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너마저,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오늘은 노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책 이야기를 실컷 해 놓고 왜 갑자기 노래 이야기를 하냐고요? 원래는 말이죠, 읽은 책과 자주 듣는 노래를 소개하겠단 취지로 '타인의 취향' 매거진을 만들었어요. 몇 주째 책이 술술 읽혀서 매거진 5꼭지 모두 책 이야기를 했네요. 계속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못 읽었어요. 아마 몇 주는 힘들 것 같아요. 요즘 활자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아요. 생기부 지옥에 빠져서 집에 오면 눈이 뱅글뱅글 돌아갔거든요. 게다가 노안이 오는지 눈이 자주 침침하고요.
일단 가사를 먼저 볼까요?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아직까지 잠들지 못했나요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아직 나는 잘 모르겠어요
잊지 못할 사랑을 하고 또 잊지 못할 이별을 하고
쉽지 않은 마음 알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 담아둬서 무엇할까요
잊어야 할 일은 잊고서 새로운 시간으로 떠날까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란 곡입니다.
저에겐 잊어야 할 일이 많아요. 잊어야 할 일이 늘 생기지요. 시도했다가 실패한 일이 있고요, 애썼지만 제자리인 일도 있어요. 길게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일도 있지요. 어리석은 저는 뜻대로 되지 못한 모든 일이 상처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제가 브로콜리 너마저의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를 좋아하는 건 우연이 아니겠지요?
브로콜리 너마저는 20대 후반부터 40대인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밴드입니다.
이 밴드를 저에게 소개해준 친구는 사진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앵콜요청금지' 가 좋다면서 저에게 들어보라고 말했어요. 누군가 음악을 추천하면 청개구리처럼 더 듣기 싫어하던 제가 웬일인지 그 노래를 찾아들었어요. 그 길로 보컬 계피의 목소리에 푹 빠졌지요. 계피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어서 냉큼 1집을 샀어요.
우리는 음악과 영화 이야기를 자주 했지요. 방구석에 처박힌 상자를 열면 이 친구랑 같이 사방팔방 다니면서 찍은 사진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카페나 바닷가, 전시회, 미술관 등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그랬지요. 영화 취향도 비슷해서 일본 영화 '무지개 여신', '훌라걸스', '린다 린다 린다'도 함께 본 기억이 나는군요. 영화관 제일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영화를 보던 장면이 머릿속에 파편처럼 남아 있어요.
그런데 친구는 지금 무얼 하며 지낼까요?
사실 저는 몰라요. 10년 넘게 연락을 해보질 않아서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브로콜리의 음악을 들으면 이 밴드를 처음 소개해준 친구가 떠오르고 길게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계속 남아 '내가 뭘 잘못했을까?' 혹은 '내가 무얼 하지 않았을까?' 자책합니다.
끊긴 인연은 무수히 많은 미련을 남기죠.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끊긴 인연을 잊지 못한 괴로움에 몰두한 나머지 내가 기억해야 할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내게도 좋은 친구가 있고, 좋은 순간이 있었는데 말이죠.
잡지 못한 생의 한 자락을 놓지 못해 곁에 있는 좋은 순간들을 죄다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투성이인 채로 지냈죠.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살고 있을 거예요. 놓친 인연, 놓친 돈, 놓친 순간에 절절 매여 괴로워하며 살겠죠.
그래서 저는「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를 들으며 반대로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 좋은 친구, 행복한 순간, 소소한 기쁨. 이런 것들 말이죠.
잊어야 할 순간은 잊고, 기억해야 할 순간은 기억하며 그렇게 새로운 시간으로 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