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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Apr 03. 2024

송내 가는 길

회상



 딸아이를 마중하러 송내역으로 간다. 저녁 10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체육공원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왼편의 철로를 따라 전철은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깊어가니 상행선은 조는 듯 한산했고, 하행선은 피곤한 하루를 싣고 가득히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하루의 여정은 그리 녹록하진 않았을 것이다. 크게 한숨을 쉬어 보았다. 왜 그리 상념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딸아이 마중도 기꺼운 생각으로 일 년 여의 시간이 흐른다. 다음 달이면 딸아이는 제길을 찾아 임지(任地)로 갈 것이다. 드디어 오랜 바람이 이루어졌건만 헛헛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다.


 아이가 어릴 적에 서오릉으로 바람을 쐬러 간 적이 있었다. 장난감 부메랑을 던질 때마다 아이는 신나게 그것을 주우러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 연신 되돌아오는 부메랑을 잡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서툰 실력 탓인지 부메랑은 내손으로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멀리 떨어지고는 하였다. 제풀에 지치는지 딸아인 한마디 했었다.


"아빠!  제대로 던져봐! 힘들단 말이야!"


입을 쫑긋 거리며 푸념하듯 하는 그 말에 아이를 끌어안았다.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처럼 이제 시간의 방벽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점점 세월의 위력을 절감하고는 하였다. 느끼는 감정이나 내 안의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것은 흐르는 시간과는 무관한 듯싶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서느런 옷자락을 휘날리며 여전히 바쁜 걸음을 장착했었다. 딸아이는 늦게까지 나를 기다리다, 내가 집에 도착을 하면 자는 모습뿐이었다. 소중한 시절을 그렇게 낭비하고 말았다.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해 봐야 되돌아갈 수는 없다. 내 발자취는 흔적을 남길 뿐 다시 걸을 순 없기에, 오솔길의 호젓함을 느끼기도 전에 시간의 저편에 가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었다. 아이가 커버리기 전에 사랑의 크기를 표현하지도 못하였고, 아내가 아프기 전에 좀 더 좋은 곳으로 여행이라도 다녔어야 했다. 어쩌면 지금도 깨닫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최적화된 인생의 정점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후회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사랑해야 할 시간은 지금뿐이다.


 밤 10시 송내 남부역 전은 여전히 버스나 전철을 타려는 사람들로 어지러웠다. 딸아이가 강남 교대역에서 한 시간 전에 출발한다는 문자를 보내왔었다. '거의 도착할 때가 되었을 텐데....,?' 궁금하긴 하지만 체신머리를 생각해서 문자를 보내지는 않았다. 부르르 하는 진동음과 다시 문자가 온다. 같은 학원에 근무하는 친구와 오느라 조금 늦는다고 했다. 아마도 그 친구의 내리는 곳이 반대 방향인지라 돌아서 오느라 늦는 모양이었다. 역건물의 1층 다이소 매장으로 들어섰다. 끝날 시간이 되어가는지 들어오는 손님을 보는 눈초리가 매섭다. 간단한 휴대폰 충전기를 하나 사고 싶었지만, 분주한 직원들의 발길을 보니 포기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건너편의 복권판매소로 발길을 옮겼다. 지난주에 5등에 당첨된 복권이 한 장 있었기에 바꿀 겸 해서였다. 늦은 시간인데도 복권판매점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을 시험하고자 꽤나 북적이고 있었다. 누구나 피곤한 하루의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욕구가 있을 법하다. 워낙에 많은 노선의 버스가 역전 정류장을 갖기에 승객들이 늘 붐비는 이곳은 사람들로 넘쳤다. 자동으로 달라면 별의미가 없기에 수동 한 장을 만들어 내밀었다. 여섯 자리의 점을 찍어 운을 테스트하는 것도 벌써 여러 해 전이건만, 4등 몇 번과 간헐적인 5등이 전부였다. 유난히 많이 팔리는 만큼 1등과 2등 당첨이 솔찬이 나온다는 광고 문구가 괜히 마음을 들뜨게 하지만 2장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득한 시절 이곳은 안테나만이 무성한 통신기지 역할을 했었다. 서울로 출퇴근을 했기에 이곳을 지날 때마다 눈여겨본 적이 있었다. 서울을 떠난 이주민의 의식으로 언젠가는 다시 올라가리란 생각이 지배를 하다 보니 여태껏 1호선 전철역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인천의 직장이 나를 더더욱 이곳에 안주하게 만들고, 오히려 이곳이 제2의 고향인양 서울을 갈 일은 없어져갔다. 아이도 졸업을 하더니 더 멀리 수도권을 벗어날 일만 남았다.


 많은 일들이 이곳 송내에서 지나쳐갔다. 무언가 나의 신상에 중대한 변화는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이제는 무심한 열차들만 오르내리고 있었다. 딸아이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영원히 멈추길 기대했었다. 하지만 시간은 부단히 제길을 가고 있었다. 오래전 이곳에 왔지만, 나는 아직도 이곳이 낯설다. 그렇다고 정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부천과 인천의 경계에 있는 송내는 말 그대로 소나무가 울창한 곳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근처의 초등학교 명칭이 '솔안 초등학교'인 것으로 추측해 본 생각이다.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 상상해 본다. 도시인의 감상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변두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이제는 상전벽해로 변해버린 노원구의 그 동네를 더 이상 고향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가슴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 폰의 진동이 길어지고 있었다. 딸아이가 도착한 모양이다. 1층으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휘둥그레 쳐다보았다. 하루종일 시달려 초췌하지만 눈망울을 반짝이는 딸아이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내 팔짱을 끼고는 오래 기다렸냐는 등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묻고는 웃으며 집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가냘픈 소나무가 줄지어선 공원을 지나며, 문득 나무가 울창했을 이곳의 지난날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소나무 잎은 여전히 푸르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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