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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Oct 30. 2022

현재가 있는 이유

<소년이 온다>

  내게는 늘 숙제이자 마음의 짐과 같은 책이었다. 더 늦기 전, 그래, 5월이 가기 전에는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갈 수 있는 부산의 모든 도서관에서 모두 대출중이었다. 때문에 스스로와의 약속은 저버리겠지만, 안도감이 든다. 타지의 많은 사람도 여전히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혹시나 이 책으로 글을 쓰게 된다면 이 이야기를 꼭 언급하고 싶다. - 5월 초 어느 날 -


  한강의 소설 대부분이 묘사가 생생하다. 당시의 참상을 써 내린 소설인 만큼 그의 다른 소설보다도 더 역할 것이라는 각오 정도야 단단히 하고 읽었다. 그런데도 약해빠진 비위에 ‘투명한 창자’라든지, ‘비틀어진 살 사이로 튀어나온 하얀 뼈’라든지 과한 형용에 책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버리긴 했으나, 이와 동시에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이 서글펐다. 책을 읽으면서 코가 시큰해진 것은 꽤 오랜만에 겪는 일이라 나도 놀랐다. 너무 어린아이들과 여성, 죄 없는 시민들의 죽음과 그들이 겪었던 폭력이 꽤 가깝게 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스물한 살, 망월동에 처음 갔던 그 날을 기억한다. 추적이는 비에도 가진 것 중 가장 불편하고 얌전하고 새까만 구두를 일부러 신었다. 묘역은 생각보다 넓었고, 유족들과 정치인들과 기자들이 뒤섞여 혼란한 판이었다. 셋 중 아무것도 아닌 나도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초짜 티가 줄줄 흐르는 한 기자가 손을 떨어가며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물이 났다. 광주에 온 지 반년도 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역사를 역사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추모하질 못하는 것에 벌써 넌덜머리가 났었다.

“5.18은 언제쯤 정치판에서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정확히 내가 뱉었던 단어들이 떠오르진 않는다만 이 문장을 겨우 돌리고 돌려 말하며 날 세우지 않으려 노력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제법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정치인들의 5.18 관련 망언이 화제로 오르내린다.


  이 소설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은 너무 약하고 평범한 인물이었다. 동호와 정대는 겨우 16살이었다. 정미는 그 당시 그저 평범한 장녀들의 안타까운 삶을 살며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죽었다. 정대의 혼령은 자신과 누나를 누가, 왜, 죽였는지, 그토록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유는 어디도 없었고 가해자는 너무도 많았다. 평범한 이들이 국가의 탄압에 희생된 사건이 자명한 사실인데, 민주주의 아래에서 일하는 정치인 몇몇은 전두환을 비호한다.

  이름도 없이 스쳐 지나간 책 속의 여러 등장인물은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라는 전단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온갖 곳에 있던 사복 경찰에게 얻어터졌다. 연극의 막이 올라간 도중에도 은숙은 이곳에 사복 경찰들이 숨어 있을까 걱정했다. 자신이 맞은 뺨 일곱 대에도, 끝없이 검열하고 교정하는 원고에도 그런 위태함과 두려움이 있었다. 나라를 위해야 할 경찰과 군인은 오직 한 사람만을 지켰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죽었다. 못 알아보게 핼쑥해진 얼굴을 비췄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대뜸 죽었단다. 이미 천수를 누렸다. 암세포가 그를 더욱 괴롭히길 바랐는데 아까웠다. 새삼 내가 너무 잔인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난장판이 된 인터넷 기사 댓글 창이 제법 위안이 됐다.


  과 동기들과 여수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택시를 불러 펜션으로 향하는데 넉살 좋은 기사님이 이리저리 말을 붙이셨다. “아니 근데 어디 학교 학생들이래?” “전남대요!” 일순간의 정적. “내가 그때 계엄군이었어. 그때 보고 들었던 건 무덤까지 비밀이여.” 햇빛은 쨍했고 나는 관광객이었다. 참으로 시간과 장소와 대상이 적절치 못한 고해성사였다.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는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난 계엄군도 피해자라는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위의 문단이 언뜻 그들을 감싸고 있기도 하고, 책의 에필로그에도 계엄군의 도움을 받았던 이야기를 여럿 전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들 또한 일종의 피해자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결국은 가담자들이었다. 부정할 수 없이 자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무덤까지 들고 가야 할 것은 당시 보고 듣고 자행한 모든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죄책감과 최소한의 당연한 양심이어야만 한다. 그 많던 군인들은 지금은 죄다 어디 있는 걸까?


  악역에게 서사를 주며 입체감을 더하는 이야기들은 흔하고 인기 있다. 누구나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며,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들을 쉽게 옹호하게 될지라도 그런 이야기가 더 좋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계엄군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지 않아서 좋았다. 소설이 그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소설적 표현으로 담겨있어도 짙은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계엄군에 서사를 주면 일반 시민들이 겪은 피해의 모습이 엷어질 게 예상됐다. 당시 광주가 겪은 비참함을 드러내기에는 내가 싫어하는 소름 끼치는 묘사가 필요했고 내가 좋아하는 입체감은 덜어내야 했다. <소년이 온다>는 다행히 온전히 참담했다.


  스물둘 5월의 어느 날, 학교 후문에 파리 떼가 몰려들었다. 종종 버스킹 행사나 플리마켓이 열리던 공간이라 시끄러운 건 익숙했지만, 그런 목청은 또 처음이었다. 겉으로는 반지르르 광주 시민을 이해하는 척 포장하는 말을 섞어도 그 속은 혐오로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연신 “공적 조서 까!”를 외치는 그들을 캠코더로 담았다. 휴대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하던 누군가도 반격하듯 나를 찍어댔다. 그저 마스크, 선글라스, 챙 깊은 모자로 중무장한 꼴이 우스울 뿐이었다. 그들 스스로 망상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꼴 같았다. 아무리 부정해도 어쩔 수 없다. 도시가 통째로 관짝이 되어버린 날이었다. 여전히 광주의 대부분 학교는 5월에 축제를 열지 않는다. 학교 후문이 그렇게 시끄러웠던 날도 5월 중 그때가 유일했다.

  스물넷 5월의 어느 날엔 카메라를 목에 걸고 망월동을 찾았다. 코로나 19라는 새로운 세상을 맞았기 때문인지 묘역이 날답지 않게 한산했다. 그제야 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얗게 세 버린 머리를 가지런히 쪽지고 묘비 앞에 퍼져 앉은 노파, 연신 무덤을 쓸어내리며 흐느끼는 중년,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까지. 뷰파인더가 담아내는 풍경은 5.18이 단지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해내고 있었다. 당장 나 역시 잘 모르던 시절, 아주 오래 돼 역사책 속 일이라고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친구와 형제, 자녀, 심지어 부모도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었다. 그래서 셔터를 누르기가 꺼려졌다. 아직도 생기를 뿜으며 살아있는 현재가 순간의 역사로 그칠까 너무 무서웠다.

  40여 년이 지났다. 격동하던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대도 그 당시완 비교도 안 되게 현대의 꼴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이제야 우리가 지나간 그 전철을 밟고 있는 나라도 있다.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민주주의는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내일의 모습임에도, 공기나 물만큼이나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일곡동, 삼각동, 내가 살았던 중흥동, 나의 모교. 소설 속 이 익숙한 이름에서 낯선 풍경을 느꼈다는 게 자못 죄스러웠다.




학교에서 또 표절로 연락오진 않겠죠...? 내읽내쓴입니다...?

이런 조악한 걸 누가 베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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