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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Feb 21. 2021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야자키 월드


예술은 개인을 따라간다. 지독히도 개인의 것들을 녹여 표현을 하기에 예술은 예술일 수 있지 않을까? 창조는 어느 날 툭하고 떨어지는 새로운 게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연결시켜 만들어내는 과정이라 한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림, 음악, 글, 공예품 등의 예술의 탄생은 더더욱 작가 개인의 사상을 녹일 수밖에 없다. 작품들은 늘 작가의 삶 속에서 얻은 여러 사상들과 함께 한다. 그걸 보고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수용자 개인의 몫이지만, 어쨌든 새로운 건 만들어져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작가 개인을 들여다본다는 건 작품을 받아들이는 시야와 사고를 완전히 확장시켜버린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좋아하는 지브리 작품들을 다루는 미야자키 스튜디오의 수장 중 한 명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과 그의 작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책을 본 뒤 다시 돌아본 작품은 또 새로웠다. 표면적 해석들로 알 수 있는 내용과 더불어 지독히도 미야자키의 사상이 담긴 작품은 곳곳에서 그 요소를 표출하고 있었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마법, 지브리 스튜디오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이라는 뜻의 지브리 스튜디오는 1985년에 설립되어 애니메이션계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손작업의 전통을 고수하는 지브리 작품들은 지브리만의 특유의 느낌을 굉장히 잘 간직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 점은 지브리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미야자키를 빼놓고 논할 수 없는 지브리의 작품들은 훌쩍 커버려 30대가 돼버린 나지만, 한창 자라나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나와도 함께 였다. 지브리의 작품을 태어나 처음 접한 건 아마도 천공의 성 라퓨타이지 싶다. 이웃집 토토로랑 시기가 헛갈리는데 정확히 기억나는 건, 그 어린 나이에 작품의 심오한 뜻은 모를지언정 두 작품 다 세상모르게 빠져 봤다는 점이고, 천공의 성 라퓨타는 부모님이 빌려다 주신 비디오로 봤었고 이웃집 토토로는 동생과 함께 엄마와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서 봤었다. 그때부터 지브리는 나와 함께 했다.


그 뒤로 토요일도 학교를 나가야 했던 시절 토요일의 수업활동 때 틀어주던 모노노케 히메, 중학교 2학년 때 지금 생각하면 몹쓸 짓이었던, 미리 선 반영되는 일본 영화 등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여 반 친구들과 다 같이 봤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지브리 작품은 내 기억과 함께 했다. '뭣도 모르고' 그저 영상에 홀려 보던 어린 시절을 지나 '뭐 좀 알 수 있는' 중학교 시절 때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지브리' 자체에 빠져들게 하기 충분했다. 그때부터 나는 지브리 작품이라도 일단 믿고 보는 사고가 자리 잡았다. 히트작들 위주론 다 찾아보았는데 대작들은 하나같이 미야자키가 감독한 작품들이다. 지브리에서 나의 원픽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지브리는 지브리 자체로 엄청난 마력이 있다. 빨려 들어갈 듯한 화면 속 세계는 상상 이상의 것들을 표현한다. 행동감이나 표현력, 묘사력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완벽을 추구하는 미야자키의 성격상 작품 퀄리티는 늘 높다. 애니메이션은 이래서 매력이 있다. 뭐든 표현이 가능하다. 그런 미야자키의 작품엔 미야자키의 인생이 담겨 있다. 전반적으로 작품들에서 보이는 공통성과, 작품마다 곳곳에 들어있는 미야자키의 사상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했다.



미야자키의 생애와 작품들


미야자키 하야오


 1941년 1월 4일, 일본이 전통을 버리고 서구의 제도와 관습을 받아들이며 근대화에 성공하고 있던 시절에 태어나 세계 2차 대전의 끔찍한 폐허와 함께 제로센(진주만 공격에 사용된 전투기)의 패넬트를 만드는 공장의 소유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가족이 전쟁으로 재산을 늘린 사실에 부채감을 느꼈지만, 부를 안겨준 비행기와 전쟁 시대에 대한 태도는 양가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듣고, 보고, 자란 미야자키에게 기술이란 양날의 검같은 주제이다. 군국주의적 열망에 타올라 야심 차게 시작한 세계 2차 대전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미야자키와 스튜디오 지브리 동료들은 젊은 세대가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고 믿는다. 전쟁 후의 폐허에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 줄 몰랐고, 애도와 절망이 공존했고, 분노는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간 군사 지도자들과 그들의 무력함을 만천하에 알린 미국 침략자 모두에게 향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미야자키의 예술은 세계대전의 잿더미에서 피어났다. 천재를 탄생시키는 데에는 가족, 유년기, 교육, 문화 같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정신적 상처, 다시 말해 트라우마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 예술가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초월하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촉매제로 해 고통을 예술로 승화함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한다. '

