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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Jul 21. 2024

단 돈 900원의 행복한 도박, 롯데리아 소프트콘

개인적으로 롯데리아 소프트콘이 너무 좋다. 너무 깊지 않고 적당히 얕은 맛의 달달함, 죄책감이 들듯 말 듯 한 적당한 양, 아이스크림을 절반쯤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콘의 바삭함이 느끼함을 깔끔하게 눌러준다. 솔직히 콘이 아니라 컵이라면 사 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걸 900원에 즐길 수 있다. 어렸을 때는 500원이었는데,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올라도 1000원 이하라서 부담스럽지 않다.

소프트콘을 자꾸 사 먹게 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랜덤성'이다. 롯데리아 어느 지점이든 가격도 똑같고 맛도 비슷할 텐데 뭐가 랜덤이냐고? 지점에 있는 직원분의 '콘에 아이스크림을 쌓아 올리는 기술'에 따라서 소프트콘을 건네받을 때의 기분이 랜덤으로 변한다. 기술이 좋으신 분은 콘 안쪽까지 아이스크림이 가득 차있고, 콘 위로 갈수록 원을 일정하게 그리며 쌓은 덕에, 끝 부분엔 안정적인 뿔 모양을 뽐내고 있다. 그런 소프트콘은 건네받는 순간 느낀다. 이 사랑스러운 묵직함. 이 사람 고수다. 잘 쌓는다.

소프트콘 쌓기 고수...! 이 높이를 보아라

당연히 기술이 서투신 분도 있다. 아이스크림을 뽑아낼 때 콘 안쪽까지 넣질 못해서 바로 겉표면부터 쌓이기 시작한다. 원을 그리며 쌓긴 하는데 점점 피사의 사탑처럼 한쪽으로 치우친다. 빨리 먹지 않으면 흘러내릴 듯한 불안감을 준다. 그런 소프트콘은 건네받는 순간 느낀다. 이 손해 본 듯한 가벼움... 이 분... 수련이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다. 돈을 똑같이 내는데 지점마다 아이스크림의 양이 다르다니. 기계를 쓰면 어느 지점에서 같은 양으로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직원의 아이스크림 쌓기 기술 숙련도에 따라 양을 다르게 해야 한단 말인가.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 가끔 사 먹는 소프트콘의 양이 살짝 달라지는 게 뭐 그리 대수란 말이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프트콘을 자주 사 먹는 내겐 하루의 행복이 결정될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소프트콘을 주문해 놓곤 직원에게 이렇게 말해야겠다 싶은 건 있다.
"많이 담아 주세요!"
또는
"정량으로 담아 주세요!"
과연 이게 통할지는 모르겠다. 친절하게 "네~"하시긴 하겠지만 양이 달라질까? 소프트콘 쌓는 실력은 그대로일 텐데. 실력에 따라 양이 달라지는 맛에 소프트콘을 먹는 것도 커서,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던 듯싶다. 지점마다 양이 들쭉날쭉하기에 소프트콘을 좋아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뽑는 건 억울하지 않다. 재밌다.

새로운 지역으로 갈 일이 생기면 롯데리아에 들러 소프트콘을 사 먹는 습관이 생겼다. 집 앞 롯데리아에선 이미 여러 번 사 먹었기에, 양이 적을지 많을지 예상돼서 재미가 없다. 새로운 지점을 가면 인테리어의 미묘한 차이도 알 수 있고, 무엇보다 직원분들을 보고(편견이긴 하지만) 이 분이 아이스크림을 많이 담아 주실지, 적게 담아 주실지 대략 예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을 때 느끼는 희열감이나 배신감을 즐긴다. 인형 뽑기를 하기엔 실력이 부족하지만 뽑았을 때의 희열감을 원한다. 그나마 뽑기의 희열을 느끼는 것으로 타협한 것이 소프트콘이다.

900원의 값싼 가격으로 즐기는 랜덤의 희열. 집 근처에 있다면 한 번 즐겨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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