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미 Jun 08. 2016

3개의 지루한 이야기

3. 


               나의 동기 H 양은 유시민 선생님의 광팬이다. 그녀의 이번 학기는 그의 저서를 탐독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더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는 H 양이지만..) 4월 말 같이 듣는 사상사 수업의 2차 과제를 제출한 뒤 그녀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강추했다. 자신의 리포트 작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나에게도 꼭 읽어볼 것을 권했다. 나는 당시 중간고사를 핑계로, 이후에는 나의 음주가무를 핑계로, 내가 읽고 싶은 소설책을 핑계로 그녀의 추천을 뒤로 미루기만 했다. 보다 못한 H 양은 나에게 그녀의 책을 직접 빌려주었다. ‘3차 과제 시작 전에 한번 더 읽을 거니까 그전에 돌려줘.’라는 말과 함께. 목차와 함께 한두 장 넘겨본 책장은 확실히 유시민 선생님이 달필가이자 다독가임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우습지만 베스트셀러 거부병을 앓고 있다. 왜일까 남들 다 좋다는 책, 남들 다 읽은 그 책을 읽기 싫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읽은 뒤 2차 과제 점수를 잘 받았다는 H 양의 말에 넘어가 우리 수업과 관련된 <자유론>이 나온 ‘4. 전략적 독서’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5. 못난 글을 피하는 법’만 읽고 책을 덮었다. 글쓰기 특강 덕분인지 제출 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덕분인지 나의 3차 과제는 그럭저럭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글쓰기. 유시민 선생님의 책은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논리적인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정말 좋은 책이다. 그의 책을 거부하는 나는 감히 나의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인문학부의 특성상 다른 대학생들보다야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다행히 글 쓰는 일은 나의 적성까지는 아닐지라도 흥미와 맞아 개인적으로 과제가 아닌 글 역시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 아니 많이 쓰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이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슨 글이지? 왜 쓰는 거지? 시인이 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을 갖고 태어나는 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여행가, 몽상가, 사진 찍는 사람, 시인 기타 등등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로 내 삶을 영위하고 싶다. 그러나 캐리어 하나에 내 몸을 맡기고, 필름 한 롤, 종이 한 장, 그리고 연필 한 자루에 행복해하는 삶을 살기엔 너무 많은 편리를 누리고 있다. 용기가 없다. 이러한 내가 쓰는 글은 글이 계속해서 밀려나는 이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걸까. 글은 결국 글쓴이 삶의 다른 형태라던데, 내 글에서 느껴지는 건 철없음 정도려나.   



2. 


              ECC B3층에 하나. 학문관 1층에 둘. 중도 1층 같은 B1층에 셋. 

              내가 알고 있는 3개의 도서반납기. 이번 학기 반납기가 새롭게 바뀌었는데 어째 매번 갈 때마다 가득 차 있어서 몇 번 이용해보지 못 했다. 투덜거리며 중도로 올라가는 수밖에. 그렇게 올라간 중도 지하에 위치한 반납기는 언제나 비어있다. 책을 갖다 대면 반납기의 좁은 문이 열리고 나는 그 틈으로 조심조심 책을 한 권씩 집어넣는다. 한 권의 코드를 인식하면 그다음 책을, 그다음, 또 그다음. 화면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종료를 터치하면 문이 닫히고 반납 완료다. 이전 기계는 초록색의 반납 버튼과 빨간색의 종료 버튼이 있어 꾹꾹 누르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한번 톡 하면 끝난다. 이후 메롱 하듯 손바닥만한 반납 확인증이 나온다. 나는 그 종이를 뽑아 확인도 하지 않고 구겨서 옆이나 뒤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쓰레기통의 구겨진 반납 확인증은 고운 파란 옷을 입은 청소 아주머니 손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사라지겠지. 방금 반납한 책들도 내 기억 속에 이렇게 버려지고… 그래. 마시타는 사라져도 마시타의 노트는 남아있는 것처럼 기록을 남기자. 



1. 



  교수님. 평생을 남에 책만 읽으며 살아오셨는데 단 한 번도 본인의 책, 본인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셨나요? 일종의 창작욕 같은 거 말예요… 


               엘리베이터가 6층까지 인 인문관 7층에 있는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내가 던진 질문이다. 컴퓨터만 힘내주면 일이 끝나는 상황에서 연구실을 휙 둘러본 나는 사방을 가득 채운 책이 낯설게 느껴졌다. 교수님은 내 뒤에 서서 허리 운동에 한창이셨다. 운동을 멈춘 뒤 교수님은 나를 잠시 바라보시고 대답하셨다. 우문현답에 나는 생각했다. 역시 나는 교수는 될 수 없겠구나.  


  없어. 그런 거 느꼈으면 지금까지 연구도 교수도 못했지.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