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낑깡 Feb 22. 2022

힘껏 도망칠 거야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듣고


힘껏 도망칠 거야

w.낑깡



  '도망치는 곳에 낙원은 없다.'

  너무 도망가고 싶을 때면, 나는 이 말을 꺼내 읽었다. 낑깡아, 도망친 곳에도 분명 네가 도망치고자 했던 이유가 있을 거야, 그래서 또 도망치고 말 거야. 그럼 내내 도망자로 살아야 할 거야. 난 도망자하기 싫어. 그러니까, 도망치지 말자. 힘든 시기를 그렇게 버텼다.


  그러나, 마음은 내 마음대로 흐르지 않아서 문제였다. 나는 늘 피로했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내는 것보다야 도망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문득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나 다 버리고 도망갈까. 너도 같이 갈래?"

  웃음을 담은 진심. 나는 그저 친구가 뭐야, 그게. 하고 웃어 넘기길 바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같이 손 잡고 도망가자거나, 많이 힘드니?라고 알아줬으면 좋겠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초조하게 친구의 대답을 기다렸다. 친구는 뜬금없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 라며 이어폰을 건넸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선우정아의 '도망가자'였다.


  이 노래를 듣고 나는 가끔 도망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도망치는 곳도 낙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낙원이 아니더라도 잠시 경유하는 곳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친구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 힘이 들 땐 힘껏 도망치자고 생각했다. 도망을 두려워한 내가 바보 같았다. 도망치는 것도 결국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기꺼이 돌아올 용기가 있는 사람임을 믿는다. 도망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 힘을 얻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도망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씩씩하게 도망칠 수 있는 것도 나를 위한 일이라고. 때로는 도망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도망치면 분명 다시 돌아오고 싶어질 것이라고.


  이제의 나는 힘이 들면 가끔 도망친다. 도망치고 나면, 웃기게도 돌아가고 싶어진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참 황망하게 느껴지게도, 그렇다. 도망이라면 참 거창할 줄 알았는데, 도피와 도망을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도망은 꼭 거창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이 노래를 알게 된 나는, 누군가가 힘들면 노래 속 가사처럼 웃으며 말한다.

  "우리 도망갈까? 다 버리고 도망갈까?"

  그러면, 반응이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같다. 그 말 한마디로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는 것.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된 나는 이제 도망이 두렵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도망가줄 것이다. 그리고 노래 가사처럼 '씩씩하게' 손을 잡고 돌아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잃었으나 잊을 순 없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