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듣고
'도망치는 곳에 낙원은 없다.'
너무 도망가고 싶을 때면, 나는 이 말을 꺼내 읽었다. 낑깡아, 도망친 곳에도 분명 네가 도망치고자 했던 이유가 있을 거야, 그래서 또 도망치고 말 거야. 그럼 내내 도망자로 살아야 할 거야. 난 도망자하기 싫어. 그러니까, 도망치지 말자. 힘든 시기를 그렇게 버텼다.
그러나, 마음은 내 마음대로 흐르지 않아서 문제였다. 나는 늘 피로했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내는 것보다야 도망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문득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나 다 버리고 도망갈까. 너도 같이 갈래?"
웃음을 담은 진심. 나는 그저 친구가 뭐야, 그게. 하고 웃어 넘기길 바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같이 손 잡고 도망가자거나, 많이 힘드니?라고 알아줬으면 좋겠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초조하게 친구의 대답을 기다렸다. 친구는 뜬금없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 라며 이어폰을 건넸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선우정아의 '도망가자'였다.
이 노래를 듣고 나는 가끔 도망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도망치는 곳도 낙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낙원이 아니더라도 잠시 경유하는 곳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친구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 힘이 들 땐 힘껏 도망치자고 생각했다. 도망을 두려워한 내가 바보 같았다. 도망치는 것도 결국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기꺼이 돌아올 용기가 있는 사람임을 믿는다. 도망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 힘을 얻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도망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씩씩하게 도망칠 수 있는 것도 나를 위한 일이라고. 때로는 도망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도망치면 분명 다시 돌아오고 싶어질 것이라고.
이제의 나는 힘이 들면 가끔 도망친다. 도망치고 나면, 웃기게도 돌아가고 싶어진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참 황망하게 느껴지게도, 그렇다. 도망이라면 참 거창할 줄 알았는데, 도피와 도망을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도망은 꼭 거창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이 노래를 알게 된 나는, 누군가가 힘들면 노래 속 가사처럼 웃으며 말한다.
"우리 도망갈까? 다 버리고 도망갈까?"
그러면, 반응이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같다. 그 말 한마디로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는 것.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된 나는 이제 도망이 두렵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도망가줄 것이다. 그리고 노래 가사처럼 '씩씩하게' 손을 잡고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