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인게 모과 어때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게 된 모과는 나를 싫어했다고 한다. 싫어하는 것은 참 이상한 마음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아무리 티를 내도 모자른 법인데, 싫어하는 마음은 조금만 가져도 티가 풀풀 나니까. 그래서일까. 나도 모과가 무서웠다. 하지만 친해지고 싶었다. 모과에게 열심히 말을 붙였으나 모과는 단답일 뿐이었다. 그렇게 모과와 친해지지 못한 채로 1학년을 마무리했다.
모과와 친해진 것은 2학년 때였다. 모과와 같은 반이 된 것이다. 모과는 '제발 나에게 아는 척 하지 말아달라고' 속으로 빌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는 얼굴이 몇 없던 나는 용기를 내 모과에게 친한 척을 했다. 모과야, 안녕. 그것만으로 나에게 얼마나 용기였는지. 모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안녕. 하고 말했다. 나는 모과에게 계속 말을 걸었고 모과와 함께 있으려고 했다. 그 뒤로는 어떻게 친해졌지…? 모과와 머리를 맞대고 말해봐도 또렷한 기억은 없다. 참 신기하지, 서로를 미워했던 건 기억이 그렇게도 오래가는데, 정작 중요한 모과랑 친해진 경위는 왜 생각이 안나는지.
모과와는 그렇게 지금까지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모과의 수많은 고민과 시간을 함께 했다. 모과와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으나 마음만은 아직도 고등학생 시절 그대로. 그 변함 없음이 신기하고 또 재밌다. 처음 <낑깡의 과일 놀이터>를 구상하게 된 것은 모과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말하자, 모과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낑깡이 된 것처럼 이 세계에 초대할 모든 이를 과일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모과는 딱 처음부터 모과라고 생각했다. 나는 귤이 되고 싶지만 낑깡인 채로 행복하다면, 모과는 모과요! 모과인게 모과 어때서요! 라고 말할 것 같은 사람이라서.
동글동그랗고 반질한 모과 한 알을 보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듯, 모과와 함께 있는 나는 천하무적이다. 늘 마음이 든든해지고 따뜻해진다. 소심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게 두려운 나와 달리 모과는 화를 잘 내지만 그 만큼 쿨하고 또 다정하다. 손 잡는 걸 정말 싫어하지만, 내가 손 잡는 걸 좋아한다고 손잡아달라고 말하면 툴툴거리면서도 잡아준다. 네 손을 잡는 건 친구 중에 너 밖에 없을거라고 말하며 늘 꼭 잡아준다. 그래서 모과는 모과다. 누가 뭐래도 모과.
* 이 글은 모과의 허락하에 게시되었습니다.
* (1)이 붙었지만 시리즈가 이어질 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