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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한결 Aug 29. 2021

깨달음이 울림이 되려면

독서의 양과 질


  책을 많이 읽는다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나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의 대화는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책은 많은 생각을 머금고 있는 매체이다.  속에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것들다양하게 마주한 사람들이 아닌가.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관계를 으면 당연히 유연한 생각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유형의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상대의 알지 못함 단순한 의견을 ‘편견이라 단정하며 깎아내리기도 했다. 이것을 재미난 농담이란  던지면서 비관적인 유쾌함을 즐기는 듯했다.  어떤 유형의 사람은 모든 대화의 유형을 자신의 관심 분야로 끌어들여  편의 강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어떤 유형의 사람은 자신의 세계관이 너무 뚜렷해서  세계에 어울리지 않고 불필요한 캐릭터는 회피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비관으로 모는 사람이다. 자신이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너무나 확고해서, 상대방의 무의식적 편견을 깨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늘. 그리고 러한 순간을 굉장히 유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상대방도 유쾌한 기분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화겠지만, 자신의 무의식적 편견을 보란 듯이 들춰내는 사람을 유쾌하게 맞이할 정도로 수용적이고 탈권위적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사실  유형의 사람이 들추는  편견이라는 것이, 사실은 편견이 아닐 때가 많아서 싫은 것이다. , 자신의 편견에 맞지 않으면 상대방이 세상에 대한 편견에 휩싸였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편견을 인지하지 못한  상대보다 월등히 유능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우월감에 취하는 것이다. “ 그렇게 세상을 좁게 바라보니?” “세상에 대한 편견이 가득하구나라는 말로 지적질을 일삼는, 개방적인 꼰대라고나 할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으로  사람의 대화 수준을 예측하고 지적질의 범위를 넓혀주는 수용적 태도를 경계하기로 했다. 책을 읽고  삶에 적용하는 능력은 독서한 권 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양보다 이라는 것은 독서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런 생각들이 있구나’ 하며 그냥 지나치는 독서와, ‘이런 생각들이 있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하는 독서는 아주 다르다. 구경하는 것과 살펴보는 것이라고나 할까. 생각의 타당한 근거를 찾고 마땅한 이유를 생각할 , 비로소 깨닫는 모든 것이  안에 울림으로 퍼져나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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