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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Dec 01. 2022

현실을 모르는 순수한 열정은 대단하다

왜 그렇게까지 해?

일이 너무 좋아서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했고, 하루 평균 15시간씩 일했다.   


집에도 안 가고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갔음에도 당시에는 돈을 받으면서 일을 배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일단 회사에 수혈을 하기 위해 투자유치를 하는 게 먼저였다.

이사님은 IR(Investor Relations, 투자유치) 자료를 맡기기 전에 내가 믿고 일을 맡겨도 되는 놈인지 실험을 하고 싶으셨는지, 정말 다양한 일을 많이 시켰다. 어느 날은 갑자기 유사 서비스를 2시간 안에 분석해서 보고하라고 하고, 300페이지가 넘는 산업군과 관련된 영어 논문과 아티클을 주며 주말에 다 읽어오라고 했다.


강한 신뢰를 얻고 싶었던 나는, 한계를 실험해보려는 이사님의 계획이었던 것을 모른 채 이 모든 걸 턱 턱 해냈다. 오두방정 기질이 있어서 한 술 더 떠 300페이지를 13페이지로 요약해서 보고하기까지 했다.

1달 넘도록 무리한 요구를 암말 없이 하는 걸 보며 '진짜 하는 놈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회사의 방향성과 및 모든 정보들을 알려주고 맡기셨다. 법인인감 공인인증서까지 맡겼으니 완전히 신뢰를 얻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신뢰를 얻고 1주일 후, 드디어 IR자료를 만드는 첫 번째 미션이 생겼다. 

IR자료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도 없는 나는 그날부로 IR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모든 베스트 케이스 IR자료를 다 다운로드했다. IR은 VC들 사이에서만 돌아다니고 인터넷에 정말 잘 한 IR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이 없어서 좋은 레퍼런스를 찾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어쨋뜬 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미션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투자유치라는 성과가 너무나 명확한 미션이어서 의욕이 끓어 넘쳤다. 


출퇴근을 하면서도 '이 장표는 어떻게 창의적이고 직관적으로 구성하지?'를 계속 고민했던 것 같다. 개중에는 경영진의 박수갈채를 받은 마케터 뺨치는 장표들도 몇 있었다. 나는 잘 만든 문장 하나가 얼마나 오랜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나온 한 문장인 지 이때 깊이 깨달았다. 찰떡같은 문구를 잘도 만들어내는 마케터가 얼마나 대단하게 느껴지던지. 



그렇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기어코 누적 70억을 투자받고야 말았다.

대표님으로부터 투자유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온몸에 전율이 오는 것처럼 짜릿했다. 

내 지분도 없고, 성과급도 없는데 이게 뭐라고 뿌듯하고 울컥했다. 나는 결국 일에 몰두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인정받을 때 비로소 숨 쉬는 기분이 드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탁월하지 않으면 흥미가 금방 떨어져 버려서, 점점 더 무서운 놀이기구를 찾듯이 점점 더 큰 성과와 만족감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냥 적당히 하면 어디 덧난다. 

IR을 하는 과정에서도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철학이 더 담기게, VC의 특성에 맞게, 피드백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조금 더'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까지 하니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기초체력이 있었어서 다행인 게, 당시 5,6키로가 찌고 피부가 뒤집히는 정도에서 끝났던 것 같다. 정말 몰입을 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 순간에는 꾸준히 해온 운동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휴, 하고 돌아보니 1년 전의 내가 아니었다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어느 순간 캘린더를 보니 친구와의 약속은 1개도 없고 오직 일과 미팅의 연속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항상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찾던 북한산 약속을 잡고, 부모님과의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그동안의 1년을 잠잠히 회고했다.


돌아보면 희극이듯, 

미운 것도 있었지만 사실 감사한 마음이 컸다. 

동료들한테는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로 일관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런 몰입의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다.


밤이고 낮이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미친 듯이 일을 막 던졌던 이사님의 태도는 결국 나를 시험하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사업에 돈이 많이 들어서 투자를 받지 못했다면 회사가 망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러면 나는 회사 망해서 실업자 된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것도 이때 알았다


온전히 내가 노력해서 성장했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지금 당장보다 언젠가 노력이 쌓여서 더 크게 보상받을 기회가 올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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