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들여다보다_오월십사일
퇴사한 지 한달이 넘었다. 계약 만료를 이유로 쫓겨나듯 나와 퇴직금 등 받을 돈을 정리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났다. 그렇게 한달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뒤 머릿속은 흐리멍덩했다. 시간은 많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 너무 심심해서 애꿎은 애인에게 왜 연락이 뜸하냐고 채근했다. 애인은 갑자기 외로워하는 나를 보고 놀라 앞으로 더 신경 쓰겠다고 했다. 그런 애인을 보고 안쓰럽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지금 이 친구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상담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께 퇴사 후 애인에게 집착하는 나의 모습을 말씀드렸다. 애인이 퇴근하고 연락이 두 시간만 없어도 '이것이 뭐하길래 카톡을 안 하지?' 하면서 의심 세포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나도 피곤하고 죄 없이 일상생활하면서 늘 해명해야 하는 애인도 피곤한 일이다. 사실 나의 의심 세포는 퇴사 후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회사 다닐 땐 10점 만점에 한 2~3점 정도로 활동하고 있다가 퇴사 후 7~8점 정도로 활동량이 증가했을 뿐...ㅠ 나의 의심 세포는 누가 낳았을까?
상담을 통해 의심 세포가 활동할 때 내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다. 애인이 나한테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고 외로웠다. 내가 언제든 버림받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느낌의 외로움을 어린 시절에도 느낀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싸우셨다. 소리 지르고, 욕하고, 때리고, 던지고, 부수고, 맞고, 울고, 술 마시고, 기절하고... 싸우면 엄마는 종종 나를 두고 떠날 듯이 말씀하셨다. 아빠랑 잘 살라고 엄마 없이도 행복하라고 울면서 말씀하셨다. 아마 떠나고 싶으셨던 마음에 나에게라도 위안을 얻고자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하지만 어렸던 나는 진짜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갈까 봐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좀 더 커서는 속상해서 하는 말이지 버리고 가진 않겠구나 하는 걸 알았다. 내전은 끊이지 않았다. 학업에 열중할 나이가 되어서는 그냥 방문을 잠그고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공부했다. 공부를 하다가도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면 뛰쳐나가 엄마를 패고 있는 아빠를 말리고 피투성이가 된 엄마를 감싸줘야 했다. 혼자 말리기 어려운 상황이면 언니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싸우지 않는 시간엔 아직은 안 싸우네 하면서 언제 싸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긴장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는 부모님이 보기 싫어 집에 있는 동안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스스로를 방에 가둬두고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였는데, 실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하거나 아빠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때 나는 많이 외로웠을 거다. 아니, 외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내가 외로웠다는 것을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인지했다.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았다. 물론 밥을 차려주시고 과외나 학원도 보내주시고 물질적인 것들은 부모님께서 채워주셨지만, 정서적인 밥을 얻어먹지 못했다. 마음이 허기졌다. 어린 나는 힘든 마음을 이해받고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혼자 있기 싫었고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었을 거다. 바로 이 부분이 지금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닮아있는 점이다. 그리고 방에서 혼자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도 항상 신경이 상대방에게 가 있고 부정적인 상상이나 생각을 하느라 에너지를 쓰고 있는 점도 비슷했다.
상담 선생님께선 공통점을 찾은 후 차이점도 찾아보게 하셨다. 그땐 방 밖에서 부모님이 싸우고 있었고 언제 무슨 사달이 날까 걱정할 만했지만, 지금 애인은 그저 본인의 일상생활을 하고 있고 나쁜 상황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생각해보니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지...? 머리로는 아는데 머리 따로 마음 따로일 때가 참 혼란스럽다.
글을 정리하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나는 내가 힘들어야 다른 사람의 관심이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프로그래밍되어있는 건 아닐까? 외로운 건 이해가 가는데 그게 왜 '의심'으로 표출되는 거지? <마음의 역설>에서 읽은 바로는 상대방의 헌신과 애정을 원하는 사람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상대를 의심하기도 한다고 나와있다. 예를 들어, "너 나한테 관심이 좀 식은 거 아냐?"라고 의심하면 상대방이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하면서 증명하고 그것을 달래기 위해 더 헌신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 나는 어쩌다 의심 세포가 프로그래밍된 걸까? 어린 시절 경험에서도 부모님이나 누군가를 의심한 적은 없었는데... 이 부분은 다음 상담 시간에 좀 더 다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