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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Apr 22. 2024

부재(不在)하는 것의 중요성

Fujin Street, Taipei 2023     iPad


인간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1) 다음 숫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세요. 

(답을 찾기 전에 다음 문제로 넘어가지 마세요. 정답은 글 마지막에 있습니다.)

974, 712, 705, 117, 367, 878, 972, 547


2) 다음 숫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세요. 

839, 706, 214, 470, 936, 621, 448, 383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제1)보다 문제2)를 훨씬 어려워합니다. 

없는 것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죠. 


누구나 한 번쯤 두통(이나 극심한 숙취)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두통이 극심할 때에는 누구나 '이 두통만 사라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몸의 감각을 살펴보세요. 

지금 현재 두통이 있나요? 

두통이 없어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다리가 부러져서 깁스를 했을 때에는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능력인지 절감합니다.

그러나 막상 깁스를 풀고 며칠만 지나면 건강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행복감은 까맣게 잊혀 버립니다. 


고통의 부재도 인식하기 어렵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을 가면 정말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그러나 경험하지 않으면 즐거움이 없는 대신 후회도 없습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공연장에서 직접 들어본 경험이 있나요?

아마 폭풍 같은 감동을 느꼈을 겁니다. 

'이런 명곡이 존재한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그 음악이 존재하지 않다고 해서 당신이 더 불행해질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 음악이 작곡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없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우리는 평화의 소중함을 평소에는 그리 절감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다른 지역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뉴스를 접하면, 비로소 지금 누리고 있는 전쟁의 부재(不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환경의 소중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 기후로 고통을 받아 봐야 적절한 기후가 유지되는 것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질병도 그렇습니다.

코로나19로 모든 자유가 제약을 받고 수많은 생명을 잃은 후에야 전염병의 부재(不在)와 예방의 중요성을 인류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의 영향이 감소하자 이내 전염병 부재(不在)의 중요성을 빠른 속도로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건강할 때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추락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해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가끔이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면,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행복은 내가 무언가를 더 가지고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不在)를 인식하는 것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답]

문제 1) 모든 숫자에는 7이라는 숫자가 들어있습니다.

문제 2) 모든 숫자에는 5라는 숫자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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