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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n 18. 2024

나의 ‘숨비소리’

1년간의 ‘주간 새미일기’를 마치며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래서였을까? 육아를 시작하면서, 짧다면 짧은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영원할 것만 같은) 이 육아의 시기를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특별한 것이 있어서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육아’만 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뭐라도 다른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나름대로 ’완성‘시켜서 올릴려니 일주일에 1편 아니, 나중에는 한 달에 1편을 쓰는 것도 버겁게 되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매일매일 짧게 일기를 쓰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그것을 주 단위로 업로드하자!’ 대신 퇴고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하자, 글을 쓰는데 부담이 많이 줄어 매일까지는 못써도 일주일에 4~5일은 일기를 써서 ‘주간 새미일기’라는 제목으로 매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주단위로 올려야 한다는 나름의 ‘기한’이 있으니 사실상 퇴고는 거의 할 수 없었지만, 매주 일기를 올린다는 뿌듯함만은 챙길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과의 그날 있었던 일을 다시금 되돌이켜보면서 그 안에서 나름대로 깨닫고 반성하고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것으로 나는 이 험난한 육아의 여정을 버텨낼 힘을 얻곤 했다. 그러고 보니 일기를 쓰는 일은 나에게 ‘숨비소리’를 내는 일과도 같았다. 해녀들이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밖으로 나와 숨을 내뱉는데 그때 나는 소리가 ‘숨비소리’다. 육아라는 깊은 바닷속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밖으로 나와 숨을 쉬는 것.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그런 일이었다. 내 일상의 숨구멍 같은 것.


그렇게 나는 1년간 ‘주간 새미일기’를 썼다. 나도 이렇게까지 꾸준히 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글 쓰는 부담을 내려놓기로 한 것이 꾸준히 글을 쓸 수 있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잘 썼다고는 못해도, 일단 썼다는데 의의를 두면 1년간 일기를 쓴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주간 새미일기’의 형태라고 부담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매일 써서 매주 업로드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상당했다. 나는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터라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매일매일 쓰기보다는 며칠간 미뤄진 일기를 한꺼번에 몰아 쓰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어쩌다 짬나는 시간이 생기면 다른 취미활동을 하기보다 밀린 일기를 쓰게에 바빴다. 자연스럽게 책 읽기나 그림 그리기 (대표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활동 두 가지다.) 등은 순서가 밀려, 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뭐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가 보다 했다.


1년쯤 꾸준히 일기를 쓰고 났더니, 이제는 좀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고작 1년밖에 안 하고는 변화를 꾀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꾸준함‘보다는 ’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1년이라는 시간도 나에겐 상당한 ’ 지속‘이었다.) 1년간의 일기는 나에게 글을 쓰는 ‘습관’을 어느 정도 형성해 준 것 같았다. 쓰지 않는 것보다 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달까. 그래서 ’ 주간 새미일기‘를 마치며 나는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글쓰기가 ‘답보 상태’라고 느끼는 건 세상이, 사람이, 현상이, 사물이 새롭게 보이지 않는 상태라 ‘내 글을 내가 읽어도 지루하다’라는 정직하고 불안한 느낌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나 스스로 ’ 주간 새미일기‘가 좀 지루해졌달까. 그래서 ’글쓰기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에서 나도 힌트를 얻어보고자 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1. 늘 하던 익숙한 글쓰기를 그만둔다.

2. 쉬면서 쓸데없는 일을 하거나 나를 가만히 둔다.

3.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글쓰기를 시도해 본다.


1. 나도 1년간의 ‘주간 새미일기’ 쓰기를 그만두었다. 2. 나의 유일한 글쓰기 활동을 그만두었으니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은 계속된다 할지라도) 글쓰기 활동은 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를 2주 차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따지고 보면 (이번주는 아직 안 지나갔으니 지난주만) 딱 한 주 ’주간 새미일기‘를 업로드하지 않은 것인데 벌써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혹은 쓰고 싶다는 생각(?)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주간 새미일기‘를 쓰는 동안은 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쓰는 것을 멈추고 보니 안 쓰고 있는 것도 괴로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이런 낯선 감정에 아직은 얼떨떨하다. 같은 책의 저자는 ‘쓰기의 말들’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이제 나는 이 말의 뜻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가 나의 숨구멍이었는데,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는데도 수면 위로 올라가 숨을 내뱉지 못하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작 1년 일기 좀 쓰고 이런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오버인가 ‘ 싶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는 3.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글쓰기를 시도해 볼 차례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는 습관이 되었으니 1주일에 한 편의 글을 써서 올리는 ’주기‘는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매일매일 짧게 휘리릭 쓰는 일기가 아니라, 좀 더 완성된 한 편의 긴 글을 쓰는 것으로 말이다. 일기라면 일기겠지만, 퇴고를 거친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써보기로 한다. 사실 이전에 했던 방식이지만, 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글을 쓰는 주기가 늘어나면서 결국 그만두게 되었던 방식이다.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딛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기에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지만 뭐든 성장을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법이니, 또 실패를 하더라도 그 고통의 시간을 통해 나는 성장하리라 믿는다. 사실 육아에 대한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글을 써볼까도 싶었는데, 2주 정도 일기를 쉬면서 든 생각은 나는 여전히 나의 육아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이었다. 고로 육아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를 유지하되 방식을 달리 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렇게만 하려니 그 변화의 폭이 생각보다 작다. 그래서 지금까지 써왔던 글과는 아예 다른 글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새롭게 써보려고 하는 글을 ‘동화’다. 사실 나는 동화를 써본 적도 없고, 내가 쓰려고 하는 게 정말 ‘동화’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에 우연히 참여했던 ‘동화창작교실’에서 했던 경험이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게 되었던 재밌는 상상들을 이야기로 만들어보는 것이 재밌었다. 비록 한 편의 글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기초반수업 참여로만 끝났지만 그때 썼던 이야기를 마무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다 보면, 나의 글쓰기도 답보상태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저자는 ‘나를 쓰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근본적으로 나는 ‘창조’하는 사람이고 싶어 한다는 것, ‘성장’하는 사람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1년 나는 이 일을 ‘지속’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내 ‘숨비소리’를 계속해서 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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