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속에서 배우는 겸손함에 대해서
지금까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수면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둘 다 그렇게 잘 자는 편에 속하지는 않았다. 재우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뿐더러 자다가 깨는 경우도 잦았다. 두 아이를 두고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첫째보다 둘째가 더 안 자는 타입이기도 해서 이제는 아이들을 재우는 데 있어서 어지간한 기대감을 많이 내려놓은 상태다. 그런데 얼마 전 신선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둘째와 어린이집에서 친한 친구는 8시 반이면 무조건 잠자리에 든다는 것이었다. (8시~8시 반이면 잠든다고 했다.) 나에게 아이들 재우는 시간이라 함은 9시~10시 사이에 재우러 들어가서 10~11시 사이에 자주면 땡큐고 11시가 넘어가면 슬슬 열받고 뭐 그런 것인데 말이다. 8시~8시 반은 저녁이라고 해야 하는지 밤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애매한 시간 아닌가? 그런데 내가 아는 동생네 부부도 아이들을 무조건 8시~8시 반이면 잠들도록 한다고 했다. 칼같이 그 시간에 재운다고;; 나는 제법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이 그 시간에 재우면 잔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 충격은 나에게 제법 자극제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아이들을 좀 더 일찍 재워보기로 했다. 평소보다 더 분주히 저녁 먹은 것을 정리하고, 평소보다 아이들을 더 빨리 씻기고 잘 준비를 했다. 그러자 정말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사실 이제 첫째는 자려고 누우면 5분 내로 잠드는 편이다. 문제는 둘째였다.) 나는 신이 나서 안방으로 돌아와 이전에 읽다만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읽고 싶던 책을 다 읽었다는 기쁨이 제법이었다. 애가 일찍 자니 이렇게 책 읽을 시간도 생기고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그것이 오롯이 나만의 의지로 가능했던 것인가 되묻게 되었다.
남편과 내가 평소보다 아이들 잘 준비를 일찍 하긴 했지만, 아이가 그에 맞춰 일찍 자주지 않았다면? 잘 준비만 일찍 하고 평소 자던 시간에 잠들었다면? 결국 내가 일찍 재웠다는 사실보다 아이가 일찍 자줬다는 사실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되는 것이었다. 아이가 일찍 자준 덕분에 내게는 ‘시간’이 생겼던 것이다. 덕분에 읽다 내려놓은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시간을 얻게 된 것이다. ‘시간’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아니던가. 그것은 그런 의미에서 철저한 ’선물‘이다.
결국은 내가 특별히 ‘잘해서’ 소중한 것을 얻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대로 내가 특별히 ‘잘못해서’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이 두 가지 사실이다. 내가 잘한다고 애가 잘 크고, 내가 못한다고 애가 잘못되는 경우보다는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가 맘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기대도 노력도 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아이가 선물처럼 나에게 안겨 주는 것들이 생길 때가 더 잦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혹은 상황에 의해서 결과가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 아이가 오늘 하루 평소보다 일찍 잠들어준 것은, 아이가 나에게 준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육아에 있어서는, 엄마라는 이름 아래서는, 어지간해서는 공치사를 하기가 어렵다. 오늘도 육아라는 일은 나를 다시 한번 겸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