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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Oct 25. 2024

낯선 하루

어느 눈부신 가을날에



 여름이 영원히 속되는 줄 알았다. 무더위도 정도껏 해야 하는데 여름날의 잔상은 추석을 지나고도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유난히 땀이 많은 나는 손수건이 없으면 지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가을이 온 듯싶었다. 하지만 너무 짧은 가을의 여운은 벌써 겨울을 재촉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딸아이는 국화꽃의 일종인 구절초를 행사하는 곳이 있으니 가서 보고 싶다고 했다. 가을의 전령 같은 국화꽃의 일종인 구절초라니......, 어린 시절 흔하게 보던 야생화의 일종으로 산기슭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작지만 다발로 피어난 구절초를 볼 수 있다는 말에 동하여 방향을 잡았다.



 휴일 나들이에 아내도 상기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온 가족이 늦잠을 자고 피로를 풀었으니, 아침밥 정도는 외식으로 때울 요량으로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으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황태 전문점에서 미역 황탯국으로 때웠다. 가는 곳은 세종에서 출발, 공주 유구 근처의 구룡사라는 사찰이 있는 곳이었다. 가는 도중 가을햇살이 여느 때 보다 따스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이해 못 할 여름의 무더위는 사그라들고, 한 줌의 햇살이 반가워지는 가을로 접어드니 사람의 심사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나는 서울외곽 불암산 자락에서 자랐다. 지금은 자취를 찾기도 힘들 정도로 상전벽해로 변한 모습이지만, 집 뒤의 산자락을 오르는 게 하루 중 일과였다. 오르는 도중 가을이면 지금 찾아가는 구절초는 흔한 잡초로 보였고, 풍부한 수량으로 흐르는 시냇물도 아이들과 놀거리를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 다람쥐라도 보이면 그걸 쫒느라 해가 지는 줄 몰랐고,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천진한 표정이 되고는 했었다. 한마디로 자연 속에서 자란 유년은 행복했다. 봄이면 진달래,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 동심은 풍선에 매단 바람개비처럼 돌고 돌아 하루가 그저 즐거웠었다.



 세월이 흘러 유년시절 산속에서의 추억은 잊혔지만, 철없던 시절 야생 구절초의 향취는 아득히 기억이 나곤 한다. 차는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르고, 아담한 시골 사찰에서 나오는 그윽한 향내를 맡으며 차에서 내렸다. 수도권이 아닌 곳의 목적지인 그곳은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주차에 여유가 있어 좋았다. 우리는 사찰 뒤쪽의 산골짜기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온 산에 눈이 내린 듯했다. 야생 군락지라고 보기엔 너무 넓고 높은 곳까지 구절초는 하얗게 산기슭을 끼고 내려앉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오르는 걸음마다 구절초 국화다발은 반기는 듯 하늘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사찰의 스님들이 가꾸는 야생화 단지인 것 같았다. 문득 어린 시절 뒷산의 진달래 군락지가 생각난다. 온 산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이던 하늘거리는 여린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던 광경과 오버랩되었다. 마침 바람이 불고, 온 천지의 구절초 다발은 나에게 흔들며 인사하는 듯 착각에 빠졌다. 그것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하루의 오후를 선물해 주는 것 같았다.



 연분홍 빛의 어린 시절 진달래와는 다른, 하얗고 여린 국화는 긴 목을 내밀고 여럿이 나를 유혹하듯이 산을 오르게 하였다. 평소 산에 오르는 걸 달가워하지 않던 아내도, 같은 기분인지 지치지도 않고 딸아이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 풍경에 취해 오르는 내내 힘든 줄을 몰랐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뭇사람들에게 자연과 식물의 교감을 하게 해 준 그 노고에 고마움이 앞선다.


 아침이면 아직은 아닌 것 같은데 벌써 겨울기운이 넘실댄다. 10월이 이제 겨우 중순을 넘겼을 뿐인데, 예년과 너무 다른 기후로 인해 절기 예측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너무도 절경인 이 풍광도 며칠 남지 않았다는 딸애의 말을 듣고 서운한 생각이 든다. 봄과 가을이 실종된 세상은 믿고 싶지 않다. 이상기후로 인한 여러 예측이 쏟아져도, 봄과 가을의 이렇듯 아름다운 생명들과 작별해야 하는 현실은 오지 말아야 한다. 구절초가 지천인 산에 오르니 아래로 보이는 광경은 또 다른 절경이었다. 흡사 눈이 내린 듯도 하고, 솜털이 지천에 깔린 듯하여 오를 때와는 다른 감동을 준다.



 겨울이면 동안거에 드는 수행승처럼, 저 구절초들도 씨앗을 잉태해 내년을 준비할 것이다. 너무 짧은 가을볕에 나비와 벌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생명은 또 그렇게 익숙하면서 낯선 작업으로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생각의 갈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여러 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안(天眼)은 바라지도 않지만, 나이에 걸맞은 혜안(慧眼)이라도 생기길 바란다면 읽고, 쓰기를 멈추질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익숙한 듯 낯선 하루의 여정은 짧아진 낮의 길이가 아쉽지만, 어둑해진 밤 맞이가 그리 싫지 않은 것은 내일은 또다시 낯선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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