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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on Apr 29. 2020

“쌍둥이 아빠의 풀타임 육아기 - 슬기로운 육아생활”

6. 아빠와 책 읽기

노래방에 가면 꼭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바로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온갖 폼을 다 잡고 눈을 게슴츠레 감은 채 마치 나의 이야기인양 목이 터져라 부르던 노래였다. 요즈음 자꾸 내 머릿속을 맴돌다 못해 머리 밖으로 튕겨 나올 것만 같은 생각도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거다. 큰 결심을 하고 미국에 왔는데, 하필 여기서 전대미문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나 집안에만 콕 틀어박혀 지내게 될 줄 상상이라도 했을까?      


1년 전 딱 이맘때 아내의 대학원 합격 소식을 듣고 퇴근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치킨과 피자를 사들고 벚꽃 흩날리던 4월의 밤길을 기분 좋게 걷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때 치킨과 피자를 더 샀어야 했다. 기쁜 일이 생기면 내 인생에 이런 날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기뻐해야 하고 치킨과 피자가 당기는 날엔 위장 간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배불리 먹어야 한다. 왜냐면 인생은 알 수 없고, 인생은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또 헛웃음이 나오는 대목이 있다. 바로 내가 미국에 가져온 짐이다. 나는 이민가방 6개와 기내 캐리어 1개, 책가방 1개에 160kg이 넘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6살 쌍둥이 둘을 데리고 160킬로가 넘는 짐을 들고 오는데 진짜 힘들었다. 이민가방도 터지고 내 손가락 마디마디도 짓무르고 까져서 밴드를 붙여가며 천방지축 쌍둥이들을 데리고 왔었다.      


그런데, 정작 와보니 내가 가져온 옷가지, 라면, 과자, 주방용품 등은 여기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차라리 아이들 책을 더 많이 가져왔어야 했다. 사실, 올해 1월 말 엄마와 조카가 올 계획이라 그 편에 책을 가져올 요량으로 160킬로의 짐 중 아이들 책은 가볍고 얇은 책 28권만 가져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난 호기롭게도 살사댄스를 하겠다고 살사화를 챙겨서 왔다. 육아를 해보지 않은 자의 무지와 오만이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공립학교 유치원에 들어가기까지 신청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약 20일 정도가 걸렸는데, 그동안 책 28권을 다 읽었다. 20일 동안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으니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고, 얇은 책을 엄선해서 가져왔으니 한 권을 다 읽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맹모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그 옛날 소달구지를 끌고 이사를 다녔는데, 쌍둥이 아빠는 살사를 추겠다고 동화책 50권 중 22권을 다시 빼고 살사화를 챙겼다. 엄마와 아빠의 차이다. 자식을 몸으로 품어 기른 엄마의 사랑을 아빠는 알 수도 없고, 따라갈 수도 없다.    

  

하지만 아빠는 위기에 강하다. 나는 지역 한인 사이트와 한인 서점을 통해 아이들 책을 살펴봤다. 하지만 한인 사이트와 한인 서점에서 우리 아이들 눈높이 맞는 책을 구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내는 종이책을 고집하는 나에게 전자책을 읽어주라고 e북을 구매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래서 e북으로 책을 읽어줬는데, 아이들은 처음 몇 번은 좋아하다가 모니터로 책을 보면 눈 나빠진다면서 e북으로 책 보기 싫다고 얘기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유튜브로 만화 보여줄 때 모니터로 보면 눈 아프고 나빠지니 그만 보라고 했던 얘기를 그대로 들려줬다. 쌍둥이들이 합심해서 근거를 가지고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코로나로 어디 오도 가도 못하고 집에만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줘야 했지만 우리는 이미 2번 3번 읽어 흥미가 떨어진, 얇디얇은 28권의 책 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기에 강한 아빠는 현실의 어려움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는 책은 지혜의 책으로 알려진 어린이용 탈무드다.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고 사단법인 어린이문화진흥회에서 선정한 좋은 어린이 책이다. 활용하기에 따라 300권만큼 풍성한 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책을 활용했다.      


1. 한글 읽기 – 홀수 쪽은 형, 짝수 쪽은 동생이 소리 내면서 읽도록 했다. 

2. 한글 쓰기 - 책을 한쪽씩 그대로 베껴 쓰게 했다. 

3. 문답하기 – 책의 주제와 세부 내용을 퀴즈 형식으로 묻고 답했다. 

4. 연극하기 – 책의 내용대로 배역을 정해 연극하고, 자신의 상상을 더해 연극하기도 했다.      


소리 내면서 책을 읽는 것은 아이들의 한글 읽기 뿐만 아니라 발음 교정에도 도움이 됐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책 한 권을 읽어낸 것에 성취감을 느꼈다. 한글 쓰기는 아이들이 힘들어해서 쓰는 것은 한두 쪽 정도로 아이들의 기분과 컨디션을 봐가면서 했다. 문답하기는 주관식 단답형을 기본으로 하되, 어렵다 싶은 것은 객관식 보기로 질문을 하며 퀴즈처럼 묻고 답했다. 쌍둥이들은 서로 맞추겠다고 하면서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은 책 읽기 활용의 백미인 연극을 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연극을 한 적이 있다. 연극배우를 꿈꾼 적도 있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으로 연극 공연을 많이 봐서 연극에 익숙했다. 아이들도 연극을 좋아했다. 이불을 깔아 그럴듯한 무대를 만들고 옷을 여러 겹 걸치는 것으로 의상을 대신했다. 연극의 장점은 아이들이 연극을 통해 책의 내용을 숙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연극을 하려면 자신의 배역을 이해하고 대사를 말해야 하는데, 이것은 책의 내용과 순서를 모르고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읽는 탈무드는 지혜와 교훈의 책이라 이해하기 어렵고 추상적인 내용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 대사와 연결된 상황을 통해 아이들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 역시 연극의 장점이다. 말이나 당나귀 등 동물은 주로 내가 맡았다. 그렇게 하면 연극을 하면서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줄 수 있다. 연극은 2번 했다. 한 번은 책에 충실하게 다음은 자유롭게 한다. 자유 연극은 책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아이들의 상상에 따라 전개한다. 결론은 싸움과 전쟁으로 끝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내용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상황을 만들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다양한 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고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좋다. 얇은 책이라도, 여러 번 읽어 재미없는 책이라도 아빠와 함께 읽으면 더 좋다. 그 책을 가지고 아빠와 연극을 하면 더욱더 좋다. 혹시 아는가! 지금의 연극으로 쌍둥이 중 한명이 아빠가 못 이룬 배우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책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읽으며 더 크고 더 넓게 자라날 것이다.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으면 책은 즐겁고, 생각은 커지며, 아빠와 아이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흥겨운 가족 극단의 멋진 배우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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