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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Apr 01. 2024

남편이 빠졌다. 골프도 아니고 '이것'에

남편이 빠졌다. 무엇에? 골프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아내인 나는 더더욱 아니고... 바로 '알O'에.


이 업체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한다. 한때 사랑했던 인터넷 쇼핑도 나이가 들어 귀찮아서 안 했더니, 한동안 우리 집에는 택배가 올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현관 앞에 택배가 쌓여있다. 더군다나 그 택배들은 머나먼 나라, 중국에서 날아온 것이다.


어떤 날은 핸드폰 케이스, 또 어떤 날은 제빵 도구, 허리벨트, 충전기, 차량용품... 별별 물건들이 매일같이 오는데, 처음엔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택배 오는 날의 빈도와 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아이들까지, '아빠 알O 중독 아니야?'라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남편은 침대에 누워 알O 사이트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즐긴다. 그러다 다짜고짜 내게 '이거 필요 없냐'라고 묻는다. 나는 심드렁하게 필요 없다고 하는데, 그는 "아냐, 사놓으면 필요할 거야"라며 내가 말릴 새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러버린다. 그리고는 꼭 이 말을 덧붙인다.


"에이, 그래봤자 n천 원인데 뭘."


얼마 전엔 남편이 알O에서 우리 가족의 핸드폰 케이스를 주문했다. 그런데 받고 나서 그립감이 좋지 않아 별로라고 했더니, "그럼 다른 걸로 또 사지 뭐"라며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남편의 손을 부여잡고 아니라고, 괜찮다고,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라고, 극구 말렸는데... 사실 모를 일이다. 지금 지구 어디메쯤에서 나의 새 핸드폰 케이스가 날아오고 있는 중인지.


친구도 알O에서 옷을 열 벌 넘게 샀는데 그중 두어 벌만 건지고, 나머지는 나눔을 하거나 결국 버렸다고 했다. 실제로 당근에서 알O에서 산 제품이 나눔으로 올라오고, '알O, 테O 추천 아이템' 같은 정보들이 자주 노출되는 걸 보면 중국 쇼핑 플랫폼이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다들 이렇게 거침없이 구매를 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이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친구가 산 옷도 한국보다 50% 가까이 저렴하고, 남편이 사는 물품들도 대부분 몇 천 원선으로 다이소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무려 배송비 포함가인데도 말이다. 요즘 손 떨리는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거저나 마찬가지다. '이 가격이 말이 돼?'라며 속는 셈 치고 구매를 하게 된다. 남편의 시작도 딱 이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싸다 보니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무 쉽게 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하나만 건져도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다들 구매 결정을 한다. 사고, 버리고, 사고 버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생산과 소비가 원활해야 경제 활성이 된다지만 멀쩡한 제품도 단순한 취향 문제로 쉽게 폐기를 하니 지구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싼 가격에 시장 생태가 망가지면 국내 시장은 또 어떻게 되려나.

최근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아네뜨라는 덴마크 할머니의 생활 모습을 작가의 시선으로 밀도 있게 관찰한 에세이다. 그중에서도 덴마크인들의 물건에 대한 철학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는 유산이라 하면 당연히 부동산, 돈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덴마크에선 돌아가신 분이 쓰던 가구, 시계, 소품, 옷 등... 사랑하던 사람이 쓰던 물건을 유산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주인공 아네뜨 집 역시 위대한 유산으로 꾸며져 있었다.


증조할머니의 책상을 손녀의 작업대로 쓰고, 아버지가 만든 소품들이 집 안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이야기 같았다. 이야기가 담기고 손때 묻은 물건들은 어떤 신상품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필요가 없어진 물건들은 플리마켓에 팔거나 교환을 한다. 덴마크에선 이렇게 물건들이 쉽게 버려지지 않고 순환된다고 했다.



우리 역시도, 물건이 가지는 의미를 단순히 소비 내지는 취향의 문제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너무 쉽게 버려질 물건은 아예 갖지 말자는 주의다. 오히려 가격은 조금 나가더라도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물건을 집에 들이고 싶다. 그래서 그 물건과 나만의 친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쉽사리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머물게 하고 싶다.


그러려면 물건을 살 때 신중할 수밖에 없다. 고민이 길어지는 것부터가 물건에 대한 가치가 매겨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100원짜리 물건도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실제로 엄마가 과거에 버리려던 접시도, 내가 몇 년 전 가져와 우리 집에서 아주 잘 쓰고 있다. 쓰레기가 될 뻔했지만 내가 의미를 잘 부여하고 쓰자 여느 명품 그릇 부럽지 않게 소중해졌다.


쉽게 사고 쉽게 버려질 조악한 물건보다, 하나하나 의미가 담긴 물건들을 우리들의 공간에 초대하고 싶다


#여보알아들었으면끄덕여


* 편집: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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