-P.34


이런 어린 시절은 미야자키 작품 속에 여과 없이 녹아있다. 미야자키는 말한다. 판타지는 영웅이 되는 공간이라고. 미야자키는 트라우마 보다는 인내의 미덕이 중요하다 말한다. 견디는 수밖에 없다. 치유할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미야자키의 초기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최근작 <바람이 분다>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마다 등장하는 "살아야 한다."라는 주문은 미야자키 사상의 인내, 견딤, 수용의 자세를 보여준다. 회복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바람이 분다

자연과 인간


미야자키의 세계에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다룬다.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등 자연에 대한 저주를 구체적이게 풀어낸다.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전후 일본의 산업화 광풍으로 인한 오염에 특히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세계대전의 영향도 있지만 일본 고유의 사상에서도 유래한다. 미야자키 세계에 관해 서구 학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일본의 토속 신앙 신토은 세상이 신으로 가득하고 신이 반드시 인간의 모습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미야자키의 작품을 보면 '신'의 모습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그 양상을 띄고 있다. 일본인들은 역사 내내 시달렸던 화산 폭발, 지진, 쓰나미를 겪으며 재난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이런 재난 사상은 오랫동안 일본의 미학과 대중문화에서 중요한 축을 이뤘다. 그래서 일본의 여러 작품들에서도 종말론적 시각이 드러나는데 중에서도 미야자키의 작품이 유독 매력적인 건, 자연재해가 지닌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전투, 파괴의 잔해 만연한 폭력과 함께 혼란과 재앙을 초월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미야자키는 작품에 재난, 재앙을 다루지만 희망과 회복의 이미지도 함께 선사한다.


'미야자키가 만든 종말의 이미지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 크게 영향을 받지만, 그 속에 담긴 강렬함과 아름다움은 삶을 무상하게 여기는 일본의 오랜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

-P.39

원령공주,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가족'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


미야자키는 어린 나이 어머니가 결핵에 걸리는 종말을 경험했다. 미야자키의 어린 시절 내내 누워있던 엄마를 지켜봐야 했고, 어머니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무시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은 어쩌면 트라우마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린 미야자키는 긍정적이고 인내심이 강했다. 이런 과거는 미야자키의 여러 걸작에 드러난다. 주인공이 가족과 이별을 하면서 '소우주의 종말'을 맞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런 엄마의 모습은 후 미야자키 작품의 강인한 여성들의 영감이 되었을 거다. 또한 그 전쟁통에도 군수 사업을 하던 할아버지가 모은 재산 덕에 미야자키 가문은 전쟁 동안 안락한 은신처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때 미야자키가 머물던 공간의 넓고 아름다운 정원은 <이웃집 토토로>의 시골 마을이나 이후 작품의 비밀 정원들에 녹아들어 미야자키의 유년기 흔적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유독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문제를 용감하게 헤쳐나가는데 이것 또한 유년시절 전쟁의 폭격을 맞고 한밤 중 트럭을 타고 피신을 하던 중 "저희 좀 태어 주세요!"라 외치는 아이를 업은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도 그대로 가버린 일화가 트라우마로 남아 머릿속에 뿌리 박혀 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부유하게 살았다는 죄책감, 부모가 여자와 아이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분노, 전쟁으로 돈을 벌었다는 죄의식과 부채감은 어린 시절 미야자키 자아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책임은 <이웃집 토토로>에서 엄마 없는 가족을 돌보는 사츠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어린 시타와 파츠가 힘을 합쳐 세상을 구한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다섯 살짜리 소스케가 얼마를 돌보고 쓰나미의 시련을 헤쳐나간다.


