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은배달하지 않는다>
도시문물의 단짠과 ‘배달의민족’은 실로 경이롭고도 위험한 존재였다. 먹성 좋고 식탐 많은 우리 자매는 자취를 시작한 이후 눈만 마주치면 치킨과 떡볶이를 시켰다. “니네 또 떡볶이 시켜먹었제?” 엄마의 신통력인지 그간의 빅데이터인지,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하면서도 늘 우리의 저녁 메뉴를 맞히셨다. 그릇 대신 플라스틱 용기를 설거지하면서 밥 좀 해 먹어야지 결심했지만,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는 다짐이었다. ‘배달의민족’이 없었다면 상황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배달의 민족이 서비스되는 음식점이 거의 없던 고향에서의 경험을 떠올려보자. 물론 부모님이 음식을 늘 해주시기도 했고 중, 고등학생이었으니 돈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배달음식까지 도달하는 장벽이 매우 높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하고, 맛집을 찾고, 전화번호를 검색하고, 전화를 걸고, 오매불망 배달오기만을 기다렸다가 기사님께 직접 결제해야 하는 그 과정이 상당히 귀찮고 번거로웠다. 더군다나 주문 전화에도 긴장해버리는 소심한 나에게 배달음식은, 대본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내려지지 않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영역이었다. ‘배달의민족’은 이런 장애물을 간단하고 강력하게 날려버렸다. ‘배달의민족’이 있는 한, 통장 잔고 외에 우릴 가로막는 장벽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배달의민족’의 편리함은 비단 나만 느끼고 있는 게 아니다. 배달 어플에 가게를 입점한 이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소상공인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보면, 그만큼 많은 소비자가 배달 어플의 편리성을 실감하며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달 어플의 활황으로 음식점 정보와 전화번호가 모여있던 배달 책자가 사라졌는데, 이는 ‘배달의민족’ 초기 모델이었다. 인쇄 매체에서 스마트 미디어로 옮겨가면서 정보 제공 이상의 역할이 더해진 것이다. 플랫폼은 이렇게 언제나 존재해 있었다. 어쩌면 편의점이나 마트와 같은 유통업계도 어떤 의미에서는 플랫폼 시장과 줄기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어디서 샀냐는 물음에 답할 때, “빙그레 제품이야”, “빙그레에서 샀어”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이마트24에서 샀어”라고 말할 것이다. 플랫폼 시장의 위력은 여기서 나온다. 실질적인 생산자와 노동자를 지워버린다. 실제 10대들은 플랫폼 시장을 하나의 생산자로 여기고 있는 경향성이 크다고 한다. 데일리룩을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옷 정보를 ‘지그재그’, ‘W컨셉’, ‘무신사’라고만 기재하는 이유다. 또 ‘네카라쿠배’로 줄여지는 유명하고 유망한 IT 기업 중, ‘라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온라인 플랫폼 시장이거나 이를 함께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플랫폼 시장은 주류가 됐다.
이 많고 많은 플랫폼 기업 중에서도 이 책은 ‘배달의민족’을 다뤘다. 배달일을 하는 저자가 경험하고 느낀 플랫폼 노동의 가혹함은 노동자가 지워진 알고리즘과 노동법에 그 이유가 있었다. ‘배달의민족’은 앞서 이야기했던 다른 플랫폼 기업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기업-상품-소비자가 아닌, 기업-노동자-소비자로 연결돼 있다는 뉘앙스가 더 짙다. 노동자가 인터넷망 바로 위에서 일하고 있으니 알고리즘으로부터 받는 영향력도 크다. 최대한의 이득을 위해 노동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콜을 분배하고 배달 시간을 계산한다. 기계의 논리라지만, 당연히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배달 노동자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이 철저한 손익 속에서 일궈진 결과는 5년간 업무상 사망사고자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이라는 오명이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배달 노동자의 특수성 역시 이 악명을 얻는 데 기여했다. 수수료로 먹고사는 배달 노동자들은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면, 무리하게 콜을 잡을 수밖에 없다. 한 배달 노동자는 10개월 만에 3천만 원의 빚을 갚았고, 또 다른 노동자는 월 소득이 500만 원이라고 한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배달 노동 시장에 뛰어든 이들은, 이 일을 하면서 이보다 적은 돈을 번다면 일을 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한 시간에 3건 이상 콜을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지만, 저 정도의 수익은 하루에 60건 이상, 주 6일을 일해야 가능하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배달대행업체 사장의 무지와 욕심으로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잦다. 배달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도로 위 돈을 줍는다.
