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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May 27.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5.20(월)~2024.05.24(금)

2024.05.20 (월)

지난주 화요일 열이 오르기 시작해 내내 가정보육을 했던 여름이는, 오늘 소아과에 가서 1등으로 진료받고 어린이집 등원을 허락받았다. 의사 선생님의 소견서를 들고 씩씩하게 등원했지만, 아직은 여기저기 올라온 수포들이 딱지가 되어 검붉게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담임선생님은 안쓰러운 마음이 드셨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안쓰러운 마음으로 여름이에게 괜찮냐고 물으셨다는 선생님. 그랬더니 여름이가 큰 애처럼 대수롭지 않은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고 했다. ”이제 금방 나아질 거예요~“ 알림장에 쓰여있는 이 문장들을 나는 다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울컥했다. 그래봤자 3돌도 안된 어린아이인데. 담담하게 금방 나아질 거라고 대답했다는 게, 기특한 마음 너머로 찌릿하게 아려오는 마음이 더 컸다.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원시간, 못본사이 갑자기 부쩍 큰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컸다는데, 성장했다는데 왜 나는 그게 마음이 아린 것일까. 어떤 성장이든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 컸다는 건 네가 아팠다는 뜻일 테니 엄마인 나는 너의 성장이 기특하기에 앞서 그 이면의 고통에 더 마음이 아픈 것인가 보다. 아픈 시간들을 잘 견뎌줘서 고맙고, 그 시간들을 통해 성장해 줘서 더더욱 고맙다. 엄마가 되기 전에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종류가 50가지였다면, 엄마가 되고 나서는 그게 100개 그러니까 두 배는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 꽉 채워진 기분이다. 너희들 덕에 난 더 풍성한 삶을 산다.


2024.05.21(화)

여름이는 질문이 많다. 그렇다 보니 그냥 모든 문장 앞에 “왜 “를 붙이는 건가 싶을 정도다. 나는 꼭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책을 한 권씩 읽어주는데, 여름이는 한 페이지를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페이지 페이지마다 질문이 쏟아지고 그렇게도 성이 안 차는지, ”잠깐만! “하면서 이미 읽었던 앞 페이지로 다시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몇 문장 안 되는. 짧은 책도 한참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책을 읽어주는 나보다 여름이가 말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어린이집 선생님께도 심심치 않게 간증을 듣는다. 저번에 딸기 따기 체험활동을 위해 버스 타고 30분 정도 이동을 해야 했는데 선생님이 여름이 옆자리에 앉으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여름이가 창밖에 자동차들을 보며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는 통에 체험활동장 도착도 전에 진이 빠지셨다는 일화. 아침부터 갑자기 달팽이 얘기를 하다가 여름이랑 자연관찰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여름이의 끝없는 질문 세례에 대답을 해주시느라 그 책을 30분이나 넘게 보셨다는 일화 등등. 여름이의 질문 세례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나도 웬만하면 여름이의 질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대답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여름이의 열정을 따라가기는 참 쉽지 않다. 사실 여름이도 내 대답을 귀 기울여 듣는다기 보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잦지만ㅋ 그래도 엄마가 여름이의 질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궁금한 게 많은 우리 여름이. 엄마가 늘 답을 줄 수는 없어도, 네가 늘 질문하는 아이일 수 있게 도와줄게^^


2024.05.22 (수)

