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숲> 리뷰
*이 글은 드라마 <비밀의 숲>에 대한 약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는 때로 (+)가 된다.
결핍은 때로 힘이 된다.
가끔은 없어서 더 특별한 경우가 있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는 두 가지가 없다. 주인공 황시목의 감정, 그리고 러브라인.
<비밀의 숲>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냉철한 검사 황시목과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이 만나, 숨겨진 비리와 진실을 파헤치는 비밀 추적극
주인공 황시목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감정의 부재다. 그는 어릴 적 수술로 인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가장 이성적일 필요가 있는 직업인 검사가 됨으로써 자신의 결핍을 역이용했다. 감정이 없기에 부정부패가 판치는 검찰계에서 홀로 원칙을 고수할 수 있었고, 비리를 망설임 없이 파헤칠 수가 있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정의를 쫓을 수 있었다.
이것이 끝이다. 사건이 종료되어도 변한 것은 없다. 황시목은 여전히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누군가와 연인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구멍을 메우지 않는 것이 나은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구멍이 있으면 메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성장이라고 여기고, 그러한 서사에 감명을 받는다. 그렇기에 드라마 초반, 상당수의 시청자들은 황시목이 한여진으로 인해 감정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사의 진도와 황시목의 감정의 밀도가 비례할 것이라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니 러브라인도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제껏 보아왔던 드라마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은 남녀가 함께 있으면 무조건 애정 전선으로 이으려고 하는 고질적인 습성이 있다.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황시목의 무감정을 어떻게 이용했을까. 아마도,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그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한여진으로부터 따뜻함을 배우고, 마침내 사랑이라는 감정을 꽃피우는 전개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인물에게 없던 것이 기적적으로 생겨나는 연출이 가장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랑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감정으로 꼽히는 만큼, 무감정하던 사람이 사랑을 깨닫게 된다면 그야말로 커다란 발전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정의 구현이 목적인 황시목에게 사랑은 무의미하다. 그는 수사와 추적에서 감정이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여진은 더 특별하다. 황시목에게 의미 없는 사랑이 아닌, 자신과 같이 옳은 길을 걷고자 하는 동행인으로 인정받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목적 없이 애정을 주고받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그러한 관계성이 둘에게는 더 어울린다.
그는 마지막에만 웃는다
황시목은 마지막에만 웃는다. 사건이 종결된 뒤의 후련함만은 허용한다는 의미일까. 이 순간 외에 그에게서 감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여전히 결핍된 상태다. 시즌2까지 끝난 지금, 분명 초반에 비해 황시목의 표정은 다양해졌으나 근본적인 내면은 변함이 없다. 황시목은 시즌2 마지막화에서 전에 비해 꽤나 자연스러워진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시청자들은 시즌3에서 비로소 그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오히려 결핍이 있기에 특별하던 캐릭터의 결핍을 채움으로써, 매력이 새어 나오던 구멍을 막는 셈이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쏘지 않는다면, 아이언맨이 수트를 입지 않는다면 어떨까. 황시목에게 있어서 감정의 부재란 그런 의미이다. 그는 구멍을 가진 상태로 또 다른 사건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는 그때에도, 마지막에만 웃을 것이다.
황시목은 여전히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사랑하는 법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란다. 이것은 결코 악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