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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Sep 01. 2024

일본에서 2시간동안 국제 미아가 되.

신주쿠 역에서 폰이 사망하는 순간만큼은 확실히 국제 미아가 되었다. 연락할 수단도 없었고, 보조 배터리도 없었으며, 일본어 회화 능력도 없었고, 어디로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신주쿠 역에서 내리는 게 아니다"라는 다급한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도 신주쿠 역에서 내려야만 했다. 내가 아는 역은 거기밖에 없었으니까. 일본 여행지로 신주쿠를 왔으니, 유명한 곳일 테고, 유명한 곳에는 여행객을 도와줄 수단이 많을 테니까. 그럼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않았기에, 친구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잘 곳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고 패닉에 빠진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폰을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폰에 쥐똥만큼이라도 남아있는 배터리가 있다면 폰이 켜질 것이고, 1분이라도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면 국제 미아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아지기에, 계속해서 폰의 전원 버튼을 꾹 누르고 있었다. 정말 손가락에 피가 안 통할 때까지 누르고 있었다. 그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폰을 충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신주쿠 역은 광활했다. 무지무지 광활했다. 한국의 지하철 역 수준이 아니었고, 국제 미아인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 안성맞춤인, 무자비한 넓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일단 인포메이션에 들렀다. 남자 두 분이 보였다.


국제 미아 : 익스큐즈 미, 마이 폰 배터리 이즈 아웃...
인포메이션 남자 : 아이폰?
국제 미아 : 노노.. 마이 폰 이즈 갤럭시....인포메이션 남자 : 오 쏘리쏘리.


갤럭시는 충전이 안 됐다. 최후의 방법으로 일본 여행 숙소로 잡은 호텔에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인포메이션 남자분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만 짓고 그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이해한다. 솔직히 나라도 어떤 일본인이 와서 본인이 묵고 있는 호텔에 전화해 달라고 하면.... 도와줬을 것 같은데? 그건 오지랖 넓은 내 생각이고. 결국 처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당황스러운 표정 그대로 인포메이션에서 벗어났다. 이때부터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다. 인포메이션 직원분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행인들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했다.


폰을 충전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다짜고짜 카페에 들어가서 "캔 아이 차지?(충전할 수 있어요?)" 하고 앞뒤 설명 다 빼놓고 급하게 직원에게 물어봤음에도, 직원은 충전은 할 수 있으나 충전기는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하, 충전기를 사야겠다. 다시 주변 편의점을 찾아야 했다. 여행 중엔 그렇게 많이 보이던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가 국제 미아가 되고 나니 잘 보이질 않았다. 역에서 나오는 불빛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고, 다행히 저 멀리서 패밀리마트 간판이 반짝이고 있었다. 살았다! 하고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세븐일레븐이 가까워 올수록 산 게 맞나...? 충전기가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제발 있기를 기도하며 문을 열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보조배터리 대여소가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짜 미아에서 여행객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는데, 보조배터리 대여소였다. 보조배터리를 대여하기 위해서는 큐알코드를 찍어야 했는데, 큐알코드를 찍으려면 폰을 충전해야 했다. 그러니까 결국 미아 상태에서 못 벗어난다는 소리다. 심지어 C타입 충전기도 없었다. 바로 나와서 다른 편의점을 찾기 시작했고, 건너편에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충전기를 구매할 수 있었는데, 충전기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 충전기...

분명 보조배터리 형태긴 한데, 마치 고등학교 기술가정 시간에 만든 느낌의, AA 배터리 4개를 결합한 형태였다. 결국 그 어설픈 보조 배터리는 겨우 폰을 15퍼센트 충전시키고 방전 돼버렸지만, 덕분에 신주쿠 근처에서 기다리던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 뒤 만날 수 있었다. 그게 없었다면 물론 만났을 땐 한 소리 듣기는 했어도, 폰을 충전하지 못해서 역 안에서 노숙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


일본 여행이 끝나고 2주 후, 그 친구에게 물어봤다.


"일본에서 폰 꺼져서 연락 안 됐을 때 많이 화나지 않았음?"

"아 근데 솔직히... 연락 됐을 때 기뻤지 ㅋㅋㅋㅋㅋ 이 녀석 해냈구나...! 믿고 있었다고! 하면서."


정말, 한 번쯤은 겪어볼 만한 일이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해외여행 중 폰이 꺼져서 국제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시간엔 피가 바싹바싹 마른다.


... 근데 여행 온 한국인에게 폰을 빌려달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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