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eeyview Aug 14. 2022

'사이'와 '흐름'을 만들어내는 엮음이란,

영화 <우연과 상상> 리뷰

1화 魔法(よりもっと不確か)


1. 직결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엮는 것에 대한 작가적 부담감이 꽤 덜어진 영화였다. 작가는 엮음으로써 이야기를 직조한다. 말을 '엮'고, 인물들의 '사이'를 짓고, 사건의 '흐름'을 만든다. 그리고 이 엮음들은 하나의 총체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연성'이란 이러한 이야기짓기 방식에서 나온 것일 테다.

1화 魔法(よりもっと不確か)
2화 扉は開けたままで
3화 もう一度

세 편은 단지 '우연'과 '상상'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실제로는 일어나기 힘든 상황들이 벌어지고, 인물들은 그 상황에서 상상으로 채워간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일어나기 힘든 상황들의 연속이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서로를 향한 서로에 대한 상상에 의하여 만들어질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연'을 일어나기 힘든 일, '상상'을 일어나면 안되는 일처럼 여긴다. 그러나 우리의 말들은 우연의 집합이며, 우리 주변의 여러 사이들은 상상의 교차로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 영화에서도 역시 '대사'를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말이 모든 것을 대체해버리려는 죽은 상상력들에 대한 염증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하마구치는 말이 '모든 것을 대체하지 않음'과 동시에 말로써 '그려내는' 실재에 대한 입체화란 무엇인지 그 대체를 잘 보여준다. 하마구치의 영화들에서 '대사'는 '대화'로써 완성된다. 그래서 인물들의 성격이 전형적인 것으로 닫혀버리지 않는다. 하마구치는 대화의 순간, 그 미묘한 찰나들을 프레임 안에 넣는데, 이는 단순히 인물들의 대사를 서사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인물이 자신의 성격과 앞으로의 사건을 수행하기 위하여 말을 '수단'삼는 것이 아니라(이것이 '전형'을 만들어내는 기술), 진짜 우리가 내뱉는 말들을, 그리하여 만들어진 우리의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이번 영화가 <드라이브 마이카>보다는 <해피아워>에 좀더 가깝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2화 扉は開けたままで

2. 가장 재밌는 장면은, 2화에서 세가와 교수와 나오의 대화. 소설에서 왜 이런 장면을 묘사했냐는 나오의 질문에 세가와는 이렇게 답한다.

"다만 제가 원했다기보다 말이 그걸 원했어요. (말이요?) 그게 또 다른 이유예요. 말의 배치는 다른 말과의 관계에서 결정되죠. 말이 말을 원하는 거지. 제가 말을 원한 게 아니에요. 완성된 말의 순서가 제 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둘 뿐이에요."

세가와는 답을 원하는 나오에게 계속 "それかもしりません。(그럴 수도 있어요)"라고 답한다. 나오의 질문을 존중하는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세가와의 언어(소설)를 받아들이는 나오의 언어(독서와 질문)에, 무엇에도 정답을 읊어주지 않는다. 나오의 읽음-물음을 모두 존중하기에.

또한 세가와의 말이 최근의 내 생각을 잘 대리해주기에 흥미로웠다. 필자는, 화자는 전부 '알고 있지 않다'는 것. 계획된 말을 읊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 말은 말을 부르고, 말에 의하여 말은 결정된다는 것. 말의 주체들은 "단지 글과 글을 매개로 표현을 극대화할 뿐", 작가의 "경험이 개입될 여지"는 그리 중요치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글은 "독자의 경험에 울림을 주"는 것. 언어 주체들의 '말'은 그렇게 여겨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3화 もう一度

3. 이번 영화는 숏의 움직임들이 굉장히 직관적이었다. 1화에서 메이코는 극단적으로 치달은 자신의 상상에 좌절하고, 현실에 적당히 자신을 맞춰나가는데, 이때 메이코의 상상에서 현실로 이어지는 장면을, 고뇌하며 고개 숙인 메이코를 줌인-줌아웃으로 풀어내는 방식. 메이코가 바라보는 시선에 맞춰 카메라를 수직 상승하는 방식. 2화에서 나오와 세가와가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대화할 때, 각각의 배우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장면. 3화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나츠코와 아야의 이동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

영화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꽤나 직선적으로 '드러낸다'. 오르-내리고, 당겨지고-멀어지고, 따라가고-오고. 말의 미학을 담아내기에는 어쩌면 이것이 적당하게 어우러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로지컬하기만 하지 않는 말들을, 꽤나 로지컬하게 풀어지는 서사에 정교한 미쟝센까지 어우러지는 건 너무 아찔하니까.

4. 가장 울림이 남는 에피소드는 3화. '그' 사람에게는 못다한 말을 전할 수 있고, '그' 사람에게는 듣지 못한 말을 듣게해준 '어느' 사람들의 만남이 무척 좋았다. 어느 찰나의 우연을 통해, 상상해 온 것들을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관계. 자신의 감정을 계속 기억해오고 발전시켜온 나츠코 덕분에, 아야는 기억 저편에 묻혔던 자신의 감각들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아야가 마지막에는 기억해낸 이름(노조미)란 '望み(のぞみ)'였던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고도를 기다리던 빨간 차는, 긴긴 밤의 연속을 달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