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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Oct 08. 2024

은퇴유감

기로에 선 다른 출발에 앞서



 선택의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망설이게 된다. 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연민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고민이 된다. 돌이켜 보면 늘 선택의 문제로 시달린 뒤안길이었다. 나의 시간을 매몰시키고, 그 어떤 가능성이나 위험성이 도사린다는 희망이나 좌절도 없이 너무 긴 세월을 흘려보냈다. 알량한 연금 몇 푼과 치를 떨며 아낀 생활비에도 빚은 남아 있었다. 퇴직수당 몇천은 그나마 마른 가지에 한줄기 빗물 같았다. 남은 건 살아갈 내 나머지 생의 시간과 또 다른 두려움에 떨고 있는 선택의 시간들 뿐...., 모든 건 '남 짜고 하는 장사'라던 대학 때 괴짜 교수의 말이 화인이 되어 입술로 되뇌게 된다.


'나는 남는 장사를 한 것일까?'


 모든 행위의 결과가 그렇게 평가되는 사회적 인식의 잣대 속에서 나는 우물쭈물하게 된다. 자본이 없으니 아마도 일은 계속해야 할 것이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속에서 내 알량한 노동의 가치는 얼마만큼의 환금을 해줄지 짐작이 안된다. 그동안의 일에 타성이 붙은 나는 또 어느 정도 변신을 해야 삶의 루틴이 생기려나 모르겠다.  정년퇴직을 목전에 둔 나는 그나마 배부른 소리를 한다던 어느 동년배 친구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생긴다고 맹자는 말했었다. 물론 정치적인 표현이지만 일정한 재산이나 할 일이 있어 들어오는 수입이 있어야 같은 마음으로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일정한 재산형성을 젊은 날 못했으니, 해야 할 일을 모색하는 게 나의 주관심사다. 정년인 60세까지 근무하고 퇴직을 하는 것은 공무원이나 가능하다고 아는 이들은 부러워하기도 했다. 사실 많이 남기지는 못했지만 살아 남기는 했다. 박봉에 허덕이기는 해도 때가 되면 주는 급여에 삶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으니까....., 가족 여행으로 대만에 스펀철길 마을에서 천등을 날릴 때, 딸아이가 쓴 네 글자에 나는 우울해졌다.

 


'일확천금' 갓 서른을 넘겨 공무에 시달리는 딸애는 소원풍선인 천등에 그렇게 써넣었다. 아직 결혼은 생각지도 않는 아이는 늘 제엄마와 붙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곤 한다. 흉중에 좀 더 나은 형편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생각을 딸애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내 탓인 듯하여 자책이 든다. 아비로서 좀 더 풍족한 사회생활의 시작을 하게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386인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유쾌하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있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란 타이틀을 말이다. 사실 틀린 이야기도 아니지만 별반 감흥도 없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기에 그런 줄 알았고, 세상은 늘 그렇게 돌아가는 줄 알았다. 시간이 쏴버린 화살처럼 돌아올 줄 모르고 지나간 덕분에 전혀 낯선 곳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다. 지금은 이전의 가치관이나 전례의 답습이 허용되지 않는 시간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배우기를 멈춘다면 화석이 되어갈 뿐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일이 무엇일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적응에 온 힘을 한동안 써야 할 것이다.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별수 없지 않은가? 최근의 화두인 뉴스 중에서 의료대란 이후 학생들이 의대 선호현상이 두드려진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심지어 명문대 진학 이후에도 자퇴를 하고 의대입시에 올인한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짐작이 든다. 어떤 분야의 일도 안정성을 주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세상에서 배우는 학생들의 생각이 스스로가 전문 분야인 의사라는 직업은 매력 포인트가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흐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무한경쟁에서 제한경쟁의 선택된 세계로의 진입은 누구라도 원하는 바일 것이다. 한 분야의 일로 일생을 보내는 것은 탐나는 직업일 테니.....,



 무한경쟁의 세상은 나름의 무장이 필요하다. 절대 긍정적인 생각과 강철 같은 신체, 어지간한 실패는 예방주사쯤으로 생각하고 이겨내는 오뚝이 마인드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또한 젊은 시절에는 범이라도 때려잡겠다는 심정으로 야멸차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조금은 심하게 열심이었다. 영업의 세계는 냉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한경쟁의 분야에서도 끝판왕이라 할 수 있었다. 결국 건강이 따라주질 못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와는 다른 생각이 들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 순리라는 것은 명확히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쉬는 동안 봉사활동을 하려고 한다. 장애인 직업재활 사회복지기관에서 일정기간 동안 장애우들의 직업적 모색을 돕고, 그들의 사회경제적 적응을 위한 시간에 동참해 많이 배우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말이 좋아 봉사라고 하지만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나 결국 배우는 학생일 뿐이다. 특히 새로운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결국 배움이 선행되어야 지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가뿐히 나가려 한다. 많은 난관과 더불어 새로운 눈물을 보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소명을 잊지 않고, 하루가 길어지고 소중한 시간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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