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지배하는 도시 권력자
길을 통제하는 욕망은 권력의 도시통제와 지배력 표출의 강력한 상징이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대표하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로마의 당시 지배력을 한문장으로 표현한다. 이는 세계지배의 가장 중요한 공간을 ‘길’로 규정하고, ‘길’을 통해 움직이는 인적, 물적 자원의 지배를 통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은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는 아주 재미있는 도시공간이자 장소이다. 걷기, 뛰기, 책보기, 연인과의 동행, 달콤한 속삭임, 주차, 서있기, 물건 사고 팔기, 구경하기, 머물기도하고 가기도 한다. 셀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특별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가장 민주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빌런들은 이러한 길을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얼마전 까지만 해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퍼레이드’이다. 특히, 군사 퍼레이드. 일반에게 허용된 매우 자유로운 공간을 일시에 길을 막고 자신의 힘과 권력의 과시를 위해 군대를 동원한다. 북한이나 중국은 아직도 이러한 힘의 퍼레이드를 전 세계에 과시하면서 자신의 힘의 공고함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대한민국의 독재자들이 해외 순방 이후 돌아오면서 공항에서 부터 카 퍼레이드를 벌인 일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학교 수업도 마다하고 거리로 달려나가 태극기를 흔들던 순진난망했던 우리의 시절을 기억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당시 수업을 안들어도 된다는 기쁨에 친구들과 함께 고개를 내밀고 지나가는 최고 권력자를 한번 보려고 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에서도 승리와 힘의 상징으로 거대한 길에서 퍼레이드를 통해 권력자의 힘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사용한다. 영화 ‘벤허’에서는 주인공 벤허가 노예신분으로 전쟁에서 사령관을 구하고 승리의 개선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황제앞까지 퍼레이드를 하고 높은 계단을 올라 황제를 알현함으로써 권력과 승리의 개선, 신분의 개선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이와 유사한 장면으로 ‘헝거게임’에서 캣니스를 비롯한 선수들이 스노우 대통령 앞에서 퍼레이드를 벌이는 장면이 절대권력의 상징과 힘의 집중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이다. 특히나 이러한 길의 이미지는 매우 권위적인 건축물과 거대한 흉상, 높은 열주로 이루어진 구조물을 주변에 배경으로 펼쳐놓음으로써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길과 권력자의 힘의 상징을 일치시키게 된다.
‘길’은 도시민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필요하면 정치적 문화적 의지를 표출하는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도로, 길은 도시 전체 면적에서 30% 이상 차지하는 단일 공간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도시의 대표적인 공적 공간이고, 따라서 길의 통제는 도시의 통제를 의미한다.
현대 민주도시에서는 길의 다양한 장소적 기능이 더욱 확대되고 시민들의 공공의 활동장소로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2년 월드컵때 많은 군중들이 거리로 나와 응원하고 기뻐하며, 즐기던 장소는 바로 각 도시의 가장 크고 상징적인 ‘길’이었다. 또한, 각각의 이해단체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장소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며, 촛불을 든 시민들이 결국 권력까지 바꾸는 강력한 힘이 응집되고 분출되는 장소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한민국의 길을 장악한 민중이 국가 권력의 중심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