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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May 06. 2024

자책하는 습관


영국에 돌아가는 비행기 체크인을 하려는데, 체크인할 수 있는 자리가 이미 매진되어 공항에 도착해야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분명 자리 선택을 했을 텐데 왜 이런 건지, 한국에 돌아오던 당시 멘탈 상태가 너무 나빴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거라며 나를 탓했다. 그 탓에 통로 자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가운데나 창가 자리 밖에 없을까 봐 공항 도착할 때까지 발을 동동 굴렸다. 1-2시간에 한 번은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해도 종아리부터 발 끝까지 너무 아픈데 이번 비행시간은 14시간 반이었으니 걱정이었다.


그런데 항공권을 받고 나니, 돌아오는 비행기는 정확한 좌석 지정이 아니라 통로 좌석 지정이 가능해서 선택했던 기억이 났다. 사실 나는 한국 가는 비행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앞당길 수밖에 없던 그 상황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화가 나있었다. 그런데 화나게 만든 사람들을 잡아다가 화낼 수는 없으니, 그 분노의 화살이 나로 향하여 자책이 된 것이었다. 아직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후회와 자책을 땡겨했다.



공항에서 집에 갈 때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수업 바로 전날에 영국에 도착하게끔 스케줄을 짰냐며 후회했다. 적어도 2-3일은 먼저 들어가서 시차 적응할 시간을 줬어야지 하며 자책했다. 그러나 시차 때문에 아침 6시에 눈을 뜨곤, 수업이 10시임에도 9시 무렵 캠퍼스에 도착했다. 1시간 동안 목을 풀고 당장 선생님 앞에서 노래하는데 컨디션에 전혀 문제없이 좋았다. 그리곤 그 어느 때보다 집중도 있고 만족스럽게 수업을 마쳤다. 왕복 비행기표를 예매하던 당시엔 헤엄쳐서라도 한국에 가고 싶었으니, 하루라도 더 한국에 머물 수 있도록 항공편을 예약한 게 당연하다. 나의 결정엔 분명 그 당시의 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비행기를 4일 앞당기기 위해 수수료 20만 원을 지불하고, 16만 원 정도였던 뮤지컬 티켓과 왕복 기차표까지 날린 게 그렇게 이해가 되지 않는가. 두 달 전 나도 나인 것을, 내가 나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어서 되겠는가.

  

함부로 자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 감정, 내 결정, 내 판단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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