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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Aug 11. 2024

문제 못 풀어 울던 아이가 선생이 되면

"이 간단한 문제를 왜 못 푸냐!"

학원 선생님이 10살짜리 아이를 혼낸다. 문제가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로 풀이 과정이 빼곡했는데, 이젠 흑연과 눈물 자국이 뒤섞여서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선생이 질책할수록 젖은 종이글자를 쓰느라 계속해서 찢어진다. 선생님은 체념했는지 "여기까지만 풀자." 하고 나간다. 아이는 그제야 눈물이 그쳐 문제를 보는데, 눈물과 흑연이 뒤섞여 풀 수가 없다. 

그 아이는 공부방에서 10살짜리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아이들은 내게 먼저 인사를 하거나, '쌤 얘가 자꾸 이상한 소리 해요'라고 말하면 인사로 받아들인다. 왜인지 내가 담당하는 아이는 인사도 하지 않고 친구에게 장난을 치지도 .

"... 많이 피곤하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선생 3, 아이 3이 한 방에서 과외를 하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다른 아이에게 장난을 치며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한다. 그런데 내 담당 아이는 오늘따라 전혀 그럴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뭐 과외를 방해하지 않으니 잘 됐나, 싶어서 수업을 계속 진행하던 도중, 네 번, 다섯 번을 설명해도 아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황이 생겼다.

"그러니까 정삼각형 안의 이 삼각형이 왜 정삼각형이냐면.. 이 쪽 각도도 같고, 정삼각형의 세 각은 모두 60도로 같으니까 그런 거야!(벌써 다섯 번째 설명이란다...!)"
"네..."
"그럼 00이가 선생님한테 다시 설명해 볼까?"
"모르겠어요..."

순간 화를 낼 뻔했다. 아이에겐 빠른 이해를 위해 쉽게 설명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고, 그렇게 실행했는데, 왜 이해하지 못하는가. 집중을 안 하는 걸까. 아니면 공부를 할 기분이 아닌데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와서 싫은 건가?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


...라고 생각해서 10살의 나를, 눈물 뚝뚝 흘리며 문제를 풀지 못했던 나를 그 학원 선생님은 그렇게 질책했을까. 아이를 상냥하게 가르치겠다던 마음은 아이 때문에 느끼는 답답한 마음에 잠식당해 버리고, 아이는 무서워서 눈물을 흘린다. 선생이 된 나는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이에게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자꾸 같은 설명을 반복하니, 옆에 계신 선생님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는지, 아이가 푸는 문제를 보기 시작했다. 원래는 그 선생님이라면 "야! 이거 ~~~ 이런 식으로 풀면 되잖아! 으이그" 하고 장난스레 질책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는 표정과 분위기였다. 아이는 풀이 너무 죽어 있어서 조금이라도 질책하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옆 선생님은 아이를 토닥이면서 말하시기를,
"괜찮아 00아 할 수 있다! 어? 우리 00이 똑똑한데 왜 그래?"  
옆에 계셨던 선생님은 아이를 위한 교육을 했다.
내가 10살 때 날 혼냈던 학원 선생님은 아이를 위한 교육을 하려다, 본인의 답답함에 초심을 잃고 말았다.
혼나던 10살 아이에서 선생이 된 나는, 옆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어떤 선생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옆 선생님의 위로도, 학원 선생님의 혼냄도 풀 죽은 아이를 기분 좋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저시급에 가까운 12.000원을 받는 과외 알바생이, 수학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모르는 중학생 아이가 신나서 문제를 풀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한다면 나는 교육자인척 하는 알바생에 불과한가.

시급 12,000원인 이유도 있다. 중학생 수학은 성인 대학생에게 쉬운 편인 데다, 문제를 준비해 가지 않아도 되고, 아이의 진도를 관리해 주는 선생님도 계신다. 과외 치고는 수월한 만큼 시급도 적당한 수준이다. 애초에 대학생이 지역아동센터에서 알바를 구하고 있었는데, 내가 지원한 아동센터가 공부방이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걸 좋아했고 아이를 가르치고 싶었다. 초등학생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는 중학생 아이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기에 아이가 문제를 몇 번이고 반복되는 쉬운 설명에도 이해를 못 하더라도, 이해를 시키고자 노력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의무라 생각했다. 다만 받는 돈과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딱 그 수준에서만 가르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 화를 낸다면 아이에게 내지 않고, 최저시급에 안주하는 나에게 내겠다.

"왜 이런 간단한 문제를 이해시키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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