장의 눈치가 보여 한마디 했다. 면접관으로 참여했으니,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불독은 나를 보며 찰나에 눈웃음을 보냈다.
“참새처럼 조잘대는 건, 딱 질색입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라는 판단 때문일까? 불독은 여유가 있었다. 보육원 시절의 악연을 생각하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을 하는 셈이었다. 악연을 끊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불독이 화성으로 찾아와 취업을 애걸할 때 이미 마음은 먹었지만.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한가요?”
계장이 말했다. 느닷없는 출근이란 말에 총무팀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계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계장의 의견을 존중한다 해도 너무 빠른 결론이라는 의미였다.
“내일부터 당장 가능합니다.”
불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답변했다.
“계장님, 성급하시네요?”
“아닙니다. 어차피 수습 기간이 있으니, 그때 범죄경력 조회서를 제출하면 될 테고. 일손도 부족한 편이라서 후다닥 해치우죠?”
“그런가요?”
총무팀장은 동의하는 고갯짓을 했다. <범죄경력 조회서>란 말에 불독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서둘러 불독에게 눈을 맞추며 고개를 짧게 절레절레 저었다. 계장이야 이미 내 부탁대로 불독을 채용할 작정이지만, 어리숙하게 보여도 꼼꼼한 구석이 있는 충무팀장이 냄새라도 맡을까, 걱정스러웠다.
“팀장님, 사실 불독을 제가 잘 압니다.”
“뭐라고요?”
총무팀장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과 의아한 표정이 뒤섞여 눈을 껌벅거렸다.
“장 팀장이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신원을 보증하는 거죠.”
“설마, 친인척은 아니죠? 요즘 고용세습이다, 뭐다, 말들이 많아서요.”
“아닙니다. 친굽니다.”
“그러면 문제 될 게 없겠네요. 하지만 서류작업은 해야 하니까, 장 팀장님이 신원보증서를 써주셔야겠어요. 번거롭게 경찰서에 갈 필요도 없이.”
“그렇게 하죠.”
불독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만일 불독이 문제를 일으키면 내가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 그쯤은 불독도 알고 있으리라.
*
열흘가량 베트남 출장을 다녀오자, 깻잎머리가 가장 호들갑을 떨었다.
“장 팀장님, 정말 보고 싶어서 죽을 뻔했단 말이에요.”
깻잎머리는 애인에게 투정 부리는 애교 섞인 목소리였다.
“누가 들으면 둘이 연애하는 줄 알겠네.”
볼펜이 히죽거렸다.
“연애가 아니라 결재 때문이겠지.”
안경이 점잖게 볼펜을 핀잔했다.
“그렇게 콧소리 섞어서, 몸도 비비 꼬면서 말하는데 연애가 아니면 뭐냐?”
“장 팀장하고 나이 차이가 있는데, 연애는 좀 그렇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