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마음으로 돈을 썼으면 잘 쓴 거다. 내가 기쁜 마음으로 막 오백 만원을 쓸 수는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와 돈 쓰기 잘했다' 싶으면 그 마음을 잘 간직하기로 했다.
근교 도시 린드허스트에서 기숙사까지는 버스 타고 1시간 정도 걸린다. 문제는 그 버스가 1시간에서 1시간 반마다 온다. 한 번 놓치면 다른 교통편은 불편한 환승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만 타려던 버스를 놓쳐버렸다. 반대편에서 기다리다가, 그걸 인지하고 길 건너려는 순간 버스가 떠나버렸다. 아침 9시 반부터 학교 다녀와서 날씨가 좋아 전혀 계획에도 없이 출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지라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이런 '멍청비용'이 다 있나, 속으로 욕하며 택시를 불렀다.
하지만 택시를 타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근래 탄 택시 중에 가장 친절하고도 대화가 통하는 기사님을 만났다. 원래 아프가니스탄 사람인데 사우스햄튼에 16년 동안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이것저것도 나에게 물어봤다.
와이프가 전화가 왔는데 받아도 되냐고 나한테 물어보고 받은 것도 배려를 느꼈다. 그동안 택시에서는 그냥 받으니 나는 대화가 끝났구나 싶어서 창 밖을 보기 마련이었다.
아마 말 시키는 게 싫고 두렵고 택시에 탔으면 그냥 조용히 가고 싶은 사람들도 많을 거다. 도저히 5분도 걷기 싫을 정도로 피곤했지만 그건 신체 컨디션일 뿐,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언제든 즐거운 나에게 그 시간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30분 동안 택시 타고 가는 내내, 이렇게 당일치기 여행의 마무리가 훈훈하고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이지 돈 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