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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기현 Apr 11. 2021

불과 싸우는 소방관의 이야기, 웹툰 <1초>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2020년 4월 1일,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누어져 있던 소방공무원의 신분이 국가직으로 통합되었다. 소방공무원의 신분이 국가직으로 통합된 것은 1973년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분리된 이후 약 47년 만에,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법안이 발의된 지 9년 만이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소방 인력과 소방 장비 규모에 차이가 있었고, 지역마다 소방관의 업무 환경과 소방 구조 서비스 제공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지방직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통해 지역 간 소방공무원의 처우가 균일해지고 대민 소방 서비스의 질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소방관서 간 공동 대응 체계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소방관 호수의 이야기   

<1초>(시니, 광운, 네이버)는 ‘불’과 싸우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다. 프롤로그가 제법 임팩트 있다. 프롤로그에서 구조율 100%의 시광구조대, 그리고 전설의 소방관 ‘호수’가 등장한다. 모두가 더 이상의 구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대규모 화재 현장, 주인공은 아무 염려 말라는 제스처와 함께 자신 있게 불을 향해 돌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만화의 주인공에게 저마다의 특기가 하나씩 있다. 호수는 긴장하는 순간 ‘미래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사고를 예방할 수도,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으로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고 싶은 열정 하나만큼은 우주 최고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새내기 소방관일 뿐이다. 열정 가득히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실제 화재 현장은 신임 소방관이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다. 소방학교에서 지원을 나간 구조 현장에서 어느 누구보다 빨리 요구조자를 찾았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열정만 있고 경험이 부족한 패기 있는 신임 소방관을 커버해주는 것은 베테랑 소방관들의 경험이다. 호수가 소속된 작도 119안전센터 2팀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끈끈한 팀워크가 돋보이는 팀이다. 마치 <미생>의 영업 3팀의 오차장, 김대리, 장그래를 보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팀워크가 좋은 이런 팀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안비밀’이다.

자신의 승진에 미칠 영향은 생각하지 않고 옳은 일에 관해서라면, 부당한 결정을 내리는 윗선과 싸우고, 부하직원을 아끼는 센터장과 2팀장은 우리 모두가 함께 일하고 싶은 관리자다. 자신과 잘 맞는 관리자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요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 선수가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이유 중 손흥민 선수 본인의 능력이 가장 크겠지만, 무리뉴 감독(현 토트넘 핫스퍼 감독)이나 포체티노 감독(전 토트넘 핫스퍼 감독)과 ‘케미’(어울림, 호흡)가 맞기 때문에 중용되는 것이다. 훌륭한 기량을 가졌지만 소속팀 감독과 케미가 맞지 않아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해 한동안 침체구간을 걸었던 박주영 선수나 이청용 선수의 예를 보면 자신과 맞는 관리자를 만나는 것이 행운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조직의 존재 이유  

“미래를 볼 거면 좀 더 큰 그림을 보라고...우리의 임무는 단순히 목숨을 거는 게 아냐. 효율적으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게 임무라고. 괜히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줄 알아? 어차피 전부 구하고 싶은 거잖아? 그러면 달라져야 하지 않겠냐?(36화)

“생각을 해. 그다음 움직이지는 말고. 뱉어라. 어떤 식으로 들어갈 것이며, 어떤 방법이 있는지, 몇 명이 필요하고,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게 조직이 있는 이유다”(37화)

예린과 백두진 센터장의 대사에서 (소방)조직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있다. 조직은 수직적인 직급 체계를 가지고 있고 하급자가 어떤 일을 하려면 여러 단계의 결재를 거쳐야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윗사람들의 의견이 달라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일의 갈피를 못 잡는 경우도 있고(현실적으로는 더 높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보고 단계가 불필요하게 많아서 시간을 허비할 때도 많다.

그러나 조직은 여러 단계의 의사소통 구조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화재 현장은 말할 것도 없다.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개인이 아닌 팀워크로 움직이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반면에 조직은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내용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경우가 그렇다. 위험을 무릅쓰고 인명은 구조했지만, 그 과정에서 단독행동을 하거나 지휘 체계를 거슬렀다면 징계감이다. 소규모의 인원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규모의 산불을 진압한 소방대원이 징계를 받고,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칭찬을 받는 것 같은,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같은 공간에 있기조차 싫은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할 때도 있다. <미생>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박과장’이 있다면, <1초>에는 두 대 때려주고 싶은 ‘구진태’가 있다. 주어진 일은 남에게 미루고, 후임은 부려먹으려 하고, 승진에 눈이 멀어 윗사람에게만 잘 보이려는 전형적인 발암 캐릭터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많다. 싫은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함께 일해야 하는 곳이 조직이다.

이렇듯 조직은 우리의 사회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가 존재하는 한 조직은 존재할 것이고, 그 조직을 좋게 만드는 것도 나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댓글로 완성하는 독자의 참여 

웹툰의 특징 중 하나가 댓글 시스템이다. 레진코믹스처럼 댓글 기능이 없는 플랫폼도 있지만 대부분 웹툰 플랫폼에는 댓글 기능이 있다. 독자는 댓글을 통해 감상을 적거나 등장인물을 평하고 배경을 설명한다. 그중에서 베댓(베스트댓글)은 다른 독자의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이며, 추천을 많이 받을수록 상위에 위치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1초>에는 악플이나 비꼬는 댓글이 적고,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나 스토리를 설명하는 댓글 외에 소방관과 관련한 댓글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현직 소방관과 소방관 가족의 댓글, 소방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거나 붙었다는 혹은 탈락했다는 베댓이 압도적으로 많다. 프롤로그에서 현장에 막 도착한 호수가 바쁜 현장 상황 때문에 서장에게 정식으로 인사하지 않고 대충 손짓으로 인사한 것을 지적하면서, 현실에서는 징계감이라고 걱정하는 현직 소방관들의 진정 어린 베댓도 볼 수 있다.

연재 초기에 ‘이 웹툰을 보고 소방방재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라고 밝힌 고3 학생이 대학에 최종 합격하거나, 소방공무원을 준비하던 수험생이 이 웹툰을 보면서 힘을 얻어 최종적으로 합격했다는 베댓을 종종 볼 수 있는 등 독자의 참여가 <1초>를 만드는데 한몫하고 있다.

이렇게 읽어도 좋다


<1초>에는 호수 외에 많은 등장인물, 그리고 여러 직급이 나온다.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처음 읽을 때는 이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고, 소방사, 소방령, 소방장 등 소방관 직급도 굉장히 헷갈린다. 쏟아져 나오는 등장인물이나 생소한 직급이 신경 쓰이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려니 생각하고 계속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리되니 걱정할 필요 없다.

시니 작가가 소방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한 경험, 그리고 현장에 충실한 자료조사를 통해 소방관의 생활에 대해 현실적으로 그렸다. 중앙소방학교 졸업식 장면에서는 실제 중앙소방학교 교육생들의 인터뷰를 실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소방관들이 겪을 수 있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응급 구조 현장도 실감 나게 다루었다.

그 외에도 출동한 119구조대원에게 함부로 대한다거나, 사소한 개인 일에 구조대원을 부르는 것, 119구급차가 출동할 때 도로에서 길을 비켜주지 않는 장면 등은 독자의 분노를 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소방관, 경찰관, 의료진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사회 곳곳에서 이분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우리가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다. 오늘도 현직 소방관분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이 글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디지털만화규장각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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