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뭐 하고 사나 설문조사 이메일을 받았다. 사실 기다렸다. 9월에 영국 갔을 때 커리어 상담 기다리면서 옆에 있던 팸플릿에서 봤다. 그래서 졸업 후 15개월 뒤에 이메일 올 거 알고 있었다. 근데 졸업식이 작년 12월이었어서, 졸업식 기준인 줄 알았다. 아무튼 보고 반가웠다. 기다린 이유는, 나도 그 이메일을 받을 무렵에 대체 내가 뭐 하고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올해 9월까지도 예측이 안 갔다. 9월만 해도, 영국 취직에 여전히 마음이 열려 있었다.
프리랜서와 예술 작업, 두 가지를 체크했다. '창의, 예술, 전문적인 포트폴리오를 쌓고 있다'라는 저 두 번째 선택 항목이 참 고마웠다. 저런 설문조사 못 봤다. 그래서 예술인은 보통 슬프다. 지난 일주일 동안 뭐 했냐는 질문에 저렇게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어서 기뻤다. 프리랜서는 타로 유튜브와 타로 상담사 활동이고, 예술 포트폴리오는 노래 채널에 노래 불러서 올린 게 된다.
다음은 학부에서 공부한 게 지금 일에 얼마나 도움 되었냐 질문들이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노래로는 돈을 못 벌었기 때문에, 전혀 관련 없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니요' 체크하고 싶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타로도 예술 아닌가. 어쨌거나 영국에서 석사 하면서 내 예술성이 엄청 발달한 거 아닌가.
다음은 웰빙 질문이다. 이런 게 영국은 참 좋다. 상상해 보라. 한국 대학에서, 졸업생들이 졸업하고 취업해서 사는지, 백수로 사는지, 뭐하는지 조사한다고 치자. "어제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따위의 질문이 있겠는가.
올해 중에 지금 시기가 제일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내가 설령 당장 부자가 되어도, 아이유처럼 유명한 가수가 되어도, 가슴 한편에 쓸쓸함과 슬픔이 깔려있는 건 별 수 없기 때문에, 9점이다. 어쩌면 작년과 올해 상반기까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9점으로 체크한 것일 수 있다. 내년엔 '작년은 5였고, 지금이 9다.'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사마리탄. 영국 살 때는, 위기 상황에서 어디에 연락할 수 있는지 캡처해서 즐겨찾기 해두곤 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단체 중 하나다. 그렇지만 나는 문자보다 직접 말하는 상담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냥 좀 참고 다음날 학교 가서 웰빙팀 찾았다.
9월만 해도 영국 취직에 미련이 철철 넘치던 나였는데, 10월에 타로 채널 잭팟이 터지고 유튜버 및 상담사가 되었다. 인생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한 달 안에 구독자가 천 명 가까이 늘 줄은 진짜 몰랐다.
앞서 체크한 프리랜서와 예술적 포트폴리오를 발전시키는 일, 둘 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다. 어딘가에 고용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영국이나 한국이나 힘들어 보였는데, 아무리 해도 답이 안 보여서 그랬다. 답이 안 보이면 현실과 타협하려고 시도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나는 밖에 3-4시간 이상 잘 못 나가있는다. 체력 문제가 아니라 뇌 문제다. 영국은 직장인이어도 근무 시간을 협의할 수 있다고 해도 난 하루 5시간도 힘들었을 거다.
저 설문조사에서도 내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내 일이 얼마나 가치 있게 느끼는지, 하루하루 행복하게 느끼는지 묻지 않는가. 유튜브 하고, 개인 상담하고, 공연 생기면 하는 것, 지금 일이 딱 나에게 맞다. 올해 공연한 기회들도 전부 예측 못했듯이, 내년엔 어떤 공연들이 더 생길지 모른다.
이 설문조사를 통해 다시금 느꼈다. 지금 참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