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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n 21. 2024

1.5kg의 대가

남편의 다이어트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지난주 화요일. 남편은 건강검진 결과를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했다. 그래서 의사는 약을 먹어볼 것을 권하기도 했나 보다. 남편 쪽 집안내력이었다. 그는 약을 먹기보다는 식단조절과 운동으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보기로 했다. 그날 남편은 집 근처 공원에 나가 2시간을 달렸다. 그날 이후로 기름진 음식, 단 음식, 짠 음식을 철저하게 피했고 심지어 커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문제는 그는 먹는 것에서 삶의 상당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라는데 있었다. 그는 집안의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고, 직장 일은 직장 일대로 바빴다. 샐러드와 담백한 음식들로는 절대 풀리지 않을 스트레스들이 계속 쌓여갔다.


결국 그는 목요일에 나에게 말했다. 스트레스가 한계치까지 다다른 것 같다고. 그래서 그 말을 들은 나는 그에게 다정한 편지를 써서 건네기도 했지만, 그의 어두운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남편은 원래 짜증이나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다. 큰소리를 내는 법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그가 우울할 때 내뿜는 저기압의 압력은 주변의 공기를 한없이 무겁게 만든다. 감정에 민감한 내가 그의 저기압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날더러 뭐라 하지도 않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도 않는데 그가 내뿜는 그 아우라가 나를 상당히 불편하고 신경 쓰이게 했다. 게다가 그의 식단조절의 영향으로 나도 저녁밥을 차리는데 좀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원래도 밥 하는 걸 무척 싫어함.), 애들 재울 때 즈음 해서 그가 걷기 혹은 뛰기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내보내 주느라 육아의 피로도도 한층 올라갔다. 즉, 그의 저기압이 나에게도 옮아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 나름대로는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에게 불만을 표하지도 않았고, 요청한 저녁 반찬을 준비해 주고, 운동도 계속 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그의 저기압의 압력은 계속해서 쌓여 나를 옥죄고 있었다. 나보다 그걸 빨리 알아챈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엄마의 감정과 상태에 놀라우리만치 민감한 안테나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저녁밥을 먹다가 내가 음식을 흘린 가을이에게 순간적으로 짜증을 냈던 것 같다. (큰소리를 낸 건 아니었지만 내 말의 톤에서 짜증이 묻어 나왔나 보다.) 누나가 그렇게까지 잘못하지 않았는데, 내가 부당하게 혼내듯이 말했다고 느꼈는지 여름이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엄마가 아까 누나한테 화냈잖아 사과해 빨리~!” 여름이의 말에 나는 움찔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가을이게 사과를 했다. (여름이가 나더러 내가 혼낸 것을 가지고 사과하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여름이가 느꼈는데 가을이가 느끼지 않았을 리 없었다. 며칠 뒤 가을이는 나에게 훨씬 더 충격적인 질문을 했다. 내가 어떠한 것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엄마, 우리가 있어서 싫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강력한 한 방이 되어 들어온 질문에 나는 얼른 표정을 밝히고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은 한 대 맞은 듯 한동안 욱신거렸다. 내가 육아를 함에 있어서 버겁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아이는 느꼈던 것이다. 내가 자기들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마음이 나를 아프게 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눈치를 주었건만, 나는 나를 추스를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주말이 닥쳐왔고,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아이들과 뒤엉켜 이틀이 휘몰아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평일.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새벽에 깬 여름이를 안아주지 않고 버티는 남편에게 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나는 새벽에 아이가 깨면, 네가 잠에서 깨지 않게 얼른 안아 올려 다시 조용히 재우는데(그래서 그동안 너는 내덕에 깨지 않고 잔 시간이 상당한데) 너는 애 버릇 고쳐준다는 미명 아래 나를 고문하고 있지 않느냐고 화를 냈다. 애를 그렇게 울리는 건 온 집안 식구들 다 깨우려는 심보가 아니고 뭐냐고, 네가 다이어트한다고 피곤하고 힘든걸 애를 받아주지 않는 것으로 심술을 부리는 건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울며 소리를 막 지르고는 방에 들어가서 누워서 생각했다. ’아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폭풍 같은 새벽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남편은 말없이 정성스럽게 아침밥을 차렸다. (남편이 휴가를 쓴 평일이었다.) 나에게 보낸 화해의 신호였는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에게 굳이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오후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었고, 그의 힘든 마음 나의 힘든 마음을 서로 인정해 주었다. 결혼 생활 7년 차의 짬바였을까. 우리는 비교적 짧은 대화로 금방 화해에 이르렀지만 그의 다이어트는 계속될 터였다. 그는 일주일 동안 1.5kg 정도를 감량했다고 했다. 1.5kg은 가볍지만, 그 1.5kg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에 동의하는 바는 아니나(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제법 이해는 해볼 수 있는 한 주였다. 네가 살을 빼는데 나까지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힘든 일이라는 게, 부부사이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살 빼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서로 더 돕고 이해해야지 별 수 있나 싶다. 다이어트, 그것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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