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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텔라 Oct 10. 2021

어린 내 아이, 어린이집이어야 했다

돌 때부터 보냈다. 

아이는 익숙해진 장난감들을 구석에 내버려   페트병과 종이상자를 굴리며 놀았다.  장난감을 쥐어줘도 며칠을   다른 새로움을 원했다.  아홉시가 넘었는데 자꾸만 나가자고 울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에서는 모든 공간이 새로운 놀이터였다. 시간에 따라 공기와 온도와 색이 했다. 붉은 벽과 배를 깔고 누운 길고양이와 리어카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느리게 걷는 노인과 사이렌 소리와 앳된 청년들의 팔짱  뒷모습과 거친 숨을 몰아쉬는 배달원과 높이가 각각인 유모차가 지나갔다. 행인손인사에 흥이 돋은 아이는 크게 반응하곤 했다.  시간씩 떠돌다 들어와도 아이는 다시 나가자고 보챘다. 이십 평이   되는 집안은  히고 정지된 세상이었다.


아기에게 굴리고 조물거리고 물고 뜯을 수 있는 대상은 다 같은 장난감이었다. 정작 아이는 정교한 장난감과 분리수거용 쓰레기를 차별하지 않았다. 질감과 문양과 모양에 호기심을 일 뿐이었다. 잘 팔리는 '예쁘고' '귀여운' 장난감이란 어른에게나 그런 이지 막상 시큰둥할 때가 많았다. 장난감의 가치에 순서를 매긴 것은 어른이었으니 그럴 만 했다. 그들 마음에 들게 기획한 상품에 그들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했다.


어른들 사이에서 신박하다고 난리인 것들이 소위 국민템이다.(육아와 반려동물 업은 절대 망할 수가 없다지.) 또래 부모들은 국민템 인증 사진을 SNS 올렸다. 포스팅을 보고 있자면 다정다감한 부모와 아이의 행복의 척도를 보여주는  같았다. 마치 아이가 세상 가장 원했던 것을 채워주는 애틋한 성의처럼 보였다. 아기의  반응을 찍어놓고 너무 좋아한다 온갖 이모티콘을 동반해 자랑했다. 진작 사줄  그랬다고며. 진작 사주었다면 진작 끝났을 재미란 것은 정말로 몰랐던걸까. 사람들은 자꾸만  필요하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한 프리미엄”

정작 아기들은 비싸고 매끈한  장난감을 선호한 적이 어도 부모들은 아이 키우려거든 어쩔 수 없이  나가는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현실 육아는 이렇다. 매분 매초 세상 모든 자극을 원하는 아기와 반대로 세상 모든 순간이 피로해지게 되어버린 양육자는 매 시간 완벽한 놀이를 제공할 여력이 없다. 도저히 불가능하다. 새로운 놀이와 장난감의 지속력이 그러하듯 부모의 열정과 에너지도 쉽게 동이 난다. 아이에게 너그럽고 한결같은 부모로 서기 위해서는 단단한 몸과 마음이 필요했고 하루하루 에너지와 영감을 채울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것이 간절했다.


생후 7개월부터 젖을 줄이이유식을 시작한 아이는 갈수록 심한 억지를 부렸다. 원하는  많아지는 아기를 보며 우리 둘은 외부 자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공동체적인 환경에 살고 있지 않고 친인척을 주기적으로 만날 형편이 되지도 못했으며 문화센터에 다닐 경제적 여력이 없었던 우리는 그래서 보육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즈음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을  지인들은 한결같이 뉴스에서 본 사고 이야기 꺼냈다. 아는 사람의 실제 이야기라며 상기된 얼굴로 학대 스토리를 전했다. 어린이집 선생이 애를 때렸대.  지난지 얼마  돼서 말도 못하는 애를...걔는 그나마  좋게 형이 있어서 형이  사실을 엄마한테 대신 알려줬다는 거야. 뉴스에서 얼마 전에  어린이집 사건은  봤어?


무섭지. 누구보다 무섭고 누구보다 걱정되고 누구보다 많이 검색했다. 나는 하루종일 자극적인 뉴스를 읽고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런 나날을 보낸 건 나와 남편이었다. 우리가 아이의 부모였다. 가장 치명적이고 가장 최악인 가정을 늘어놓다니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골똘이 씹고 곱씹었다. 학대를 기대하라는 경고인가. 아니 협박인가. 어린이집에 안 보내기만 하면 아기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안일한 생각이 배설한 말인가. 안타까우리만치 일차원적이었고 육아의 무게와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그리 쉽게 말하고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참 무감했다.


