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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Dec 25. 2024

낯선 하루 4

은유하며 관망하기



"요즘 어떻게 지내?"


 아직 일 년 정도 남은 직장 동료이자 친구는 최근의 내 생활이 궁금한지 연신 질문을 해댄다. 후배들이 마련해 준 퇴임식을 마치고, 피로연 겸 망년회 자리니 왁자하게 잔이 돌고 너나없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그는 못내 최근의 심리상태까지 물어본다. 아마도 그 또한 따라서 겪게 될 퇴직이란 그림자를 어림짐작 하려는 심리인 것 같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같지 뭐! 좀 오래 한 일에서 해방돼 보니 최근이 낯선 건 어쩔 수 없나 봐!"  


 그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나보다 먼저 시작한 그도 선배이고 벌써 30여 년을 여기서 잔뼈가 굵었으니, 아직 실감은 안 오는 듯하다. 얼마동안의 기간일지는 모르겠지만 안식년으로 생각키로 했다. 30대 초반에 시작해 28년여를 근무를 하고 마침표를 찍으니 이런저런 회한이 왜 없겠냐만은, 일단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6개월 정도는 쉬면서 제대로 된 줄기를 잡아 글을 써보고 싶다. 사람의 조건과 상황은 늘 유동적이라 굳이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그저 그런 글도배만 했다면, 이젠 뭔가 그럴듯한 글을 써보고 싶다.



 인천과 세종을 오간 지도 벌써 이 년 여가 되어간다. 딸애와 아내가 있으니 일주일 중 삼사일은 내려가 있고 나머지 삼일정도는 인천에 머무른 지도 벌써 시간이 꽤 돼간다. 어쩌면 나는 홀로 인천집에 머무는 것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하지만 자칫 게을러질 수도 있다. 아내의 눈길을 벗어났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군자의 그릇이 나타난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퇴직이 이달 말이니 바로 연계되는 일을 생각한 적이 있다. 쉴 만큼 쉬었으니 이런저런 번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바로 일을 시작하자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휴가 재직자 신분에서 12/31일 퇴직하고, 새해 1/1일부터 바로 근무하는 건이었다.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사실 몇 해 전부터 한 가지 방도로 궁리된 일이기도 했다. 퇴직 후 연계된 일이 아무래도 적응에도 쉬울 듯하여 내심 기대를 했던 일이기도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심사가 정리되지 않았다. 간절하게 바라고, 열과 성을 바칠 준비가 아무것도 돼 있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는 무슨 일을 한들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더 이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이 육십에 배부른 소리라 힐난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밥을 지어본다. 늘 아내가 해주는 밥만 먹어 봤으니, 그 노고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서였다. 전과는 달라 전기밥솥에 물을 적당히 채우고, 적당량의 쌀을 넣어 전기를 통하게 코드를 꽂아 붉은 등이 들어오게 만든다. 먹는다는 것은 내 몸의 붉은 혈류가 흐르게 하는 일이다. 밥솥의 전기적 붉은 코드와 유기체인 내 몸의 혈류가 연동되어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가슴저미는 일인가. 한 줌의 쌀을 위한 여름날부터의 노고를 생각하면 한 톨도 가벼이 할 수없다. 물에 뜨는 쌀을 씻어내다 어쩌다 버리게 되면 못내 아쉽다. 오늘저녁은 유난히 맛이 있었다.



 그동안은 남들의 시선에 맞춰 살아온 삶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며 자위하는 삶이기도 했다. 별로 행복하거나 보람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도 다들 그렇게 산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을 노 저어왔다. 이제는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분명하게 묻고, 곁부축해 독려하고 싶어 진다. 그것이 내 의도대로 되지 않더라도 후회는 없을 거 같았다. 낯선 하루가 내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말고, 그 틀을 벗어나 보라는 것이다. 아직도 머릿속은 복잡하다. 잘한 결정일까, 혹시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를 맴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혼란조차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삶은 언제나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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