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2권
제우스는 어떻게 하면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높여주고 수많은 아카이오이족을 그들의 함선들 옆에서 도륙할 수 있을지 마음속으로 궁리하느라 단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에게 거짓 꿈을 보내는 것이 역시 상책인 듯했다.
아들의 명예를 높여달라는 테티스의 탄원을 제우스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절대 권력, 신들의 아버지 제우조차도 스튁스 강에 맹세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의 교만을 꾸짖기보다는 더욱 용기를 부추겨 트로이를 공격하도록 거짓 꿈을 계획했다. 그리고 팽팽한 싸움 속에서 트로이 군이 승리를 이어가도록 만들었다. 신의 뜻은 그러했다. 하지만 필멸의 인간, 아가멤논은 신의 뜻을 알지 못했다. 자신은 언제나 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기고만장한 그의 마음속에 교만이 자라났고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을 빼앗으며 권력을 남용했다. 철저하게 그의 자존심을 건드림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더 높이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올 미래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신의 치밀한 계획은 그에게 쓰라린 아픔을 예고하고 있었다.
꿈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제 트로이를 함락할 때가 왔으니 공격하라고 그를 부추겼다. 꿈에서 깨어난 아가멤논은 오뒷세우스와 네스토르에게 꿈의 내용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선 관례에 따라 말로 그들을 시험해보고자 나는 노가 말이 달린 함선들을 타고 달아나라고 권할 테니 그대들은 여기저기서 말로 그들을 제지해보시오.
신이 자신에게 반대의 꿈을 전했듯이 아가멤논도 부하들에게 거짓을 먼저 전한다. 참 묘한 광경이다. 신도 인간에게 속내를 비치지 않듯 인간도 타인에게 속내를 숨기고 이야기를 전한다. 세상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이 아닐 때가 많다는 것을 제우스와 아가멤논의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진실을 가릴 수 있는 눈은 인간에게는 없는 것일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 것처럼 진위를 가리는 것 또한 인간에게는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아가멤논은 총사령관으로써 싸울 준비를 명령할 수도 있었겠지만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이 동맹국으로 참여한 전쟁에서 총사령관의 말보다는 자신들이 모시는 왕의 명령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꿈과는 반대로 전쟁을 그만두고 달아나자고 말할 테니 오뒷세우스와 네스토르에게는 그들을 제지하고 부하들이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싸움에 임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도 가끔은 남이 시켜서 일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해야 될 이유를 찾게 되면 힘들어도 하게 된다. 그 마음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아가멤논이 돋보인다. 명령에 의한 수동적 의지가 아닌 자발적 능동적 의지가 전쟁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한없이 자비로운 신을 바라며 도움을 간구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에 인간을 가장 깊은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는 잔인함을 계획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제우스처럼.
인간은 신의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선량함과 잔인함 두 가지의 모습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 마음속 롤러코스터가 작동하면 그 굴곡에 따라 춤을 춘다.
가장 선함과 가장 악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우리의 삶, 우리의 모습이 신의 모습을 닮아 있다.
아가멤논도 교만함을 눌렀다면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낳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신의 잔인한 계획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소한 말 하나, 행동 하나에서 불행의 씨앗이 생겨난다.
거대한 대서사시를 읽으며 사소한 인생의 돌부리를 발견한다. 진작에 치웠어야 할 돌부리였다. 작은 것을 간과했을 때 초래되는 결과는 생각 외로 상처가 크다. 넘어져서 아픈 것을 아는 것은 바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고전은 말한다. 넘어지기 전에 아픔을 예견할 것, 그리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할 것, 그것이 어떤 사소한 것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