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참으로 오래고 아득한 시간이었다. 갑자기 출근할 일이 없어졌다.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적응이 안 된다. 눈을 뜨면 늘 하던 하루의 습관이 있었다. 덮고 자던 이불을 한쪽에 가지런히 개고, 늘 하던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음 세면을 하러 화장실로 향한다. 그런데......., 씻고 어디 가지?......, 이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딘가 가야 할 일이 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목적이 없어졌다. 아직 유급 퇴직준비휴가가 두어 달 남은 상황이라 어정쩡한 상황에서 나름의 계획은 있었지만, 하루가 너무 낯설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마도 점점 적응이 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가능하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보려 한다.
어차피 홀로인 인생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혼자 사는 게 대세인 세상인 듯하다. 아내가 있지만 딸아이와 너무 멀리 있다. 이 도시에서 적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렇다고 이곳에 정감이 있지는 않다. 그저 그런대로 나의 삶을 영위하게 해 주었고, 싫지도, 좋지도 않은 그저 그런 영역이었다. 수도권이라 사람들은 늘 북적이고, 사건 사고도 다반사였다. 가끔은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이 부럽긴 하지만, 전원생활을 동경하진 않는다. 무엇이든 대가가 있는 법이다. 내가 다른 이의 게시된 삶을 추종할 만큼 남은 세월이 많지 않다. 정년이란 말은 일을 그만두게 만든 정해진 해를 말한다. 나이보다 그렇게 정한 사회적 인식의 패러다임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 부담은 자신이 느끼기에도 새로운 일을 하기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직장에 묶여 자유롭게 여행을 못해봤다는 생각이 들어, 국내로, 해외로 몇 차례 여행을 가봤다. 오랜 노동의 루틴은 세상을 보는 시야도 한정적으로 묶어 놓는다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일본의 교토에서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어느 쇼핑센터 차량 출입구에서 척추장애가 있어 보이는 경비복장의 노인분이었다. 연신 센터에서 나가는 차량을 주위를 둘러보고 신호봉을 흔들며 나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한 손은 허리에, 다른 손은 신호봉에 고정되어 여전히 맡은 일에 열중이었다.
저런 분이 어떻게 공중의 장소에서 이런 일을 할까 하는 생각에 한참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타이베이의 숙소인 호텔 뒤 시장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젊은이들이 많았고 거리는 관광시즌이라 흥겨운 음악이 흘렀다. 그런 것 보다 나의 눈길이 머문 곳은, 자그마한 식당의 전면에 나와 무언가를 튀기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표정은 진중했고, 튀김을 망태손잡이로 흔들어 털어내는 그의 손동작 스냅이 음악에 맞춘 듯 경이로웠다.
나는 왜 수많은 장면 중에서 그 사람들의 손동작이 기억에 남을까? 그것은 일에 관한 미련이 아직 내 뇌리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잠재의식은 뇌리에 남아 결국 그것을 찾게 하고, 손을 통해 구체화시킨다. 망치질을 하던, 타이핑을 치든, 수신호를 보내던지 결국 손동작은 일을 의미한다.
같은 거리를 다녀도 각자의 관심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이 흥미 있어하는 쪽으로만 눈길이 가는 법이니까. 누구나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여행도 일상사에 자주 다녀봐야 감흥도 있고, 눈도 틔여 다른 이에게 글이든,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기행문을 잘 쓰는 작가분이 생각난다. 나는 어림반푼어치도 없었다. 눈으로 본다고 다 그럴싸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본 낯선 풍경은 내 일상의 문제 접근으로 보인다. 그것이 또 다른 내 한계로 생각되어 씁쓸해진다.
일에는 권태기가 늘 따른다. 지긋지긋한 그 일에서 해방되었건만, 지금은 그 일이 없어지니 안절부절 할 뿐이다. 새로운 여정에 대한 기대도 하지만, 잃어버린 것에 미련이 앞서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가볍게 치부하고 싶다. 시작이 있었기에 끝도 있는 거라 생각된다. 문제는 지금부터 열정을 품고 꿈꾸는 일에 대한 집중이라고 생각된다. 너무 많은 세월을 타성에 젖어 보냈기에 그런 일이 생길까 의문도 든다. 하지만 새로운 자극이 있어야 일에 대한 자세도 겸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하루하루가 낯선 경험의 연속인 인생이라 생각한다. 또 그러한 새로운 자극이 있어야 뇌가 활성화되어 건강해진다고 한다.
아직 나는 퇴직한 것이 아니다. 퇴직 전의 휴가자일 뿐이다. 이전에 공사가 한창인 직장에서 연배가 돼 보이는 화물트럭 기사분과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있었다. 전직 경찰관을 하시던 분인데 삽 십여 년을 봉직하고, 사회에 나섰을 때 많은 계획과 꿈이 있었다고 했다. 막상 나서보면 모든 게 다르게 보일 테니,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조언도 주었다. 맞는 말 같았다. 미리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기로 했다.
홀로 여행에 나섰다. 그동안 가족과의 여행이나 직장, 동호회 등의 친구들과 여행은 있었으나, 혼자가 보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서해 남단과 해남을 거쳐 부산으로 가 잠시 머물다 경주와 포항의 지인을 잠시 보고, 김천으로 가 자연인으로 사는 직장 동갑친구의 삶을 보고 집으로 오는 코스다. 가장 큰 목적은 게을러진 글쓰기의 전환점을 만들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하루의 긴 해거름에 마음이 그리 초조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내일이 설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