배달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는 그들을 향한 저열한 인식이 한몫한다. 물론 위험하게 운전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몰래 빼먹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배달원들은 욕먹을만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하는 일부 배달원만 비난하는 게 아니다. 비행 청소년을 다룬 영화에서는 “저런 남자애들 크면 다 짜장면 배달한대”라는 대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이미 오래전부터 배달원을 싸잡아 천시했다. 이런 선입견 속에서 그들이 하는 권리 주장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소비자의 마인드는 어떤가? 노동문화 토론을 할 때 너무 소비자 위주의 사회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노동자의 처우 개선으로 소비자에게 들 금액 부담에 대한 논의 자체가 속 쓰렸다. 당연히 일차적으로는 기업에서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맞지만, 완벽히 커버할 수 없다면 소비자에게 그 부담이 돌아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시로 배달비 이야기를 했었는데, 언젠가 자연스럽게 생긴 배달비는 오롯이 기업과 가게의 필요로 생긴 거니 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오히려 아파트 경비실의 에어컨 설치 문제, 택배 차량 지상 출입 문제와 비슷한 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자는 아파트 주민이 사용자이자 소비자이기 때문에, 후자는 정당한 이유 없는 이기주의에 불과해 비난의 소지가 더욱 명확하긴 하다, 그러나 배달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소비자에게 어떤 부담도 전혀 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비용 걱정이 우선이라는 것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번질지 눈에 보이듯 뻔하다. 물론 이런 내 생각이 상당히 노동자의 입장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살지 모르겠다. 이미 배달료를 주고 있으니 책임을 다했다고 이야기한다면 할 말은 없다. 토론 때도 나온 이야기지만, ‘배달의민족’에서 ‘고마워요 키트 이벤트’로 한때 논란이 됐었다. 배달 기사들을 위한 물이나 간식을 넣을 가방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이벤트였는데, ‘소비자에게 복지를 떠넘긴다’라는 목소리가 커 금방 이벤트를 접었다. 물론 이벤트 주체가 ‘배달의민족’이 아닌 다른 단체나 개인이었다면 반응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복지를 떠넘긴다’라는 표현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겨우 물 한 방울 더 챙겨주는 게 복지가 될 수는 없다. 간식을 나눠주는 이런 행동은 정말 소비자로서 베풀 수 있는 호의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진지한 토대 위에서 복지가 논해졌으면 한다.
인식 자체가 후져 권리 주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앞서 하긴 했지만, 개개인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조 활동과 배달업 허가 등으로 권리를 높이기 위한 시도라도 지속하는 게 어쩌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며칠 전 고등학교 후배가 배달대행업체를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사업할 수 있다더라도 아무나 사업하면 안 되지 않은가? 어린 나이도 나이지만, 그 친구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윤리적인 사장으로서의 마인드를 아예 볼 수가 없는데 자금만 있다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참 묘했다. 그런 의미에서 허가제는 배달업 인식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처음에는 배달 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는 있다더라도, 조금 더 나은 업주, 명확한 체계 아래에서 안전과 권리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자, 그래서 이런저런 논의 끝에 배달 노동 시장이 조금이라도 개선됐다면, 문제는 끝날까? 전혀 그럴 수 없다. 애초에 이 문제는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불안정한 노동 환경 위에 새로운 갈래가 하나 더 생겼던 것일 뿐이니 입구를 위태하게 틀어막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특히 우리 부모님 두 분도 모두 육체노동을 하고 계셔서 배달 노동자의 안전문제가 남 일 같지 않았다. 조선소에서 일하시는 아빠는 한 달에 한두 번 만날 때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달고 오시는데, 이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닐 거다. 가끔은 무섭다. 고용마저 불안한 나이 든 하청업체 노동자인 우리 아빠가 만에 하나 큰 사고라도 당한다면, 어떤 세상과 어떻게 싸워야 할까. 배달 노동의 과로와 불합리한 처우는 공무원 사회에도 있다. 조리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엄마는 3년간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서 일하시며 노동시간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셨다. 학생들이 밥을 먹는 아침 7시까지 단체 급식을 준비하려면 최소 새벽 네 시까지 출근해야만 하는데, 그 출근 시간이 말도 되게 이르다는 이유로 출근부는 늘 여섯 시로 작성해야만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출근해 점심 설거지와 각종 업무까지 끝나면 퇴근 시간은 네 시, 다섯 시가 넘는다. 과로하면서도 노동시간마저 급여로 돌려받지 못하셨다. 정식 공무원인 우리 엄마가 받는 대우도 이런데, 정규직 조리사가 아닌 다른 이모님들의 상황은 사실 불 보듯 뻔하다. 이곳저곳에서 입으로는 개선되고 있다는데, 피부로 느껴지는 건 거의 없다.
한시라도 빨리 노동자가 되고 싶지만, 보고 겪은 일들에 앞으로 발을 내딛기가 두려워진다. 방송계에 꿈을 접은 것도 불안정한 고용 형태와 불합리한 처우 때문이었다. 예전에 잠시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지역 방송사는 여성 정규직 아나운서를 거의 구하지 않았고, 프리랜서 계약도 말만 프리랜서지 상근인 경우가 파다한, 파면 팔수록 괴담만 난무하는 판이었다. 영상 편집을 배우고 재미를 붙이면서는 뉴미디어 계통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잠깐 했었다. 그렇게 약자의 권리를 외치던 유명 뉴미디어 채널에서 크리에이터를 상근 프리랜서로 채용했다가 처우 개선을 위한답시고 연봉 계약 비정규직으로 전환했다는 이야기에 정을 뗐다. 아무리 눈을 돌려도 둘 곳이 없어서 그냥 포기했다. 어디라도 밥줄만 붙들 수 있다면 다 좋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너무 많고 다양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했다. 곧 내 일이 될 생각을 하니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여, 배달 노동자에 관해 떠들다 신세 한탄까지 해 버렸다. 그저 단 하나,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말을 가장 하고 싶었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어떤 형태의 노동을 하든, 노동자는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길 바란다.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다가 세상을 떠나도, 누군가 몸을 불살라도, 사회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얼마나 더 격한 충격이 필요한 걸까. 노동자가 태반인 이 땅이 냉담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