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연 May 21. 2024

나를 지키는 연습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성향이 있단 걸 깨달았다. 


최근 친구 P에게 서운함을 느껴서 친구 H에게 이에 대해 털어놓았다. H가 "그건 나 같아도 서운하다. 그건 언니가 기분 나쁠만하다."라고 말해주자 비로소 '역시 내가 지금 눈물이 날 정도로 서운하고 기분 나빴던 게 맞구나'하고 P에게 가서 감정을 토로했다. 


오늘은 친구 J가 약속 당일, 그것도 약속 시간 거의 30분 전에 파토를 냈다. 이를 친구 P에게 털어놨다. 그랬더니 "이건 좀 아니다. 다음에 강하게 얘기해야 한다. 너는 시간 약속을 매우 잘 지키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냐."라고 말해주니 비로소 친구 J에게 내가 이 약속 파토로 인해 어떠한 타격을 입었으며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표현했다.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 친구들이 적절하게 잘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만일 H가 "그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그건 서운할 일이 아닌 거 같다"라고 했더라면? H가 그렇게 말해도 나는 P에게 감정을 토로하고 대화를 하고 서로 오해를 풀 수 있었을까. 만일 P가 "아프면 당일 취소할 수도 있지. 그럼 아픈데도 나오라고 하냐."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과연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 아파도 약속이 오후 4시인데 아침에는 말해줬어야지."라며 받아칠 수 있었을까. 



친구 말에 '역시 내 말에 공감해 주니까 좋다. 마음이 편안해진다'라고 느끼는 건 좋다. 그런데 그제야 안심하고 '내가 느낀 감정이 옳았구나.'라고 느끼는 건 다소 위험하다. 반대로 "너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이상하다."라고 말하는 못된 사람을 만나면 그 말에 "그런가?" 하며 휩쓸려 버리기 때문이다. 분명 나는 속상했고, 기분이 나빴고, 불쾌함을 느껴서 그 감정을 공유한 건데, 갑자기 '내가 잘못인가. 내가 문제인가.' 하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현재 내 곁에는 나를 한없이 지지해 주고 공감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남이 내 말에 공감하든, 비난하든, 상관없이 내가 느낀 감정이 맞다고 스스로 믿고 지지해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을 때 연습해야 한다. 


누군가가 내 능력에 대해 말하면 이것이 나를 위한 피드백인지 아니면 들을 가치가 없는 비난인지 구분할 줄 안다. 그러니 누군가 다짜고짜 내가 노래나 영어를 못한다고 해도 '그런가?'하지 않는다.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 감정은 마치 타인의 결재를 받아야 비로소 안심하고 그걸 믿는 셈이다. 이는 말하자면, 가스라이팅의 표적이 되기 쉽다. 물론 그렇게 가스라이팅하는 사람들이 100% 잘못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내 안의 힘을 기르고 나를 지킬 필요가 있다. 친한 친구가 '이가연이 위와 같은 감정을 느낄 만하다'라고 사인해주지 않아도 내가 느낀 감정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기분이 나빴으면 기분이 나쁜 거다. 일부러 그랬든, 어쩔 수 없이 그랬든, 내가 불쾌함을 느꼈으면 그 사람은 사과를 해야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서운하다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연히 "너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라고 먼저 할 것이다. 그것이 상대방이 느낀 감정을 존중해주는 거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받아주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쁜 마음으로 돈을 썼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