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마음이 별로지?
엄마 손 아빠 손 꼭 잡고 신이 나서 따라다니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즐거움이 반짝인다.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으니 상인들의 눈빛에서 희망이 반짝인다. 장날엔 뭐니 뭐니 해도 먹거리 장터가 빠질 수 없다. 가락국수 빈대떡 비빔밥 등 먹는 이들의 눈빛에서 행복이 반짝인다. 삶을 포기할 정도로 마음이 힘들 때는 장에 가라는 말이 있다. 역시 장은 단 한 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여기저기서 통통 튀는 삶의 에너지 뿜 뿜이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더니 정말 그렇다. 서울에 살 때는 단골 정육점이 있었는데 전원으로 이주한 곳에는 아직 마땅치가 않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중이다. 읍내에서 오래된 정육점이라 하니 문을 두드려 본다. 제일 먼저 갈비찜용 갈비를 사니 마음이 부자가 된듯하다. 벌써부터 맛있는 갈비찜을 해주고 싶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머릿속에선 벌써 갈비 핏물을 빼고 있으니 참 못 말리는 캐릭터다.
온갖 생선과 해물이 가득한 어물전 앞이다. 고양이보다 더 생선을 좋아하니 자판기 누르듯 자동으로 주문을 한다.
"음... 이 조기랑요. 저기 저 동태전이랑 요. 고등어자반 한 손도요."
자신 있고 당당하게 주문을 했는데 이런 대략 난감이다. 어느새 신사임당 한 분을 보내버렸나 보다.
"저기요... 싸놔 주세요 금방 올게요."
"아예~~~ 다녀오십시오."
세상에나 친절도 하시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갔다 온다고?' 할 수 도 있을 텐데 그저 환한 얼굴이시다.
주차장이 복잡해 홍 집사(남편)를 먼저 차로 보낸 터라 현금을 가지러 가야 한다.
"헥헥! 이만 원만 더 줘보슝."
또 올 수도 있으니 신사임당 한 분을 더 모셔가란다. 평소엔 현금을 쓸 일이 없는 데 시골 장이라 가능함 현금으로 구매를 하려 하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카드가 안 통하는 곳이 없는 세상살이 습관이 참 무섭다.
주머니 배를 불려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런! 길치가 한방에 생선집을 찾을 리가 없다. 한참을 헤매니 '그냥 다른 데서 살까' 하는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다녀오십시오'하신 아저씨의 목소리와 환한 얼굴이 떠올라 유혹을 뿌리친다. 생선집 찾기 미션 드디어 찾았다. 마음 한편으론 혹시 싸놓지 않은 건 아닐까 했는데 내가 골라놓은 생선이 나를 반긴다. 게다가 가격까지 깎아주신다.
"이만 육천 원인데 이만 오천 원만 주세요."
"아유 감사합니닷!"
천 원에 코가 벌렁벌렁 신이 난다. 검정 봉지를 손가락에 겹겹이 끼우고 통통통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향하는데 어디선가 찬바람이 휑한 매서운 소리가 들린다.
"제사음식 깎는 거 아니에요 어머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아보니 세상 사나운 눈초리가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님의 얼굴을 째려보고 있다. 겸연쩍어하는 할머니의 표정과 겉만 봐서는 모르겠지만 구겨진 지폐를 손에 꼭 쥐신 모습이 큰맘 먹고 무언가를 사려고 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물건값을 깎으려다 벌어진 일인 듯하다. 전후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가격 흥정이 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굳이 엄마뻘 되는 어르신의 면전에 그렇게 말을 해야 하나 마음이 좋지 않다.
방금 전 깎아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천 원을 깎아주신 생선장사 아저씨의 환한 얼굴이 떠오른다.
천 원보다 친절한 마음과 말씨에 감사함 가득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할머니의 표정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왜 내 마음이 별로지?"
홍 집사에게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이런다.
"생선장사 아저씨한테 따끔하게 말을 했어야지!"
"엥? 뭐라고?"
"제사음식 깎아주는 거 아니라구! 사람 뭘로 보냐구!"
"으그 ㅋㅋㅋ"
홍 집사의 유머에 마음이 풀린다.
내 마음이 풀린 것처럼 할머니의 마음도 풀리셨길 바란다.
'할머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요즘 다들 힘들어 그럴 거예요.'
오늘은 읍내 5일장에 간 날이다.