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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엘 May 31. 2022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모닝커피와 마주 앉아 나누는  일상을 담다

솜털같은 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따뜻하다.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이불 속을 파고든다. ‘딱 오 분만 있다가 일어날 거야.’ 마음속으로 다짐 해 본다. 물론 오 분이 십 분이 될 때가 많지만 그 순간의 달콤함을 떨쳐 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잠깐의 게으름에 갖가지 정당성을 부여해 본다. ‘아침이니 괜찮아. 매일 이러는 것도 아니잖아. 너는 충분히 쉴 자유가 있어.’ 그 달콤한 목소리에 이끌리다보니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그 순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커피 생각이 오 분의 유혹을 이긴 것이다.


 하나의 의식처럼 순서대로 움직인다. 커피포트에 물을 가득 채운다. 물이 끓을 동안 핸드 밀을 돌린다. 드르륵드르륵 경쾌한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곱게 갈아진 원두를 보며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다. 코끝으로 커피 향을 마셨는데 머리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이제 몸도 영혼도 완전한 기상이다.

 뜨거운 물줄기를 천천히 둥글게 돌려가며 커피를 내린다. 똑똑 떨어지는 까만 물방울이 보석처럼 빛난다. 한 모금을 마신다. 따뜻한 온기가 식도를 타고 천천히 내려간다. 그 느낌은 미처 깨어나지 못한 장기들을 흔들어 깨워주는 듯하다. 부드러운 햇살과 커피 한 잔을 마주한 아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을 느낀다. 더 바랄 게 없다. 


 내가 이토록 커피를 좋아하게 된 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을 더듬어 본다. 영화 ‘삼진그룹 토익반’에서 모닝커피 타는 모습이 나왔었다. 사회 초년생의 아침 풍경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며 낯설지 않은 그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그랬던 것이다. 

 커피 맛도 모르던 시절, 막내라는 이유로 아침 커피는 내 담당이었다. 커피, 프림, 설탕이 1:1:1.5가 되어야만 황금 비율의 맛이 된다고 배웠다. 누가 정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 비율을 철석같이 믿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키려 노력했던 그 맛이 어느 날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커피와의 진지한 첫 대면은 그때부터였으리라 생각된다.


 누군가 커피 맛은 인생의 맛이라고 했다. 커피, 프림, 설탕이 잘 어우러져 맛있는 커피 맛을 내는 것처럼 말이다. 쓴맛의 커피만 있어서는 도통 그 맛을 즐길 수가 없다. 부드러운 프림이 들어가서 쓴 맛을 중화시켜줘야만 한다. 그리고 달콤한 설탕이 커피 맛을 극대화 시켜준다. 마지막 한 방울, 달달함이 혀끝에 남아서 또다시 커피를 그립게 만든다. 삶도 그러하다. 쓰디쓴 아픔과 달콤한 행복이 어우러져 또 다른 고통을 끌어안으니 말이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면서 깨달았다. 그때는 삶이 정제된 커피 알갱이의 맛처럼 쓰기만 했다. 부딪치고 경험할수록 아픔도 커져갔다. 성장하겠다는 의지로 참아낸 시간 속에서 보상이 주어졌다. 달콤했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 속에서 쓴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모나지 않고 튀지도 않으며 조화롭게 어울리며 사는 방법을 경험에서 배웠다.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커피 맛을 즐긴다. 부드러움과 달콤함도 다 걷어낸 쓴 맛의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족하다. 있는 그대로의 쓴 맛을 느끼는 것이 나는 좋다. 쓴맛을 피하려 이것저것 첨가한 맛이 이제는 군더더기처럼 느껴진다. 커피 고유의 쓴 맛이 진정한 인생의 맛이라고 나만의 정의를 내려 본다.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을 때 흔히들 말한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 말 속에는 다양한 해석이 들어있다. 옛날 같으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말 한번 걸어 보기 위한 작업용 멘트였다면 요즘은 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당신과 마주 앉아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다. 혹은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아니면 당신의 말에 귀 기울여줄 여유가 있다는 말로도 이해된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라고 생각된다. 그 배려의 도구가 커피 한 잔이다.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무거운 이야기의 시작도 커피 한 잔의 가벼움이 열어 준다. 소통의 소중한 도구가 커피인 셈이다. 


 이야기 나눌 상대가 없어도 좋다. 커피 한 잔이 친구가 되어주고 위로해 주기도 한다. 비 내리는 날, 커피 잔을 앞에 두고 멍하니 창밖 풍경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 느낌을 기억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이지만 외롭지 않다. 함께 있어주는 커피 한 잔은 최고의 이야기 상대이다. 둘의 대화는 소리없이 이어진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야기도 괜찮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음성으로 서로에게 속삭여 준다. 까맣게 속을 드러내지 않는 커피 한 잔은 입도 무겁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내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친구다.

 나는 그런 커피의 속성을 알고부터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곁에 두고 싶어지니 말이다. 오늘 아침도 나를 깨워준 유일한 친구이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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