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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Sep 06. 2024

흐린 날의 기억

삼촌과의 추억



아득한 시간 속에 한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부모님은 타 지역으로 가서 점포를 내고 한동안 정신이 없기에, 나는 조부모님의 집에 머무르고 있던 시기였다. 은행원이던 막내 삼촌은 토요일 오전근무를 마치고, 웬일로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와 나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셨다. 무료하던 차에 어린 나는 신이 났다. 동네 어귀의 신작로 변에 영화관이 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를 데리고 뻥튀기며 주전부리 등을 쥐어주고, 삼촌과 신나게 영화를 보았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의 모퉁이에 맴돌고 있다.



 그런 삼촌이 나는 늘 좋았다. 얼굴도 핸썸하고 당시 기준으로는 키도 큰삼촌이 한동안 나의 롤 모델로 기억되고는 하였다. 은행원인 삼촌은 대화에 있어서도 늘 상냥했었다. 무엇이든 관심 있게 부드러운 말투로 사람들을 편하게 만드는 어투를 지니신 분이었다. 조부모님 댁은 지금생각해 보면 늘 북적였다. 당시의 생활상이 대가족 문화가 보편적이라 범한 집안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일곱 남매의 장남이셨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삼촌들과 결혼을 하신 작은아버지, 미혼인 고모와 고모님들이 늘 주변을 에워싸듯이 대문을 여닫고 출입했었다.



 당연히 사촌동생들도 많아 심심할 틈이 없었다. 고모의 아들인 고종사촌 동생이 나와한 살 터울인지라 싸우기도 하고, 어울리기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좀처럼 그런 추억을 쌓기가 힘들어지는 세대로 변하였지만, 아동기의 내 모습엔 충만한 가족의 배경이 있었다. 막내 작은아버님의 전화가 왔었다. 추석이 가까워지니 강화 묘소의 벌초를 하자는 줄 알았다. 덜컥 입원을 하셨다고 한다. 임파선이 부어 피곤해서 간단한 치료로 나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닌 거라고 하신다. 림프종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미 4기까지 진행을 했다고 하니, 그 아득함이 어땠을지 가늠이 된다.



 삼촌은 원래 이번 추석에 벌초를 가자고 했었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씨의 뒤끝은 9월 초에 들어서도 여전하기에 벌초대행이나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평택의 안중에서 굳이 매년마다 서울의 둘째 숙부님과 강화 선산까지 예초기까지 싣고 와 합류한 나와 벌초를 하시길 잊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그나마 있는 선산이 형제분들과 조카인 나, 등을 연결하는 매개체라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매년 한차례의 대사인 벌초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부득이하게 나의 집에서 가까운 가족공원의 봉안당에 모셨다. 아버님과 합사를 생각하지만 조부모님 묘소 바로 아래 아버지의 묘소가 있기에 섣불리 옮기는 일도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오늘 하루를 쉬기에 차에 예초기를 싣고, 홋홋하게 강화의 하도리 선산으로 오전에 출발을 했다. 아내는 가고 싶어 했지만 무더위도 가시지 않았고, 지병이 많이 호전되었다고 하지만 그러기엔 무리라 생각해 집에 있으라 했다. 선산을 가는 길이 맑지는 않아 흐릿하게 구름이 있어 덥지 않아 좋은 날이라 생각했다. 막상 도착을 하니 여우비도 조금 내렸다. 오르기 편한 곳에 차를 대고 예초기를 메고, 선영을 찾으니 수풀이 무성해져 길을 찾기에 잠시 혼동이 왔다. 홀로 벌초를 한 적은 없기에 조금 저어하는 마음도 든다. 비도 살짝 온 수풀이 우거진 길은 오히려 물기에 괴괴하기도 하다. 묘소에 이르자 오히려 풀숲은 사라지고 매년 벌초를 한 덕분에 오히려 아버지 봉분은 이끼류만 무성했다.



 이삼 년 전쯤 부친의 묘소 바로 옆,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중허리쯤이 부러져 보기에 안 좋아 어떻게든 잘라보려 했으나, 힘도 들고 시간이 없기에 그냥 방치했더니 와보니 뿌리째 쓰러져 아주 좋은 천연벤치가 되어 있다. 한때는 어떻게든 치워버릴 요량이었지만 자연은 그냥 두면 오히려 보기에도 좋은 선물을 주는가 싶다.

 혼자 왔으니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조부모님 선영에 가벼운 술잔을 올리고, 아랫녘의 아버지 묘소에 인사를 드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니 등에 멘 예초기의 모터소리와 연료 타는 냄새 그리고 배가되는 무게에 오랜만에 해보는 벌초가 녹록하지 않았다. 적응되기까지 처음은 무엇이든 힘든 법이다. 잠시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삼켰다. 맞은편 저수지에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숲을 가로질러 나에게 불어왔다. 나무등걸에 앉아 나는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고 호흡을 깊이 해봤다. 역시 자연의 바람이 더 시원하였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 에어컨 바람에 익숙했던 호흡이 깊은 탄식을 하듯 내뱉으니 가슴이 후련해진다.



 나는 갑자기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숙부님들과 왔을 때보다 오히려 힘도 덜 들고, 내키는 대로 쉴 수 있으니 너무 좋았다. 두어 시간 동안 작업을 하고 선영을 바라봤다. 시원하고 말끔하게 정돈된 묘소가 보기에도 흡족했다. 준비해 온 술을 한잔씩 올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께 한마디 말도 건넸다.


"아버지! 날이 흐려 덥지 않으니 작업하기 좋네요! 제 딸아이, 아버지 손녀 앞 길 좀 잘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올해 말로 퇴직을 하니 제 앞길도 지켜봐 주세요! 일 년에 한 번쯤 와서 풀이나 깎아드리고 하는 주제에  너무 많은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막내삼촌이 아파서 같이 못 왔어요! 건강할 수 있도록 좀 지켜주세요!"


 문득  그동안 못했던 말들이 터져 나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혼자 와서 벌초했던 기억이 없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비죽이 웃음이 흘러나온다. 오후 들어 돌아오는 길은 오래간만에 비가 꽤 오고 있었다. 와이퍼를 좀 더 바쁘게 움직였다.

흐린 날의 기억이 참 좋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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