남편이 1박 2일로 워크숍을 간 날이다. 그래서 저녁에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데, 꼭 이런 날 집안일 뭐 하나에 꽂혀서 혼자 무리해 감행하곤 한다. 오늘은 늘 고민만 하던 가을이 방 만들어주기를 감행하기로 했다. 원래는 한 방에 가을이 여름이의 싱글 침대 두 개를 붙여서 큰 패밀리 침대처럼 쓰다가 가을이가 침대를 따로 떨어트리고 싶다 그래서 같은 방 안에서 침대를 떨어트려 쓰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방에 가을이 책상과 피아노를 놔뒀었는데, 가을이는 종종 침대까지 그 방으로 옮겨서 아예 자기 방을 따로 갖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럼 문제는 가을이가 혼자 잠을 자야 한다는데 있었다. 같은 방 안에서도 내가 여름이 침대에 같이 누워 동생을 재워줄 때면 왜 여름이랑만 같이 누워서 자주냐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서운해하기도 하던 가을이라 방을 따로 떨어트렸을 때 혼자 잘 수 있을지 의문이긴 했다. 그래서 내가 네 방이 따로 생기면 잠도 혼자 자야 한다고, 엄마는 다른 방에서 여름이를 재워줘야 하기 때문에 가을이가 잠들 때까지 같이 있어줄 수가 없다고 혼자 자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혼자 잘 수 있겠냐고 묻곤 했었다. 그러면 가을이는 자기 방에서는 혼자 잘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의 의구심 때문에 계속 가을이방을 만들어주는 것을 망설여 왔었는데, 오늘 나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가을이 방을 따로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대로 자기 방을 만들어 주면 잠자는 문제는 본인이 적응을 해야지 뭐 싶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문제는 피아노랑 침대 두 개의 큰 가구를 옮겨야 한다는데 있었다. 나는 겁도 없이 전동드라이버를 꺼내왔다. 이런 무모함은 우리 엄마에게서 온 것이리라. 엄마랑 같이 살 때도 엄마가 피아노며 책장이며 옮기는 모습을 자주 봐왔었다. 나라고 못할 리 없었다. 결론적으론 침대는 나 혼자 옮겼고, 나중에 피아노 옮기는 건 내가 혼자 반쯤 옮기고 엄마랑 동생이 와서 나머지 반을 도와주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방 구조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내가 무리를 해서라도 가구 위치를 자주 옮기는 이유는 가구 위치만 옮겨도 새로운 집에 온 것 같은 새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분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각각의 방도 더 넓어 보이는 것만 같다. 일단 나는 만족했는데 아이들은 어떨까. 하원 후에 각자의 방이 생긴 것을 본 아이들의 반응도 매우 만족이었다. 어쩌면 가을이는 계속 자기 방을 갖고 싶어 했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 당연했는데, 의외로 여름이도 무척 좋아했다. 자기만의 방이 생긴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어린아이도 자기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약간 우려했던 것은 밤에 가을이가 혼자 잘 잘 것인가 하는 문제였는데, 나의 우려가 무색하게 가을이는 자기 방에서 혼자 자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기 방이 생기면 혼자 자야 한다고 내가 누차 강조를 해왔어서 그런 건지, 자기 방이 생긴 게 혼자 자는 것을 받아들이게 할 만큼 좋았는지는 몰라도 가을이는 그렇게 해서 진정한 분리수면(잠드는 것까지 혼자 하는)을 시작하게 되었다. 혼자 고군분투한 보람이 있다. 역시 가구 옮기는 건 즐거워!ㅋ


2024.05.23 (목)

아침에 등원 준비를 하는데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에센스를 바르는 나에게 여름이가 찾아왔다. “안아줘! 안아줘! 안아줘!” 이제 좀 있으면 세돌이 되는데, 언제쯤 돼야 이놈의 안아병이 낫는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하고 싶어서 군말 없이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랬더니 내 어깨에 얼굴을 툭 걸치고 내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쏙 집어넣으며 내 품에 포옥 안기는 여름이였다. 아이가 폭 안기는 것의 기분 좋음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신의 온몸을 나에게 맞닿게 하면서 온전히 나에게 의지하는 그 몸짓은 내가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나를 안아주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 기분 좋은 느낌을 감지한 동시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렇게 너를 안아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이제는 키도 많이 크고 무거워졌기도 하거니와 (그러니 더 크면 이렇게 폭 안기기가 물리적으로 힘들다.) 나이가 좀 더 들면 이렇게 나에게 와서 안아달라고 하지 않는 시기가 올 거라는 것을 알기에 (첫째를 보니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안아달라 소리를 안 하더라.) 나는 무겁다는 생각 반, 그래도 지금을 누리자는 생각 반을 하면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하나 있는 언니가 늘 그걸 부러워했었다. 품 안에 폭 안기는 아이를. 자기는 이제 그걸 못한다며 내가 아이를 안고 있을 때마다 부럽다던 그 언니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사실 크게 공감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2024.05.24 (금)

하원을 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근처 공원에 있는 놀이터에 갔다. 아이들은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 구름사다리? 도 오르고 즐겁네 놀이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과 시소를 타게 되었는데, 시소를 타던 가을이가 갑자기 시소의 앉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서핑을 하는 거라며 팔을 벌리고 중심을 잡으며 제법 서핑하는 것과 같은 포즈를 취해 보이던 가을이. 그런 가을이를 보고는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친구의 아빠가 시소를 조금씩 흔들어 주셨다. 파도가 치는 것이라며 말이다. 그런데 가을이가 흔들리는 시소 위에서도 중심을 잘 잡고 서핑하는 포즈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아빠는 진짜 가을이 서핑시켜봐도 되겠다면서 중심을 잘 잡는다며 연신 칭찬을 해주셨다. 칭찬에 신이 난 가을이는 한참을 그렇게 시소 위에서 서핑을 했다. 나도 시소 위에서 중심을 잘 잡고 서있는 가을이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내가 오히려 놀랐던 부분은 가을이가 시소 위에서 서핑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데 있었다. 그 창의적인 생각 말이다. 시소를 시소로만 즐기지 않고, 놀이를 만들어 내는 그 능력이 그 새로움이 나는 더 기특하고 부러웠다. 생각해 보면 가을이는 그런 아이다. 어떠한 것을 원래의 역할대로만, 원래의 용도대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바라보고 엉뚱하게 활용하는 능력은 가을이의 많은 장점 중에 하나였다. 내가 그런 아이의 장점을 키워줄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아이가 그러한 장점을 계속 가지고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있다. 아이에게 꼭 말해주어야겠다. 너의 그런 모습이 멋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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