사람이 사람을 지키는 일. 옆에서 보호자가 단순히 살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짝 붙어 걷던 아이가 갑자기 잡은 손을 빼내어 잰걸음으로 뛰다 넘어질 때가 있다. 무릎이 갈려 피가 나고 아이는 목욕할 때마다 상처 부위를 가리며 울었다. 집 안에서는 의자 모서리에 턱을 찧고 티셔츠가 젖도록 피를 쏟은 적이 있다. 이불을 덮어쓴 채 벌떡 일어나 돌진하다 그 사단이 났다. 예측이 불가한 움직임에는 도저히 손 쓸 방도가 없었다. 아이를 털끗 하나 다지치 않게 한다는 의미는 설거지, 청소, 요리, 용변, 전화통화, 생각 그 무엇도 하지 않고 아이 목에 줄을 매다는 일에 가까웠다. 어떤 것을 한다고 혹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를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학교 폭력이 유행한다고 학교에 안 보낼 건 아닌 것처럼. 여성 타깃의 범죄가 횡행한다고 여자를 집안에만 가둬둘 순 없는 것처럼. 가장 불안하고 불행한 면만 보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다. 과정을 지나는 것 또는 살아내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우리는 정말 많이 배웠다. 스스로 객관화하는 기회가 됐다. 하원을 시킬 때마다 담임 보육 교사와 매일 대화했다. 어떤 반찬을 얼마나 즐겨먹는지부터 친구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 발달 상황에 대한 정보를 나누었다. 집에서는 어떤 식으로 화를 내고 어떻게 하면 기분이 나아졌는지 알려주었고 교사는 아이들이 잠을 설치고 짜증을 낼 때 사용하는 수면 유도 팁을 알려주었다. 원에서 가장 좋아했던 놀이가 무엇인지 이 시기 초보 부모들이 간과하는 일은 무엇인지 선생님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줬다. 사례가 오래 전 일일 때도 있었지만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당시 같은 반 친구들의 다양한 보육 환경과 발달 변화였다. 또래 아이들과 나의 아이를 비교해보고 유난하다 여긴 행동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오늘따라 짜증이 많았는데 혹시 밤잠을 잘 못잤나요? 등원하자마자 눈 아래 긁힌 상처가 있었어요, 알고 계셨나요? 다른 아이들보다 밥을 2.5배 정도 먹네요! 아니요, 막상 친구들과 관계에서는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은 걸요! 교사는 그날그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었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보육철학을 알게 됐다. 의지가 많이 됐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 후로 안정적인 패턴을 갖게 되었다. 엄마 아빠 아기 각자가 경험한 고유의 영역이 생기자 가족이 함께 공유할 세상이 넓어진 것은 물론이었고 가정의 놀이는 집중도가 높아졌다.


나와 남편 모두 일을 하기 시작한 후로는 알림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교사와 주고 받는 매일의 손글씨, 러브레터가 쌓인다. 알림장은 구두로 상담할 때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데 정제된 정보와 역사가 빼곡히 채워지기 때문에 기록적 가치가 있다. 말을 시작한 아이가 어떤 장면 앞에서 무슨 단어를 처음 뱉었는지 이따금 친구들에게는 얼마나 얄밉게 심술을 부리는지, 원에서 보낸 아이의 하루를 읽고 있자면 장면이 환하게 펼쳐진다. 집에 돌아오면 알림장 정보를 기반으로 그날의 감상을 묻고 아이를 꽉 조이도록 안아준다. 잘 놀아주다니 오늘도 고맙고 대견해. 하지만 친구 장난감은 뺃지 말고. 친구를 사랑할수록 너도 더 행복해지지.


주말을 지난 월요일은 꼭 알림장 써 보내는 편이다. 우리 가족이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 확인한 교사가 아이에게 경험을 되묻고 그것으로 대화의 볼륨을 키우기 때문이다. 물론 평일에도 남편과 나는 번갈아 가정의 장면을 기록한다. 하원길에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토막토막 들려주는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참 감사하다. 어린이집이 있어 참 다행이지. 선생님과 우리의 고민, 아이의 사회화 과정과 발달 과정 등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알림장은 더없이 소중해서 불이 나도 이건 꼭 챙겨야지 한다.


그 어린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폐쇄된 공간에서 고립된 정신으로 위험에 빠진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소리들 하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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