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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내 거울이다

by 이가연

과거의 나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사람은 나의 거울이다. 친구, 좋아하는 사람, 사귀는 사람 다 마찬가지다. 미래의 내가 바라봤을 때 내 안목이 부끄러울 사람과 오래 말 섞지 마라.'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부럽다는 말을 달고 살지' 하며 극혐 했다. 그냥 한국인 특으로 돌렸다. 그런 나는 과연 부럽다는 감정을 안 느끼는 사람인가. 아니다. 그냥 주변에 부러운 사람이 아무도 없던 거였다.... 얼마 전 오빠 인스타그램을 보고 제대로 깨달았다.


(물론 미국인 친구가 '너는 안 그러는데 어떤 한국인이 자꾸 jealous 해서 이상했다'라고 했던 에피소드도 한 몫했다. 아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영어에서 jealous는 뭔가 질투하는 뉘앙스도 담겨있는데, 한국어로 부럽다는 더 가벼워 보인다.)


내 입에서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사람들을 옆에 뒀어야 했다. 오빠가 세계로 공연 다니면서 무료 초청받고 퍼스트, 비즈니스 클래스로 비행기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주 부럽다. 퍼스트 클래스는 정말 내 비전 보드에서 봤던 모양새다.


'에이 그래도. 병원에서도 ADHD인이 비 ADHD인하고 친구 하기 힘들댔잖아. 재미없어서. 비 ADHD인이 ADHD인 볼 때 쟤는 인생 참 재밌게 사는 거 같아서 부럽다는 감정 느낄만한 거 같아.'라고 생각도 든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들 다 ADHD 기질 가지고 있는 거 아니냐. 개그맨이고 연예인이고 정치인이고 재벌이고 병원에서 다 ADHD랬다. 내가 봐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개념을 몰랐어도 되었다. 이렇게까지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소위 내 급에 맞는 사람들하고 친구하고 어울렸으면 이렇게까지 한국인 혐오가 안 생겼다. 동생도 중고등학교 때까지 항상 친구 문제가 있었는데, 고대 가면서 싹 없어지고 핵 인싸가 되었다고 들었다. 어느 실용음악과 학생이 매일 같이 도서관 가고, 일주일에 7-8권씩 책을 빌려 가나. 내 자랑이지만, 만 19세에 4개 국어 프리토킹을 했다. 보통의 실용음악과 학생과 아주 다른 삶이었다. 그래서 소셜 모임 (독서 모임과 비슷한 취미 모임)도 정말 많이 나갔지만, 그렇게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연락이 끊겼다. 그들에겐 내 이용가치가 없었던 건 아닌가. 판검사, 의사였어도 그랬을까.


자꾸 부럽다는 말 들은 데엔 환경 문제가 있다. 오빠에게 주변 사람들 얘기를 공유할 때면, 자기 주변엔 그런 사람 못 봤는데 왜 자꾸 나는 그런 사람들이 꼬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올해 깨달았다. 오빠는 영국에서 굉장히 좋은 학교에서 클래식 공부를 했다. 대학, 대학원, 그리고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풀이 달랐을 거란 걸 드디어 깨우쳤다. 물론 나는 실용음악과 아니면 대학 안 간다고 할 정도로 목숨 걸었고 지금도 그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다. 실용음악과로는 아무리 최상위권 대학을 갔어도, 그럴수록 더 또라이 집합소라 어딜 가든 아싸였을 것이다.


사람 보는 안목도 능력이다. 그걸 몰랐다. 내 안의 결핍 때문이었다. 20대 초반 시절엔, 그냥 내 말 잘 들어주면 좋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카사노바 왈, 여자 말을 최대한 잘 들어주라 했다고 한다. 도저히 왜 사귀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을 돌이켜 생각하면, 아마 잘 들어줬을 거다. 대화가 잘 통하는 게 전혀 아니었다. 말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 사람들이랑 약속이 쉽게 잘 잡히니까.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공유하니, 엄마가 예전에 '나보다 잘난 사람을 친구로 둬야 한다' 했을 때 내가 되게 싫어했다고 한다. 나보다 못난 사람만 골라 만난 게 아니라, 사람이 하도 없어서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다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연락을 너무 안 받아서 속 터지게 했을 테니. 오빠처럼 엄청 잘 나가면서 상시 수다를 안 떨면 본인이 못 배기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예전 상담사고 다른 30대고 다 똑같은 소리를 했다. 30대부턴 그렇게 핸드폰만 붙잡고 카톡 안 한다고 했다.


가장 친한, 가장 많이 대화하는 세 명의 평균이 나다. 현재로서 엄마, 동생 그리고 (친오빠 아님) 오빠다. 아주 만족한다.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존경심이 생기는 그런 사람들과 가장 많이 어울려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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