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5권
그리스 동맹군들 사이에서 우직하게 명령에 복종하는 자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디오메데스였다. 팔라스 아테나는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에게 힘과 용기를 주어 모든 아르고스인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며 훌륭한 명성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메넬라오스를 공격한 트로이아의 명궁 판다로스가 이번에는 디오메데스를 공격하였다. 그의 화살은 가슴받이를 맞혔고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인간이면 누구나 부상 앞에서 약해진다. 디오메데스는 아테나를 향해 기도한다.
“ 아이기스를 가진 제우스의 지칠 줄 모르는 따님이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내 창이 닿는 곳으로 저자가 들어오게 하시어 내가 그를 죽이게 해주소서.”
디오메데스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아테나는 그의 두 발과 두 팔을 가뿐하게 해주었다. 거기에 하나 더 신과 인간을 잘 분간할 수 있는 능력까지 덤으로 주었다. 그렇게 힘과 용기를 부여받은 디오메데스에게 아테나가 던지는 미션하나, “제우스의 딸 아프로디테가 싸움에 뛰어들거든 날카로운 창으로 그녀를 찔러주도록 하라.”
디오메데스는 부상을 입긴 했지만 여신의 도움으로 세 배의 용기가 솟아 올랐다. 먼저 그를 쏜 판다로스를 공격해서 승리 하였고 아이네이아스에게 돌덩이를 던져 부상을 입혔다. 또한 아테나가 요구한 미션, 아프로디테를 공격하여 그녀의 손끝을 찔렀다. 여신은 불멸의 피, 영액을 흘리며 올림포스로 달아난다. 부상을 당한 아프로디테는 어머니 디오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딸에게 참으라고 이야기해준다.
“참아라, 내 딸아! 마음이 괴롭더라도 꾹 참도록 하라.”
디오네의 대사를 읽다보면 또다른 어머니가 떠오른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들은 테티스이다. 그녀의 반응과 매우 상반된다. 테티스는 아들의 명예를 높여주기 위해 제우스를 직접 찾아가 탄원자의 모습으로 간청한다. 또한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그리스군이 찾을 때까지 싸움에 나서지 말라고 아들에게 충고한다. 요즘 아이들의 문제를 어머니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 주는 모습과 무척 닮아있다.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가만히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닮았다.
하지만 디오네는 달랐다. 상처 입은 딸을 치료해주며 참으라고 말한다. 불사의 신들과 싸우는 자는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고 조언한다.
두 여신, 테티스와 디오네 두 어머니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본다. 내 모습은 테티스와 디오네 둘중 누구를 닮아있을까. 아이들의 문제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해결하려 들진 않았는지. 아이의 분노를 다독이며 참으라고 말해주었는지.
내 안에 테티스가 보였다. 그녀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의 분노를 이해하려 하거나 억울함을 풀어주려 했던 것같다. 하지만 이러한 테티스의 노력은 더욱 아킬레우스를 고립시켰고 그 결과 더 많은 그리스군이 죽어갔다. 한 사람의 사적 분노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고 공적 손실을 야기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 테티스이다.
만약 원전을 벗어나 상상해보자.
어머니 테티스가 아들 아킬레우스를 다독이며 참을 수 있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원전의 스토리를 호메로스가 끌고 가기위해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커야만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면서 결국 신이 정한 운명의 타이밍에 전쟁에 나타나야만 했다.
하지만 좀 더 인간적인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분노를 내려놓았어야했고 어머니가 참으라고 조언해줄 수 있어야만 했다. 어머니의 생각과 노력은 자식의 가야할 방향을 가르쳐준다. 테티스의 엄마찬스는 아들을 미성숙한 고집불통으로 만들었다. 아킬레우스의 미성숙이 만들어낸 비극은 극을 끌고 가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