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기현 Jul 20. 2023

과거를 바꾸고 싶은 사람들 <갓물주>, <체크포인트>

어렸을 때 본 비디오 중에 <시간탐험대>(원작 : 타임트러블 톤데크만, 일본 후지TV)라는 만화영화가 기억난다. 나중에 MBC에서 방영하기도 한 이 작품은 시공간의 문을 열어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타임머신 주전자 ‘돈데크만’이 리키, 스카이와 함께 역사 속을 여행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그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돈데크만이 시공간을 열어주는 주문, “돈데기리기리 돈데기리기리 돈데크만!”을 외치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돈데크만을 통해 과거나 미래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나도 역사 속 현장에서 과거의 유명한 인물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꿈꾸곤 했다. 어린이들에게 시간여행은 동경의 대상이다.


직장인들에게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크게 두 가지 정도의 답변이 나올 것 같다. 하나는 고3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또 하나는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아닐까. (기혼이라면 결혼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고3 시절로 돌아간다면 치열하게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가서 지금보다 더 좋은 직업 또는 직장을 갖겠다는 의미다.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그때로 돌아가서 삼성전자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부동산을 구입해 현재 시점에서 경제적 부를 누리고 싶다는 뜻이다. 고3과 사회 초년생이라는 답변의 공통점은 지나온 과거에 대한 후회이며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다. 어린이와 달리 직장인에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현실에서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불만족과 경제적 불만족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다.


2010년대 초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행했다. 2012년에 한 해에만 <인현왕후의 남자>, <프러포즈 대작전>, <닥터진>, <신의>, <옥탑방 왕세자> 등 5개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2021년 현재,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간여행이라는 테마는 아직도 유효하다. 1895년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ge Wells)의 <타임머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워낙 많은 작품이 나왔기 때문에 이야기 구조도 뻔하고 ‘또 시간여행이야?’라고 질릴 법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시간여행물에 열광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때문이다. 앞으로 과학이 발전해서 정말로 시간여행이 가능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실에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 시간여행물을 통해 개인의 바람을 드라마나 영화에 투영하고 대리만족하는 셈이다. 


대체로 시간여행물은 ‘타임머신’류와 ‘타임슬립’류로 나눌 수 있다. 타임머신류는 말 그대로 ‘기계’를 통해 과

거나 미래로 가는 것이고, 타임슬립류는 ‘우연히 또는 초자연적으로 미끄러져’ 시간을 이동한다. 오늘 소개할 <갓물주>(HD3, 네이버)와 <체크포인트>(송가, 운소, 네이버)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웹툰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갓물주>는 위에서 설명한 시간여행물 중 타임머신류이고, <체크포인트>는 타임슬립류에 비교적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자, 이제 <갓물주>와 <체크포인트>를 만나러 가자.

주인공 송강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건물을 한 채 물려받는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듯이 강기의 주변 사람들은 건물주가 된 강기를 부러워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로 부러워해야 하는 것은 강기가 건물주가 된 것이 아니다. 강기가 물려받은 건물에는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이 건물은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른 만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한 건물이다. 강기는 최대한 선한 의도로 이 건물을 사용하려는 반면, 사촌인 마기는 호시탐탐 강기의 건물을 노리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이 건물을 사용한다. 


<체크포인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시간능력자의 이야기다. 하루의 특정 시간에 체크포인트를 설정하면 마음먹은 대로 몇 번이든 자신이 저장한 체크포인트로 되돌아갈 수 있다. 어렸을 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다시 먹고 싶다는 바람으로 여러 번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자신이 체크포인트 능력자임을 알게 된다. 또한 주인공은 승률 100%의 도박사인데, 도박판에서 게임의 결과를 확인한 후 체크포인트 지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게임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기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타고난 능력 덕분에 노력하는 것을 싫어하고 체크포인트로 결과가 바뀌지 않는 달리기 같은 운동은 좋아하지 않는다.

 

시즌 1과 시즌 2를 관통하는 세계관은 체크포인트를 활용해 누군가를 구한다면 대신 다른 누군가 대신 죽게 되는, 앞의 <갓물주>와 마찬가지로 등가교환의 법칙이 성립된다는 점이다. 후회되는 과거를 바꾸고, 소중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 일로 인해 주변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면 과연 좋은 일일까?


‘신선 놀이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의 근원 설화는 중국과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견된다. 옛날 한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두 백발노인의 바둑을 구경한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옆에 둔 도끼를 보니 자루가 썩어있었고, 산에서 내려오니 오랜 시간이 지났고 손자가 그 나무꾼의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는 식이다. 서사 방식이나 강조하는 부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간을 거스르는 이야기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시간여행 서사가 진부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시간은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앞으로도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은 계속 나올 것이다.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개선하기 위해 과거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선시대에도 마케팅이 통할까? <조선홍보대행사 조대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