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마 역에 가고 싶다.
이미 가고시마에서 미야자키로 향하는 기차 한 번, 미야자키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숙소로 가는 기차 한번,
기차라면 이미 물렸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한번 더 기차를 탔다. 그렇게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여행했다.
트램이나 전철이 아닌 기차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여행이 얼마 만이더라? 다시 생각해보니 여행지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탄 적은 있어도, 여행지에서 기차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다녀보는 처음이다. 명절에 기차 타고 시골 가는 친구들이 부러워 왜 우리 집은 시골이 서울이냐며 투정 부렸던 철없던 시절도 아주 잠깐 떠올렸다.
이 여행에서는 이번 기차를 놓치면 밥을 포기해야 하거나, 숙소에 돌아갈 수 없다거나, 기껏 먼 길 와서 목적지에 갈 시간이 없어진다거나 해서, 여유를 부리려야 부릴 수 없었다. 평소 양반이라 뛰지 않는다던 나 역시 시간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길바닥에서 자는 건 나도 좀 무서우니까, 어쩐지 계속 시계를 보고 커피도 통째로 벌컥벌컥 마시고, 아직 김이 나는 음식들을 욱여넣으며 기차 시간에 맞춰 뛰어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참 바빴다. 심지어 아오시마 역에서는 도깨비 빨래판을 보겠다며 밀물/썰물 시간까지 맞췄으니 정말 답지 않은 여행이었지. 그래도 이곳에 다시는 안 올 것 같다며, 지역 특산물은 어찌나 사재 꼈는지 모른다. 양손 가득 기념품이 무거워 좀 더 마음이 급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빴던 여행에서도 기차 안에 있을 땐 참 여유로웠다.
노래도 듣고, 전 역에서 찍은 사진도 보고, 차창 밖 바다도 보고, 기차 안 사람들도 관찰하고, 낡은 기차의 형광등이 1분에 몇 번 깜박이는지 세보기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쪽잠도 청해보고 이렇게 사진도 찍고.
미야자키의 유명 관광지인 오비 마을을 오고 가는 이 기차는 관광객만큼 지역 주민들도 많이 타서 네이버 블로그나 관광책자에서는 번역해 주지 않는 역에서도 자주 오래 멈췄다. 그때마다 나는 구몬의 힘을 빌려 어설프게 역이름을 읽어보고, 무슨 뜻일까 추측해보곤 했다.
어설픈 일본어로 얼핏 보면 '카지마' 역 같은 "카지키 역".
같이 여행하는 소행에게 "카지마 역이래 ㅋㅋ. 한국 가지 말라는 건가?" 따위의 실없는 농담을 하며 웃고 싶었는데, 단잠에 빠져있어서 나 혼자 이 사진을 찍었다. 이제 와서 보니 카지마가 아닌 카지키 역이었다. 우연히 사진에 찍힌 교복 입은 소년과 형광등 하나, 유리 너머 역사 직원 한 명, 그리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지 꺼진 티비안내판의 모습들이 꼭 애니에서 보던 모습 같다.
내가 "카지키 역"에서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더 환상 같고 영화처럼 느껴지는 사진일 수 있겠다.
있어 보이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 사진 찍으면서 난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거다.
'카지마 역이래.. 카지마.. 가지마.. 시간아 가지마... 한국 가지마... 가기 싫다.. '
끝이 있는 여행에서 하는 생각은 언제나 거기서 거기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