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교사도 아닌데 어쩌다 혈연이 아닌 15살 아이들을 인솔하게 된 걸까. 친구의 추천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알바를 하게 되었고, 중학생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건 공부방에 들어갔으니 당연한 결과다. 근데 아이들의 현장 체험 학습에 따라갈 줄은 몰랐다. 심지어 안전이 매우 중요한 워터파크에.
워터파크에 도착하자마자 인솔자에겐 할 일이 주어졌다. 손목에 차는 락커 키(신발 보관 키 겸 음식 사 먹을 때 금액을 충전해 놓는 키.)를 아이들에게 지급하고, 손목에 잘 찼는지 확인한다. 잘 차는 아이들은 곧잘 하지만, 혼자 시계를 차지 못하는 아이는 직접 시계를 차 주었다. 절대 잃어버리지 않게 경첩 부분을 단단히 고정해 주었다.
파도풀도 가고 급류도 타고 맨몸으로 고층 높이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아이들 5명을 데리고 다녔지만 내가 더 신나서 아이들에게 놀이기구 더 타러 가자고 졸랐다. 아이들은 조금 지쳤는지, 토렌트 리버를 가자고 했다. 튜브를 타고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둥둥 떠다니는 유수 풀이다. 범퍼카처럼 튜브가 부딪히면 깔깔대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과 눈앞에서 부딪혀도 그냥 즐겁다. 버스 안에서 서로가 부딪히는 건 불쾌감이 들지만, 워터파크 풀장에서 부딪히는 건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어간다. 그렇게 풀장 한 바퀴를 돌고 썼던 튜브를 반납했다. 아이들과 함께 풀장을 나오는데,
아이들은 침착하게 주변 라이프가드 분을 찾아갔다. 대처 속도가 어른인 나보다 빨랐다. 락커 키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찾아요? 하고 침착하게 문의한 덕에, 인솔자가 나서서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 떠다니는 손님이 보고 주울 수도 있는데 보통은 잘 안 줍거든요...워터파크에서 다 노시고 나갈 때쯤에 분실물 보관소에 찾아가 보시는게 어떨까요?"
사실 신나게 파도에 휩쓸리느라 바쁘지, 누가 물 밑에 있는 물건을 주우려 하겠는가. 나만 해도 뿔테 안경이 보였지만 줍지 않았다.땅에 떨어져 있었다면 주워서 인포메이션에 가져다줬겠지만, 튜브를 끼고 있어서 손을 쓰기가 힘드니 발가락으로 집어 올려야 하는데, 평소에 발가락으로 친구를 꼬집는 연습을 안타깝게도 하지 않았으니 웬만하면 놓칠 테다. 하지만 이젠 발가락으로 잃어버린 락커키를 찾을 때가 왔다.
우리 6명(선생인 나 1명, 중학생 애들 5명)의 작전은 이랬다. 시간 간격을 두고 한 명씩 풀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첫 타자가 왼쪽 벽에 붙으면 두 번째 타자는 1분 기다린 뒤 오른쪽 벽에 붙어서 흘러간다. 아이들이 모두 떠내려간 뒤 나는 가장 마지막에 간다. 풀장을 처음 들어갈 땐 신나 있었던 아이들이, 이젠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파도에 뛰어들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락커 키 변상은 얼마든지 내가 할 의사가 있었지만, 물건을 잃어버린 아이가 풀 죽어 있을까 봐 걱정됐다. 그토록 우리를 신나게 하던 파도는, 잃어버린 락커키를 더 찾기 힘들도록 몰아쳤다. 파도가 거세게 칠 때마다 튜브를 탄 사람들은 통통 튀듯이 부딪히고 엉키며 신나 했지만, 파도가 칠 때 거품을 일으킬수록 수면 아래는 불투명해져 계획했던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이걸 무슨 수로 찾나... 망연자실하고 포기하려던 중,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락커키를 찾던 아이가 말하길,
"쌤, 튜브 통해서 아래 보면 바닥이 잘 보여요!"
진짜였다. 튜브 때문에 머리를 담글 수 없어서 수면 아래 바닥을 선명히 보기 힘들었는데, 투명한 튜브가 물안경처럼 물속을 볼 수 있게 해 줬다. 파도의 흐름을 살필 땐 고개를 들고 있다가, 물 안에 뭔가 보인다 싶으면 곧바로 고개를 숙여 튜브를 통해 그 뭔가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선생 1명과 중학생 5명의 야심 찬 작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도는 여전히 거세고 사람들은 계속 부딪히며 락커키를 더욱 찾기 어렵게 했다. 결국 락커키는 찾지 못했고, 애꿎은 벨리곰 모양 지비츠만 건졌다. 락커키를 잃어버린 아이에게 벨리곰을 전해줬지만 잠깐은 좋아하더니 다시 착잡한 표정을 했다.
그래도 벨리곰 받아서 신났는지 돌리면서 가지고 놀았다. 귀여움...
아이가 락커 키를 잃어버려도 침착하게 행동한 걸 보니, 앞으로 돌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리라 확신했다. 다른 아이는 튜브를 통해 수면 아래를 또렷하게 본다는 재치를 발휘했다. 워터파크에서만큼은 오히려 선생인 내가 아이들에게 많이 배웠다. 중학교 수학을 가르치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주는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으나, 어떤 면에선 아이들이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선생도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고, 공부방 알바를 추천해 준 친구에게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