천공의 성 라퓨타 시타와 파츠


벼랑위의 포뇨와 소스케


이웃집 토토로 사츠키와 메이 자매


책임감, 공동체 의식, 용기가 제 역할을 하게 인류애적 상호작용을 대안으로 희망을 풀어간다.

이런 기억은 미야자키의 난관적인 세계관을 추구하게 한 구심점이 됐다. '잃어버린 것'을 한탄하는 대신 '남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상을 그려낸다.

저주가 풀리고도 백발의 소피

애니메이터의 탄생


미야자키의 뛰어난 그림 실력과 끈질긴 인내를 가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애니메이션이 자신의 인생이 될 거란 확신을 가져다 주기엔 부족한다. 그를 뛰어난 애니메이터이자 감독으로 만든 건 심리적 깊이이다. 작품마다 반복하는 테마들의 심리적, 미학적 스펙트럼은 빛과 어둠을 모두 포용한다. 이 또한 어린 시절의 영향이다. 2차 세계 직후 군용기를 즐겨 그리던 것, 부모와의 미묘한 관계로 인한 어린 주인공들의 묘사, 일본의 사상과 경제 변화 과정에서의 미야자키의 정치 성향은 자본주의 부상과 산업화로 인한 환경, 정치, 정신의 피폐화를 작품 속에 녹이게 하였다.


미야자키 시절 사실상 애니메이터가 직업인 사람이 없었는데, 샐러리맨이 되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풍습이 그려진 일본의 고속 성장 시절 혼자 학교에서 만화를 보며 그림을 그리는 것에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미야자키는 되려 오히려 만화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야말로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일찍부터 만화의 잠재력을 깨닫고 이 길을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주변을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책임감이 강해졌고, 형제와 다른 주변 사람들과도 협동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도 사상의 세계에 빠지기 위해 홀로 있는 법도 익혔다. 또한 미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본의 교육 환경과 문화는 미야자키의 천부적인 재능을 더욱 발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와 함께 전쟁 후 무너진 일본에 혈기 왕성한 소년의 열정이 예술로서 분출될 수 있었다. 또 그 당시 마르크스주의가 인기를 끌던 일본의 유행은 미야자키에게 진보적 성향을 만들게 하였고, 미야자키 세계의 정치관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이런 정치적 성향은 후에 노조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팀과 협업해 작품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의 재능을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고, 이것은 스튜디오를 이끄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반세기에 걸쳐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 지내온 미야자키의 세계는 모호하고, 때로는 결말이 열린 곳이다. 어린 시절을 투영하여 작품의 주인공들을 그려내고 기술에 대한 경고와 재앙을 얘기하면서도 희망을 얘기한다. 미야자키의 대작들을 보면 여과 없이 그의 공통적인 사상들이 표출된다.


확실히 미야자키 작품은 어렵다. 어려우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빨려 들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그래서 그 어린날의 나도 내용을 모를지언정 영화의 화면에선 눈을 떼지 못한 거 같다. 이건 미야자키의 엄청나게 꼼꼼하고 현실적인 성격과 일벌레로 유명할 정도로 지칠 줄 모르는 일에 대한 열정, 어린 시절 예술가로서의 혼을 꽃피울 수 있었던 환경이 합쳐진 '실력'일 것이다. 천재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던 거다. 천재성을 쥐고 태어났을지언정 피어지 못하면 시든 꽃이 된다. 시대적 흐름과 태생의 환경적 운들도 존재했지만, 미야자키는 쥐고 태어난 천재성에 노력을 더해 꽃 피웠다. 피나는 노력으로 세운 상상의 제국은 그의 삶이 녹아 있다.


10년 동안 미야자키를 연구하며 마침내 그의 세계관가 함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펴낸 작가인 수잔 네이피어는 말한다. 미야자키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애니메이터가 된 것은 파란만장한 일본의 역사와 풍성한 시각적, 문학적, 종교적 문화 그리고 서구인들이 예상하지 못한 일본의 세계주의적 시각 때문이라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미야자키를 '알고'나서 다시 보는 작품은 새로웠다. 알고 보는 그의 세계관의 표현은 다시 한번 소름 돋는다. 미야자키의 삶과 , 작품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계를 느끼고 싶다면 그의 작품들과 함께 미야자키를 알아보자.


삶은 어둠에서 빛나는 빛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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