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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방법이 없어 보였는데

by 이가연

올해만큼 사람을 안 만난 해는 없었다. 이렇게 비슷했던 적도 없다. 내 입장에서는 사람 중독을 끊은 거지만, 남들이 보기엔 대인기피증처럼 보일 수 있다. 외출이라 하면 서점, 도서관, 봉사 활동이 거의 전부였고 간간히 재미난 이벤트를 찾아서 했을 뿐이다. 평균 한 달 교통비가 3만 원이다.

한국 사람 너무 힘들어서 영국 간 거였는데, 갔다 오니 상태가 심각해졌다. 내가 한국이랑 왜 안 맞는지 원래는 이론상으로 알았다면, 이젠 더 피부로 와닿을 수밖에. 설상가상으로, 한국 사람이라서 가치관 차이가 아니라 그냥 질이 떨어지는 별로인 사람들을 작년 하반기부터 올초까지 마주쳐 감정 소모를 했다. 단 한 번 만났음에도, 너무 상처를 크게 입히는 사람들이 발생했다. '무분별하게 사람 만나는 거 제발 이게 몇 년째냐.'라고 해도, '한국에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결핍이 너무 크다 보니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충동성이 늘 문제다. 사람에게 그렇게 상처 입은 게 커도,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사람들에게 말 거는 걸 안 할 수가 없었다. 이성적인 사고 개입할 시간을 잘 안 주고, 자동 반사다. 혼자 여행 다니면서 사진 찍어달라고 할 때 망설이지 않고 바로바로 부탁할 때는 도움 된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 알아가는 것에 대한 한계를 완전히 맞닥트렸다. 토 나온다고 말하면서도 조금만 토 나올 거 같은 게 내려가도 다시 하고, 또 토 나올 거 같고 이 반복이 도저히 인간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는, 애초에 그런 충동이 올라오지 않도록 최대한 강연 같은 것만 들으러 다녔다. 강연은 강연자가 뭐라고 말하나 들으러 간 것이지, 옆사람하고 대화하려고 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나를 막는 이유는, 설령 이상한 사람이 아닐지언정 매번 상처받는다. 연락처를 교환해도 금방 끊어지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못 만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거절당했다고 느낀 사람 숫자만 봐도 이건 단순 거절 민감성, ADHD 탓만이라고 볼 수 없다.



얼마 전에 오빠는 거의 열흘 만에 카톡 답장을 했다. 하지만 항상 연락이 끊기기 전에 미리 공지를 하고, 맘껏 일기 쓰라는 말만 지금껏 수십번 했다. 답장 24시간 넘어가는 건 그냥 예의가 없는 거라고 하는 만큼, 평소에는 아무리 영국과 시차가 있어도 24시간 안이면 오고, 며칠 걸리기 전엔 저렇게 알려준다. 평생 저런 사람 못 봤다. 어쩔 때는 티키타카 카톡이 잘만 되다가, 어쩔 때는 며칠, 일주일씩 답장을 안 하는 사람만 있었다.

그러면 답장 올 때까지 내 뇌가 진짜 썩는다. 그 불확실성을 주면 안 된다. 분명 티키타카 잘 되었었는데, 갑자기 하루에 한두 번으로 답장 오는 게 줄어버리면, 나를 완전히 미치게 한다. 흔히 생각하는 단순히 쟤랑 나랑 안 맞는 정도가 아니다. 반찬이 입에 안 맞는 수준이 아니라 이틀 굶기는 거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제발 비 ADHD인들이 임산부 체험하듯 체험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오빠 같은 사람이 뭐 이리 어렵다고. 오빠도 늘 본인이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좋게 봐줘서 고맙다고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나에겐 매우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에게 말 걸고 노력하면 무조건 상처받는 데이터만 남아서 아예 자극을 통제해 버렸고. 올해 내가 오빠 같은 사람만 친구 할 수 있다는 걸 너무 확고히 깨달았는데, 저 사람은 영국에 살고, 올해는 영국에 잘 있지도 않고 세계를 돌아다니고, 또 여자친구 있어서 바쁘고. 그래서 외국어 수업을 듣던 것도 다 외국어 목적이 아니라 심리 목적이었는데 그건 시간당 돈이 들고, 내가 말할 사람 없어서 수업 듣는다는 것에 현타 오고. (외국어 수업 또한 2021년부터 영국에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 계속 말할 사람 없어서 들었다.)

