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간구조의 계급화
도시를 조성하고 성장시키는 거대한 권력은 도시공간구조를 힘에 의해 계급화한다.
고대 도시들은 노예들이 거주하는 별도의 주거도시를 건설하여 권력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징발하였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피라미드나 왕궁, 거대 토목 공사를 위해 수많은 노예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들의 임시 거처인 ‘라훈’ 또는 ’카훈’이라는 주거도시를 조성하였다. 피라미드를 축조하기 위해서는 1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필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당시 도시의 규모는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노예들을 위한 도시는 대부분 격자형의 도로체계를 가지고 있어 집단의 관리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 또한, 도로의 끝은 개방되어 있지 않고 막다른 골목으로 만들어 사실상 노예들의 탈출을 원천적으로 막으려한 철저한 통제형 도시이다. 당시 카훈같은 노동자들을 위한 도시는 피라미드 건설이 마무리 되면 버려졌다고 한다. 아마도 또 다른 토목공사를 위해 다른지역으로 강제 이주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계급화라고 하기엔 현대도시공간을 해석하는데 무리가 있지만, 도심과 부도심을 나누고 기능별로 조닝을 하는 것을 통해 현대도시도 일정부분 공간의 위계가 설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각 지자체에서 수립하는 도시기본계획은 권역별로 기능을 구분하고 도시의 위계를 설정하여 향후 도시의 미래 성장을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공간의 위계화는 오래전 부터 권력에 의해 계급화된 공간구조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이집트 왕자’에서 파라오는 히브리 민족의 급격한 인구증가에 두려움을 느껴 히브리 민족의 어린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된 바는 없지만, 카훈의 주택 바닥 밑에서 어린아이의 유골이 담긴 상자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파라오에 의해 죽은 것인지 질병과 환경에 의해 사망한 것인지 모르지만, 아이를 집안 바닥에 묻은 노예들의 삶이 참으로 처참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예들을 위한 도시는 아니지만 많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미래도시의 암울한 모습은 엘리트 상위그룹과 하층민 그룹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구분되어 계급화로 인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멧 데이먼이 등장하는 영화 ‘엘리시움’은 지구의 상공에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여 일부 상위계층만이 과학기술의 혜택과 최상위 삶의 질을 누리지만,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들은 힘들고 위험한 노동을 감수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비참한 삶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에 갇혀산다는 스토리이다. 엘리시움이라는 도시의 빌런은 잔혹한 착취와 약탈을 통해 쓰레기같은 지상의 노동자들을 쥐어짜며 엘리시움의 영화로운 삶을 지탱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폭력적인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다.
도시를 지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계급화이며 계급화를 통해 지배구조를 시스템화 한다. 권력자 빌런은 시스템의 붕괴를 가장 두려워 한다. 엘리시움에서도 이상도시를 유지하고 원활한 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철저한 위계와 통제를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잔혹한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통제는 단 한명의 반기도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 ‘알리타’도 지상위에 지구를 통제하는 ‘자렘’이라는 공중도시가 있고 지상에 거주하는 고철도시의 인간들은 자렘에서 쓰고 버린 쓰레기로 연명한다. 주인공 알리타 역시 공중도시 ‘자렘’의 밑에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인조인간의 머리를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들은 마치 로마 황제가 시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한 콜로세움의 잔혹한 검투 이벤트를 벌이듯이 고철도시의 시민들을 격렬하고 위험천만한 모터볼 경기에 빠지게 한다. 자렘에 가기위한 유일한 방법은 모터볼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