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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Dec 14. 2023

계속 글을 쓰고 싶어요

은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는 2020년 2월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쓴 글은 500편이 넘습니다만 절반 이상은 삭제했습니다. 쓴 글이 너무나 못나 보였거든요. 나만 통통하게 돋보이게 쓰거나 과도한 감정을 쏟아부어 쓰거나 남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믿은 글은 저의 엄격한 검열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살아남았지만 발행 취소되어 작가의 서랍 속에 들어간 글도 백 편에 달합니다.


이런 엉망진창인 글을 써도 될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면서도 저는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거진을 만들어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며, 연재도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외로운 과정입니다. 대화할 상대는 나밖에 없습니다.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무슨 주제로 쓸 거야? 어떻게 쓸 거야? 시작은 어떻게 해? 지금 쓴 내용은 정확하니? 


질문은 끝이 없고 대답은 신통치 않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지만 자기 검열이 심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해 질문을 쏟아붓지만 대답은 시원찮은 상황입니다. 괴로움이 커집니다. 이 괴로움은 연말이 되자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올해도 이렇게 가버리는구나, 아무것도 이뤄놓은 게 없이 나이만 먹는구나. 작게 한숨을 쉬며 아이고, 아이고 해봅니다. 글을 쓰다가 벽에 머리를 박고 쿵쿵거리는 제 모습을 떠올리니 이마에 스펀지라도 붙이고 싶습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라는 스펀지를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은유 작가님이 글쓰기 수업이나 강연에서 주로 받았던 질문 48개에 대한 답변을 모아둔 책입니다. 목차를 한 번 볼까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책을 구입하고 싶게 만드는 질문들이 나옵니다. 다 공개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 일단 첫 장만 소개합니다.



저 같은 작가지망생이나 업으로 글을 쓰는 마감노동자나 이미 책을 여러 권 낸 작가라도 피해 갈 수 없는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앞서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저, 거짓말 안 하고 정말 외롭습니다ㅋㅋㅋㅋ. 몇 시간 동안 품을 들여, 혹은 며칠에 걸쳐 글을 써서 발행해도 반응이 신통치 않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혼자 공연을 하는 기분입니다. 내 목소리에 내가 놀라는, 내가 춘 춤에 혼자 깔깔대며 웃는, 그러다가 결국은 주저앉고 마는 공연을요. 그래서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습니다. 오래된 상처는 쉽게 낫지 않거든요. 한 줄 한 줄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해 읽었습니다.


이 연재를 계속 읽으신 분은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작가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결점이나 흠집 있는 모습을 사랑합니다. 은유 작가님에게도 처음은 있었습니다. 그는 실수를 했으며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작가님은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해서 저 문제들을 해결했는지 상세히 알려주십니다. 나는 너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으니 내가 너희를 어여삐 여겨 알려준다는 시혜적인 자세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을 사랑해서, 정말 그가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답변과 응원을 해주십니다. 




저는 작가지망생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지망생'으로 남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내게 없는 타인의 재능을 질투하며, 재능 없는 자신에 절망하며, 쓰고 지우고 고치고 발행하는 삶을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루에 서너 시간씩 서서 말해야 하는 선생입니다. 내가 설명한 내용이 학생들에게 닿지 못하고 죄다 튕겨 나온다고 느낄 때면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쓸지도 모릅니다. 이뤄놓은 게 아무것도 없이 나이만 먹는다고 느낄 때도 글을 쓰겠지요.


저는 제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다만 4년째 브런치를 운영하고 있으니 꾸준함이라는 재능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꾸준함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막막함에 부딪힐 때면 다시 이 책을 펴고 싶습니다. 그러면 왠지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랄까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가 제 막막함과 외로움을 조금은 덜어간다고 믿으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이 연재의 마지막은 항상 본문의 내용과 느슨한 연결고리를 가진, 제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장식하는데요. 오늘 사진은 2020년에 심리상담을 받으며 상담 내용을 기록한 수첩 사진을 올려봅니다.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브런치에 상담 내용을 써서 20회나 발행했었는데 그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댓글을 달아주셨던 분이 떠오릅니다. 


가끔 이분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계실까,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지금은 글을 안 쓰시거든요. 브런치에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기다렸지만 OOO님은 2년 가까이 글을 발행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이 너무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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