그 누구도 조언하면 나를 굉장히 화나게 할 수 있는 주제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역사와 나의 뇌 상태를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조언하면 늘 질색하던 이유는, ADHD인은 비 ADHD인에 비해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생각을 하는데 아주 능하다. 그게 이들 뇌의 장점이다. 그런 내가 과연 사람들이 조언하는 말 중에 도움이 되는 말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누가 이렇게 노답 상황에서, 외국어 수업을 듣고, 영상 찍어서 오빠한테 카톡 보내고, 봉사 활동 가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해소할까. 그냥 모임에 가면 내가 자꾸 힘들어지니까, 강연으로 타깃을 바꾼 것도 내가 생각해도 똑똑하면서도 되게 슬프다. 오죽하면.

그 어떤 괜찮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오빠처럼 '분명 티키타카 며칠을 잘하다가 갑자기 답장 텀 길어지기 전에 미리 말해주는 저 당연한 예의'는 아무도 안 한다는 걸 최근에도 또 느꼈다. '나 싫어졌나. 나 또 눈치 못 채나. 내가 뭘 잘못 했나.'로 생각이 흘러 미친다.

서론이 길었다. 길게 말 안 하면 다들 조언부터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오늘 두 번째로 타로 채널 라이브 방송을 했다. 라이브 안 하는 줄 알았다고 댓글에 달아주셨는데, 늘 라이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한 지 벌써 10년이다. 늘 라이브를 하고 싶었지만, 보는 사람이 너무 없는 꼴을 몇 번 봐서 안 했었다. 하지만 정작 타로 채널에 구독자가 꽤 생겨서 이제는 라이브 할 수 있단 걸 알아도, 원체 사람에 대한 상처가 깊어진지라 괜히 상처받는 댓글 있을까 봐 걱정도 있었다.

예상보다 너무 따뜻한 방송을 했다. 중간중간 댓글 보면서 몇 번을 캡처했다. 항상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댓글에는 몇 초 동안 말문이 막혔다.



나 좋으려고 켠 방송인데... 라이브에 참여해 주신 열 분 남짓 되는 분들 모두 만족해하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정말 나 살려고 켠 방송인데. 오빠가 두바이 가서 말할 사람 없어서. 그렇다고 외국어 수업 듣기엔 요즘 쉬고 싶었어서. 하루 종일 엄마랑만 얘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설령 이상한 댓글이 올라오더라도, 그건 나에게 상처가 아니다. 나에게 상처란, 티키타카 잘만 대화하다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게 반복될수록 내가 얼마나 너덜너덜해질지 알기 때문에, 먼저 절대 못 보내도록 카톡방 나가고 상대방 연락처 삭제해야 하는 일, 그게 상처고 힘듦이다.

댓글은... 그냥 일시적으로 기분 나쁘거나 화나게 할 뿐이다. 방금 산 아이스크림 떨어트리고 '에잇'하는 것처럼 금방 잊는다.

오늘 방송은 핸드폰 배터리가 꺼지기 직전이 될 때까지 거의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제 막 한 30-40분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별로 고민할 필요 없이, 워낙 댓글을 잘 써주셔서 댓글 읽고 재미난 소통 방송이었다.

그렇게 난 앞으로도 헤쳐나갈 거다. 사주에서 난 친구 딱 한 명만 있으면 성공이니 한 명 찾기를 목표로 하라는데 난 그 한 명이 이미 있다. 심지어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절 중에 지금이 가장 엄마랑 대화가 잘 통하고, 동생도 종종 타로 봐달라며 나를 찾는다.

늘 조금씩 나아져왔다. 사람에 대한 상처가 쌓이고 쌓일지언정, 그럴수록 나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를 보호할 줄 알게 되었고, 나를 위할 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시작이 참 마음에 든다.

오늘 오셨던 분들이 다음 라이브에 안 오신다고 서운할 텐가. 아니면 다음 라이브는 시청자가 더 적다고 서운할 텐가. 그럴 일이 없다. 그냥 다음에도 또 함께해 주시는 분들과 재미있게 수다 나누면 된다. 내 살 길을 알아서 찾아 나가는 내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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